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봐요, 팜즈의 숲!
한동안 눌러앉아 있던 비구름이 흩뿌리는 마지막 빗방울들 사이로 햇살이 헤집고 나오기 시작했다. 축축하고, 춥고, 꿀꿀했던 한 주였지만 거의 딱 1년 만에 온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정말 반가웠다.
테라스 앞으로 나 있는 콘크리트 길바닥이 반짝거리는 짙은 회색에서 빳빳한 밝은 회색으로 말라가고 있었다. 창 밖으로 러셀(Russel)이 지나가다 멈추고는 내게 손을 흔들었다. 아주 오랜만이었다. 70대의 비교적 고령인 그가 COVID-19에 감염된다면 꽤나 위험할 수 있기에, 지난 일 년간 그와 건강한 모습으로 마주할 때마다 나는 괜히 안심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는 정말 간단한 산책 외엔 2주에 한 번쯤만 집 밖으로 나온다고 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씩 100세가 넘은 그의 엄마를 만나러 가는 일도 혹시 몰라 영상 통화로 대체하고, 아주 한가한 시간에 장을 보고, 자신이 관리하는 저기 한적한 세펄비다(Sepulveda) 언덕 위 저택에 찾아가 풀과 나무 정리를 하는 것이 외출의 전부라고 했다. 그런 생활이 벌써 일 년째, 지금쯤이면 부디 그가 백신을 접종받을 수 있었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지나가는 줄 알았던 러셀이 잠깐만 나와보라고 손짓했다. 급하게 마스크를 끼고 밖으로 나가자 퍼런 눈과 듬성듬성한 흰머리를 가진 이 사람은 종종 그러하듯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그도, 그의 엄마도 건강하고, 한국에 있는 -- 30세 연하의 -- 여자 친구 영미 씨와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평생 이 나라, 저 나라를 거닐었던 그는 한국에서도 몇 년간 지냈었는데, 그에게 한국 음식이 입에 잘 맞는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매운 것에는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었지만, 백김치와 동치미는 그의 최애 김치라서 지금도 계속 담가먹고 있단다. 생각해보니 그는 우리 테라스에 자라고 있는 깻잎이 반가워서 나에게 처음 말을 걸게 되었다고 했다. 정말 말이 많은 이 사람은 한 번 대화를 시작하면 끝이 없었는데, 그의 눈을 보고 있으려면 장난기 넘치고 초롱초롱한 것이 아직도 어쩜 이렇게 소년 같은지 늘 신기했다. 나와는 몇십 년 떨어진 시간을 먼저 살아온 사람임에도 왠지 친구 같은 사람이었다.
안부는 안부고, 그의 본론은 바로 옆 블럭에 포멜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전에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나더러 뜬금없이 자몽을 좋아하냐고 물어보았었다. 나는 레몬이고 라임이고 귤이고 오렌지고 자몽이고 포멜로고 유자고 낑깡이고, 시트러스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다. 레몬이 너무 좋아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한평생 노랑인 그런 사람이다. 그랬더니 그는 자몽을 한 봉지 가득 건네주었다. 그가 관리하는 부동산 정원에 커다란 자몽 나무가 있는데, 너무 많아서 나눠준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신나게 그 자몽을 먹었다. 턱이 얼얼한 새콤함과 왠지 안정되는 씁쓸함, 자몽은 정말 맛있다.
러셀은 그것을 기억하고 내게 알려주러 왔다. 옆 블럭에 있는 집 하나가 철거되고 있는데, 거기 있던 포멜로 나무도 쳐내어지면서 포멜로들이 잔뜩 바닥에 떨어져 있으니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이제 막 일어난 아내에게 얘기를 전해주자 그의 눈에 담긴 졸림은 순식간에 신남으로 바뀌어, 지금 당장 가지러 가자고 했다.
