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구속은 가뜩이나 힘든 군 생활의 고충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군대에서는 여러모로 자유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 신체의 자유가 구속된다. 휴가나 외박을 제외하고는 부대 내에 꽁꽁 묶여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훈련병 때는 자살 예방을 위해서라며 화장실도 조를 짜서 가게 한다.
군대에서는 정신적 자유 또한 크게 제한되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게 평소 즐기던 취미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덕후가 덕질을 못한다는 것, 이것은 꽤 괴로운 일이다. 마음껏 콘텐츠를 소비할 수도 없고 굿즈를 사모으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콘서트나 페스티벌은 비유를 하자면 알파카 정도 될 것 같다. 세상에 실재하지만 나는 결코 볼 수 없는 존재. 좋아하는 가수가 콘서트를 여는데 부대에 옴짝달싹 못하고 머물러 있어야 하는 심정은 정말 겪지 않고서는 모른다. 사병에게 덕질은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다.
비단 콘서트 뿐만이 아니다. 음반이나 출판물을 구입하는데 있어서도 덕질은 제한된다. 군부대에서는 주적에 대한 찬양, 고무를 방지하고 국가관을 투철히 하기 위해 부대 내로 들여오는 콘텐츠들에 대해 일일이 보안심사를 실시한다. 이 심사를 거쳐야만 비로소 부대 내 소지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이 보안심사라는 게 본래의 목적대로 이적물에 대해서만 적용되면 좋으련만, 지휘관의 기분이나 성향에 따라 사또 재판처럼 이랬다가 저랬다가 한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누구는 맥심 같은 선정적인 잡지도 통과시켜주지만, 또 누구는 장하준 교수의 경제 서적도 못 들이게 한다. 국방부가 그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반자본주의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불온도서로 선정했다는 게 그 명분이었다. 그 책이 진짜 그런 내용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애먼 나머지 저서들도 불온하다는 딱지를 붙일 필요가 있나. 그 뿐만 아니라 심사하는 정보과 계원의 컨디션에 따라서도 천양지차로 갈린다. 구구절절 설명하긴 했지만 결론은 '케바케'라는거다.
나는 일병으로 진급한 뒤 슬슬 동방신기의 일본 싱글앨범들을 사 모으고 있었다. 이등병 때는 눈칫밥 먹느라 벼르고만 있던 일이었다.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제법 많은 앨범을 발매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규 1집 , 정규 2집 이런 식으로 앨범을 내고 활동을 했지만 일본에서는 싱글앨범을 먼저 발매한 뒤 나중에 그 곡들을 다시 모아 정규 앨범을 내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군대에 오기 전엔 게으른 천성 탓에 그저 언젠가 사겠지 생각하고 말았는데, 과거 앨범들이 하나 둘 품절되기 시작하는 걸 보니 위기감이 들기 시작했다. 전역 때까지 미적거렸다간 <Forever love>나 <明日は来るから(아스와쿠루카라/내일은 오니까)> 같은 싱글 앨범들을 구할 수 없게 될 것만 같았다. 중고 매물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리고 사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만큼은 새 걸로 사고 싶었다. 그 즈음부터 인터넷을 통해 일본 앨범들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류열풍의 초석이 되기도 했던 그 앨범들은 군대로 들어오자마자 보안심사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속된 말로 빠꾸 먹은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다. 당연히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정성 폭력성 이적성 어느 하나 위배되는 게 없었기에 보안심사를 그저 형식적인 절차로 여겼던 터였다. 나는 평소 가까웠던 정보과 부사관을 찾아가 심사를 탈락한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문의했다.
"상사님, 제 CD가 통과되지 못 했는데 이유 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이 황당했다.
"왜색"
왜색 논란(?)을 빚은 동방신기의 일본 싱글 앨범 <明日は来るから>. 보안심사를 거쳐 우측의 스티커를 받아야만 부대 내 소지가 가능하다
동방신기가 일본 활동도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가 앨범 자켓에 쓰인 일본어만 대충 보고는 일본 가수의 앨범이라고 판단해 승인을 거절했던 것이다. 나는 너무도 황당해 웃음이 나왔다. 좋다. 설령 일본 가수의 앨범이라고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21세기에 왜색 논란이라니. 유신시절 이미자 선생의 <동백 아가씨>를 비롯한 일부 대중가요가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금지 당했다는 뉴스는 들어본 적이 있어도 요즘 세상에 같은 이유로 문화의 소비를 규제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CD가 반송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한 나는 그를 설득했다. '이것은 왜색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한류의 증거다', '이것이야 말로 애국이고 국위선양이다'. 나름의 촘촘한 논리를 세웠다. 반박에 재반박 논리까지 짜놓고 담당관을 찾아갔다. 그런데 (결과적인 이야기이지만) 사실 이 정도 논리까지는 필요하지 않았다. 호탕한 성격의 그가 우리나라 가수라는 내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통과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뭐, 조금은 김이 빠지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가 있었던 덕분에 나는 군대에 있으며 틈틈이 동방신기의 앨범들을 사 모을 수 있었다.
부대에서 내가 맡은 보직은 정훈공보병이었다. 정신교육(정훈)과 부대 내 방송이나 출판물(공보) 등을 담당하는 자리다. 지역 신문과 대민지원 기사를 기획하기도 한다. 당연히 요란하게 울리는 아침 기상나팔이나 취침 전 '오늘의 명상' 같은 방송도 나의 업무 중 하나였다.
