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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Dec 31. 2022

잠에 들 용기란 희망의 고됨을 의미하는지도 몰라

하루를 마감하는 마음이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날들이 많다. 24시간은 이미 똑딱똑딱 거의 다 소진되어 버렸고, 특별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절대 다시 되돌릴 순 없는 날짜. 그 숫자가 기어이 떠나가 버리겠다고 나를 협박하는 시간이 바로 11시. 사람들은 그 시간에 대한 산문과 시와 노랫말을 많이도 썼다. 하루 끝에서 그를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시작할 수도 없는 아쉽디 아쉬운 마음은 언제부터 우리의 집단 무의식 속에 존재했던 것일까.

사랑하는 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세상이 나에게 조처한 대우가 실망스러워서, 남들이 날 힘들게 하고 내가 남들을 힘들게 해서 눈을 제 시간에 감지 못하는 날들이 나에게도 많았다. 낮동안에는 환하게 웃을 수 있고 열심히 일할 수 있는데 밤에는 왜 그렇게도 눈물이 흐르는 걸까.

아, 그러던 때도 있었다. 세상이 나를 배신하고 내가 애써 쌓아왔던 것들이 무너져버린 한 순간. 하루끝을 넘기는 걸로도 모자라 가로등이 총총 박혀있는 시커먼 도로를 응시하느라 밤을 다 보내던 때, 죽음이 나에게 한껏 다가와 협박을 일삼았고 심장이 너무도 두근거려 안대를 쓰고도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던 때, 산뜻한 사랑이 되어 줄거라 믿었던 이가 갑작스레 나를 떠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이 무엇인지 처절하게 배워버렸던 때. 이 문단에는 아직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쓰지 못하겠다. 나에게 오지 않는 잠을 붙잡고 매달려야할 밤이 얼마나 더 남아있는 걸까. 그 숫자를 짚어보기가 참담하고 끔찍하다.

비참함 뿐 아니라 사랑과 희망에도 시간이라는 축이 있어 하루가 끝나면 그 곳에 두고 내일로 가야한다.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는데, 우물쭈물 꾹 붙잡으며 어떤 것도 해결하지도 못하는 내 모습. 우리는 오늘을 너무 사랑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버린 탓에 새로운 소망을 가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배회하며 방황하는지도 모르겠다.

좋으나 싫으나 하루를 마감하기 힘들 때마다 나는 이런 저런 명언과 인기인들의 따뜻한 말들 따위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넌 꽤 괜찮은 아이야, 너의 의도는 옳았어, 운이 안좋았을 뿐이야… 모종의 자가돌봄 시리즈는 먹히는 날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눈물이 멈추고 마음이 편해지는 날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다.

지구의 하루가 냉정하게 종료되는 그 시점까지 잠들 수 있는 마음이 아니라면 다음 하루도 어정쩡하게 끼워진 단추처럼 시작되어버리곤 한다. 어딘가 어긋난 하루, 어제나 내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찬 오늘은 대체로 그렇게 만들어진다. 지겹다. 그래서 나에게 필요한 건 생각은 덜하는 일일까, 호기롭게 잠에 드는 것일까. 하나님은 오늘만큼은 잘 자고 싶다는 내 기도를 들어주기도 나를 그저 방치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에게 을인 나는 그저 또 매달릴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잠에 들 용기를 완전히 잃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한다. 잠에 드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도 힘든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오래된 것을 보냄과 동시에 새로운 것을 맞아야 하고 새로운 꿈을 꿔야 한다는 고된 축복 앞에서의 어떤 의식일지도 모른다. 희망은 원래 그렇게 거센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버거운 길이다. 그래서 잠이 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나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오늘인 거야. 더 이상 어제에 대한 미련과 미래를 재어보는 마음은 접어두리.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한 해를 다짐하리. 그런 바람을 타고 새로운 한 해가 나에게로 왔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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