위풍당당하게 포멜로를 가지러 집을 나서자, 윗 옆집 카트리나(Katrina)가 계단을 내려오는 중이었다. 베이비 시팅 일을 하는 카트리나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데, 매번 계단을 이용해 2층까지 자전거를 옮기는 것이 힘들어 1층인 우리 집 앞에 자전거를 묶어 둔다. 그렇게 양해를 구한지도 몇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렇게 자전거를 세워줄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다.
사십 년 지기 가장 친한 친구가 스웨덴에 입양된 한국계라는 카트리나는 어쩜 친화력이 높고 수다스러운지, 북유럽 태생이라는 것이 늘 믿기지 않는다. 문 앞에서 만나면 무슨 그리 할 얘기가 많아서 나는 빨리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붙들려 곤란할 때도 있는가 하면 아파트 컴플렉스의 다양한 소식과 소문을 전해주어 아주 재밌기도 하다.
카트리나는 자전거 안장을 제법 중요시해서, 한 해에 두어 번씩은 바꾸는 것 같다. 그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카트리나와 얘기를 하고 있으려면 마찬가지로 아파트 주민, 릭(Rick)이 찾아온다. 카트리나 자전거 전담 메카닉이자, 우리의 차 '포포'를 손 봐준 아파트 건너편 자동차 공업소의 메카닉이다.
릭은 우리 집 앞을 지나칠 때마다 창 너머로, 아파트 앞에 앉아 담배를 피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치는 나를 보면서, 집에 돌아오는 길, 공업소를 오른쪽으로 끼고 우회전을 하며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해준다. 알게 모르게 고양이를 좋아하는지, 우리가 아가 고양이들을 임보 할 때마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홍보를 해 준다. 결국에 그중 한 녀석, 까복이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캘빈(Calvin)이 입양하여 메리(Mary)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우리 귀여운 복복이. 하여튼, 릭은 어떤 문제가 있던 카트리나의 자전거를 고쳐준다. 그냥 사람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카트리나와 나름의 썸이 있는 것인지, 그것은 나도 잘 모르겠다.
카트리나가 어디를 아침부터 가냐고 묻기에 옆 블럭에 포멜로가 잔뜩 떨어져 있다고 러셀이 말해줘서 주으러 가는 길이라고 답했다. 그는 굉장히 반가워하면서, 안 그래도 오늘 포멜로가 먹고 싶어 사러 갈까 싶었다고 했다. 일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워 와야겠다고 했다. 본인은 일 하러 가야 한다면서도 여전히 말이 많아서 한 십 분 정도를 서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 속의 에너지가 따뜻했다.
늘 보는 동네 길이지만, 구름 사이로 햇빛이 듬성듬성 오가는 풍경이 예뻤다. 그 속에서 아내와 느릿느릿 걷는 것이 기분 좋았다. 나는 정말로 걷는 것을 귀찮아하곤 했는데, 요즘 들어 이런 산책의 가치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차나 자전거의 시간 속에서는 볼 수 없는 작은 디테일들은 느긋하게 한 발짝, 한 발짝 걸을 때나 비로소 발견할 수 있다.
한편, 그렇게나 형들이 말했으나 '나는 다를 거야'라고 자신 있게 믿었던 20대가 지나고 30대가 되자마자,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네 한 바퀴를 걷는다. 천천히 걸을 때의 리듬이 소화 작용의 리듬과 비슷한지, 그렇게 걷다 보면 더부룩한 것이 많이 나아지곤 한다. 그리고 내가 처음으로 아내와 같이 자리를 잡아 몇 년의 시간을 보낸 이 곳이 얼마나 소중한지, 떠나게 된다면 얼마나 그리울지 생각하며 그 모습을 눈과 뇌에 담곤 한다.
철거 현장, 펜스 안을 들여다보니 정말로 포멜로들이 온 바닥에 잔뜩 깔려 있었다. 일하시는 분들께 이거 가져가도 되냐고 물으니 아주 흔쾌히 다 가져가라고 했다. 몇십 년을 자랐을지 모르는 포멜로 나무는 이미 꺾여 있었다. 왠지 마음이 찡했다. 아내와 함께, 남아 있는 포멜로라도 최대한 많이 가지고 가기로 했다.