그런데 하루는 부대장이 나를 본인의 집무실로 호출했다. 보통 정훈장교를 통해 지시사항을 하달하는데 그날만큼은 나를 직접 불러들였다. 나는 내가 뭘 잘못했나 살짝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집무실로 들어가보니 CD 한 장을 스윽 건네주는 게 아닌가. 자기 조카가 이번에 한중일 합작 그룹 컨셉으로 데뷔를 했으니 홍보 차원에서 아침 구보시간에 군가 대신 그 앨범을 틀라는 것이 나를 부른 이유였다. 나는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당나라 군대가 다 있나. 기분이 썩 내키지 않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 노래도 못 듣고 사는데 군가 대신 자기 조카 노래를 틀라니. 하지만 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법과 규율보다 지휘관의 명령이 더 준엄한 게 군대이니까. 나는 하는 수없이 아침마다 그들의 노래를 반복해서 내보냈다. 그런데 듣다보니 중독성이 느껴졌다. 원더걸스의 <Tell me> 이후 한창 후크송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몇몇은 일과후 내부반에서 부대장 조카의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제서야 정신교육의 효용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세뇌작전이구나!
그런데 매일 그 그룹의 곡을 틀고 있자니 조금씩 배알이 꼴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름 모를 가수 곡도 틀어주는데 동방신기 곡은 틀면 안 되나?' 그 순간 나는 팬으로서 일종의 사명감 같은 걸 느꼈다. 내 비록 영창을 가는 한이 있더라도 소신을 꺾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솟았다. 그 소신의 방향이 잘못되어 '군가를 틀겠다'가 아니라 '동방신기 노래를 틀겠다'로 가버린 건 문제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그날로 동방신기의 노래도 같이 틀기로 결심했다. 은근슬쩍 플레이리스트에 끼워넣어야겠다는 심산이었다. CD에 있는 곡 중 <Rising sun>, <O-正.反.合> 같이 아침 구보시간에 어울릴 만한 곡들을 엄선했다. 그리고 한중일 합작 아이돌의 곡들 사이에 그 곡들을 끼워넣었다.
동방신기의 곡들을 처음 내보내던 날, 정말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부터 고민과 근심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솔직히 쫄리기도 했다. 걸리면 어쩌지? 징계받는 것 아냐? 변명 거리라도 만들어둘까?. 호기롭게 시작하기는 했지만 막상 그 이후의 날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밑져야 영창(?)이라는 생각으로 과감히 단행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간부(장교, 부사관) 중 나에게 뭐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Rising sun>을 들으면서도 다들 부대장 조카의 노래려니 여겼던 모양이다. 성공의 열매는 짜릿했다. 육군 규정을 뒤져보지는 않았지만, 만약 그게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부대장 선에서 적당히 넘어갈 것임을 나는 굳게 믿었다. 계급은 천지차이였지만 나름 공범이었기 때문이다.
하루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공 병장이 내게 다가왔다. 나보다 선임이었지만 나이는 어렸던 그는, 같이 운동을 하거나 노래방을 다니며 친해진 사이였다.
"오늘 아침에도 라이징썬 나오더라? 역시"
그는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엄지를 척하고 치켜세웠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걱정어린 충고가 뒤를 이었다. 그래도 너무 대놓고 트는 건 위험하지 않겠냐, 간부 중에 누가 눈치라도 채면 부대장 귀에 들어가기도 전에 징계를 받지 않겠냐.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다들 알거라고는 예상했지만 막상 '지켜보고 있다'는 뉘앙스의 말을 직접 들으니 갑자기 쫄리기 시작했다. "그렇습니까? 신경 좀 써야겠습니다" 나는 머쓱하게 얼버무리고는 곧장 방송실로 향했다. 그리고 플레이리스트에서 기껏 추가했던 곡들을 삭제했다. '영창 보낼테면 보내봐라'던 패왕색 패기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비록 한 발 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무릎 꿇고 싶지는 않았다. 그 날 이후 나는 전략을 바꾸었다. 모두가 듣는 아침 구보시간에 트는 건 위험하니 취침 전 명상 방송에 배경음악으로 삽입해야겠다는 작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임이 피아니스트 이루마를 좋아했던 탓에 이루마의 연주곡을 배경음악으로 쓰고 있었는데, 그 선임은 말년이라 이제 이빨도 다 빠졌겠다 이참에 바꾸면 되겠다 싶었다. 마침 동방신기의 일본 앨범들에는 발라드곡의 반주(less vocal)만 들어간 트랙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취침시간마다 그 트랙을 재생하고 '오늘의 명상'을 읊었다. 내심 부대원들이 '그 곡이 뭐었냐'고 물어봐주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군대에서 남몰래 덕질하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방신기의 발라드 반주곡들은 내가 전역날 CD를 모두 챙겨 나오기 전까지 우리 부대에서 매일 밤 흘러나왔다. 아마 지금도 그들의 무의식 속엔 내가 심어준 동방신기의 선율이 남아있을 것이다. 덕후들의 열정은 군대라는 척박한 땅에서도 얼마든지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믿고 있다.
PS. 군부대에서 비영리 목적으로 공표된 지 6개월 지난 상업용 음반을 재생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위배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