의사가 말한다. 고양된 목소리로 열에 들떤 붉은 얼굴을 하고서...
“여기를 보세요. 원래는 이렇게 컸던 암덩어리가 지금은 이만큼 줄어들었잖아요. 확실히 차이가 나죠?'
눈에 띄게 알수 있잖아요.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아주 좋은 결과라고 할수 있죠”
컴퓨터 속 시커먼 그림자의 뭔지 모를 장기들 속에서 정체모를 암세포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의사가 흥분된 목소리로 우리를 쳐다보는 그 순간 우리의 입에서는 저절로 탄성이 새어나오고
암과의 싸움 1라운드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기쁨이 의기양양한 우쭐거림과 함께 벅차올랐다.
생각보다 암이란 녀석 그렇게 막강한 상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어딘가 분명 약점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3주 동안 매주 하루 항암주사를 맞고 마지막주는 쉰다. 그렇게 3달을 버텨온 결과였다.
그동안 우리는 각자의 포지션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다. 독한 항암을 견디고 버티려면 무엇보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먹거리에 특히 신경을 썼다. 시댁 부엌에서는 남편이 주말마다 어시장에서 공수한 문어 삶는 냄새가 진동을 했고 며느리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먹을거리를 들고 시댁을 들락거렸다. 시어머니는 동서에게 내가 만들어준 음식 얘기를 하고, 나에게는 동서가 어떤 걸 사왔는지 꼬박꼬박 얘기했기에 우리는 한번 시작한 게임을 멈출수 없는 것처럼 시아버지의 병간호에 열성을 다하는 며느리들이 되어 갔다.
그러나 환자 바로 옆에서 모든 것을 보고 들어야 하는 시어머니의 고통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어떨 때는 너무 불쌍해서 동정의 눈물을 흘리다 갑자기 환자가 예민해져 별거 아닌것에 트집을 잡다 보면 그 많던 연민은 날아가고 저도 모르게 평소의 건강한 사람과 싸우듯이 부부싸움을 하게 된다고 했다.
사람이 아프다 보면 점점 아이가 되어 가는 것일까..
조금만 덜 관심을 기울이면 아이처럼 삐치고 아주 사소한 것에도 버럭 화를 낸다고 하니 천사가 아닌 이상 그 모든 것을 견디고 극진히 보살피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을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현재까지 잘 싸우고 있는것 같다. 암이란 놈이 30프로 사라졌다고 하지 않은가... 이제 희망의 불씨를 살려서 더 활활 타오르게 해야 한다.
우리 모두 지구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연민과 지구력을 발휘할만큼의 체력이 필요하다.
먼 훗날 이날을 돌이켜보고 다함께 웃을수 있는 우리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