아내는 하나, 둘, 셋, 상하거나 무르지 않은 포멜로를 줍기 시작했다. 상태가 좋은 포멜로가 많아서 너무 신이 났다. 상처 없이 잘 익은 녀석들에게서 달콤 쌉싸름한 향긋한 냄새가 났다.
아내와 나의 '동물의 숲' 속 섬, '도레미파솔라시 도'에선 체리 나무를 잔뜩 가꿨다. 한 사흘마다 주렁주렁 열리는 체리에 괜히 마음이 뿌듯하곤 했는데, 현실에서 아내가 "Y"버튼을 누르며 포멜로를 줍는 것을 보니 더더욱 그러했다. 다만, 동숲 내에선 "A"버튼을 눌러 흔들어 포멜로를 떨궈야 했을 나무가 이미 꺾여있음을 자각하니 또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했다.
제법 낡은 집이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 블럭 전체가 싸그리 갈아엎어질 줄은 몰랐다.
전조는 분명 있었다. 한 2년 전부터 큰길 너머 커다란 '럭셔리' 아파트가 두어 개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그 주변부도 점점 철거되고 커다란 건축 사무소의 팻말 같은 것이 달렸다. 거기에 마침 COVID-19이 세상을 휩쓸었다. 갑자기 일과 돈이 없어져 렌트를 내기 어려워진 이들은 가족의 집으로 돌아가거나, 렌트가 더 싼 지역으로 도망치다시피 하게 되었다. 렌트를 주던 임대인들은 렌트 값을 조금 낮추거나, 한 달 렌트를 감면해주거나, 원래는 허용되지 않던 반려 동물을 데리고 올 수 있게 눈감아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공실은 늘어만 갔고, 임대인들도 손해가 생겨 아예 건물, 매장을 팔아버리거나 혹은 다른, 더 수익성 좋은 매물을 찾아 떠났다. 그러자 대형 임대업, 건설업 회사들은 그 기회를 잡아 여러 블럭을 통째로 사서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올리게 된 것이었다. 포멜로 나무 따위가 별건가. 무려 사람들이 아프고 죽어나가고 불평등은 심해져만 가지만, 주가나 코인, 집값은 끝을 모르고 높아지는 이 세상인걸.
30L짜리 가방에 포멜로를 잔뜩 채워 넣으니 제법 무거웠다. 아직도 너무나 상태가 좋은 포멜로들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지만 더 주울 수는 없었다. 괜히 또 속이 상했다. 우리와 종종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마찬가지로 길 건너 사는 헤나(Hannah)에게 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안 그래도 새콤한 게 먹고 싶었다면서, 8개월 된 아가와 산책 나올 겸 가지러 간다고 했다. 가능한 많은 동네 주민들이 포멜로를 가져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 포멜로가 널브러진 땅 바로 옆, 샛노란 포멜로 색의 건물의 문은 체인과 자물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 캄보디아계 부부가 이 동네에서 제법 오랜 시간 동안 운영했던 이 주류상도 결국 COVID-19로 인한 어려움과 자본의 힘에 문을 닫고야 말았다. 그새 녹이 슨 쇠창살과 그 위로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그라피티에 왠지 마음이 좀 그렇다.
주운 포멜로를 하나하나 꺼내 쌓아보니 정말 많았다. 더 주워오지 못한 것이 아쉬우면서도, 이것을 어찌 다 손질하고 먹을지 또한 커다란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었다.
아내에게 포멜로 지옥이 펼쳐졌다. 하나하나 껍질을 잘 씻어낸 뒤 질긴 껍질을 까고 까 내어도 포멜로는 쌓여 있기만 했다. 온 집이 정말 상큼한 향으로 가득 차, 지켜보고 있는 나로선 마치 아로마테라피를 받고 있는 것만 같았다.
도중에 까 놓은 것을 먹어보기로 했다. 어찌나 탱글탱글하고 향이 좋은지. 침이 고인지는 이미 오래였다.
어느 집 뒷마당에서 주워온 포멜로라고 하기엔 너무나 맛있었다. 가득한 수분에, 신맛과 단맛, 그리고 씁쓸함이 아주 적당하게 균형을 잡고 있었다. 자몽과 레몬, 그리고 레모네이드, 그 어느 가운데였다. 완전히 다 익기 전에 수확되어 판매되는 상품과는 달리, 익을 대로 익은 뒤에 떨어진 녀석들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기에 나는 또 열심히 일을 하러 가고, 아내는 마저 포멜로를 정리를 하러 갔다.
아내는 포멜로의 일부분을 청으로 담가 두었다.
아무리 LA라고 해도 쌀쌀하고 꿀꿀한 요즘 겨울 아침, 그가 준비해둔 달콤하고 씁쓸한 포멜로 차 한 잔, 고소한 커피 한 잔, 버터향 가득한 크랜베리 스콘과 함께라면 견딜만했다. 특히나 술을 많이 먹고 난 다음 날이라면 말이다.
도대체 이 많은 포멜로를 어떻게 다 먹을까 고민하다, 아내가 평소 사용하는 레몬즙 대신 포멜로 즙을 넣고 치즈케익을 구워 내었다.
레몬보다 더 시고, 살짝 달콤한 맛이 도드라지는 아내의 이번 치즈케익에서 키라임 파이가 연상되었다. 크림치즈가 도저히 느끼하게 느껴지지 않아, 한 조각씩 잘라 서빙하지 않았다면 질리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한 판을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서 케익 한 통을 먹은 전력이 몇 번이나 있는 나이기에 이는 진심이었다.
며칠 전, 또 속이 안 좋아서 동네 구석구석을 걸었다. 봄이 오는지 꽃이 많이 피었다. 옆 길에 자리 잡고 있는, 겨우내 잎을 다 떨군 무화과나무 가지 끄트머리에 다시 조그마한 새순들이 송송 맺혀 있었다. 포멜로 빛 주류상엔 그라피티가 몇 개 더 생겼다. 그 바로 옆 포멜로가 굴러다니던 터는 언제 그런 게 존재했냐는 듯 너무나도 깔끔하게 텅 비어 있었다. 포멜로 나무 그루터기가 있던 자리에는 건축 사무소로 쓰이는 커다란 컨테이너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옆 블럭까지 밀어 버렸다. 몇 년 전, 내가 이 동네에 이사 올 때 트럭을 빌렸던 트럭 렌털 센터이자 차량 정비소였던 곳이다. 그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폐 타이어만 구석에 버려져 있었다. 마침 매년 이 즈음이면 활짝 피는, 배롱나무와 닮은 분홍빛 트럼펫 꽃나무만이 그나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건너편의 난초 가게도, 그 옆 지붕 가게도, 다 팔렸다. 그 옆 옆, 요가 센터와, 피자집과, 타코 집과 만두집을 가지고 있는, 마찬가지로 포멜로 빛의 건물 또한 헐린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그놈의 럭셔리 아파트가 된단다. 돈이 없어 렌터들이 나가는 이 시점에, 이렇게 공실이 많은 이 시점에, 누군가는 커다란 자본을 끌어와 아파트를 짓는단다. 그 와중, 릭이 일하고 있는 바로 건너편 자동차 공업소와, 그 옆 카페이자 바, 레스토랑은 끝까지 버티기로 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구나.
남은 포멜로는 마늘향 가득한 저녁 식사 후에 입가심용으로 하나씩 까서 먹고 있다. 터무니없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많이도 먹었다. 이파리까지 달려 있어 관상용으로 남겨둔 이 녀석도 이제 곧 먹을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소화가 더 이상 잘 되지 않는 30대가 되어가고, 나의 이 소중한 동네도 변해가며 또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고작 열매 하나하나, 이 녀석들 안에는 내가 이 동네에 대해, 이 동네에 살면서 얻게 된 소중한 기억들과 추억이 담겨 있다. 그것은 참으로 달콤하고, 상큼하고, 조금은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