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질은 성장하는 자아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나는 영어를 못 한다. 잘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아주 젬병이다. 영어를 못 해서 대학 졸업을 미룬 적도 있었다. 여느 대학과 마찬가지로 우리 학교도 졸업을 위해서는 한두 가지의 외국어 능력을 요구했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토익이나 플렉스(FLEX) 같은 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에 도달해야 했다. 나는 사실 처음에는 그 시험들을 조금 만만하게 여겼다. 겪어보진 않았어도 주변 친구들은 별 무리 없이 통과했기 때문이다. 다들 토익 시험만 봤다하면 900 몇 점이 나왔고 못 봤다고 해도 850 언저리였다. 그들의 지적 능력이 나보다 월등히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나 역시 시험을 보면 800 정도는 거뜬히 넘을 줄 알았다.
졸업을 얼마 앞두고 시험에 응시했다. 시간이 부족해 몇 문제 찍기는 했지만 후회 없이 문제를 풀었다. 점수는 졸업 관련 서류를 마무리 해야하는 시점에 나왔다. 처참하게도 610점이었다. 당연히 그해 졸업은 물 건너 가버렸다.
영어는 처참할 지경이지만 그렇다고 외국어 공부를 아예 손 놓았던 건 아니다. 일본어 공부는 제법 큰 열의를 갖고 시작했다. 그것도 군대에서. 늘 일본어 교재를 들고 다녔고, 불침번을 서는 밤이면 손바닥 만한 수첩에 빼곡히 적은 단어들을 틈틈이 외웠다. 무료한 시간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도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순전히 동방신기 때문이었다.
동방신기는 일본에서 제법 많은 앨범을 발매했는데 그 안에 있는 곡은 모두 일본어로 불러졌다. 심지어는 방송이나 콘서트도 모두 일본어로 진행했다. 그들은 K-POP 가수 동방신기인 동시에 J-POP 가수 토호신기였다. 물론 처음엔 동방신기의 일본 노래를 듣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노래 중에도 좋은 곡이 많은데 굳이 생소한 일본 노래까지 찾아들을 필요가 있을까? 그들이 마치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외골수처럼 느껴졌다. 나는 우리 사회가 오타쿠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동방신기의 일본 콘텐츠를 소비하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신기함과 의아함 그 사이였다.
하지만 그런 편견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니, 180도 뒤바뀌었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우연히 동방신기의 일본 콘서트 영상을 접한 이후부터였다. 토호신기(동방신기의 일본명)는 분명 같은 그룹이지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가사처럼 그들의 노래에 빠져들었고, 헤어나지 못하는 노예가 되었다.
흔히들 <주문>이나 <Rising sun> 같은 대표곡들 때문에 망각하곤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아카펠라 그룹을 표방하며 데뷔한 아이돌이었다. 그 정체성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듯, 일본에서의 곡들은 감성적인 발라드곡들로 가득했다. 예를 들면 이런 곡들이 있다.
風になって そっと包みたい 君がいる世界に すぐ 飛んで行きたい
(카제니 낫테 솟토 츠즈미타이 키미가 이루 세카이니 스구 톤데 유키타이)
바람이 되어 꼭 안아 주고 싶어, 네가 있는 세상으로 얼른 날아 가고 싶어
- 忘れないで (와스레나이데/잊지 말아줘)
雨降る時には君の傘になろう 風吹く時には君の壁になろう
(아메후루 토키니와 키미노 카사니나로우, 카제후쿠 토키니와 키미노 카베니나로우)
비가 내릴 때에는 너의 우산이 될게, 바람 부는 때에는 너의 벽이 되어줄게
- 明日は来るから (아스와쿠루카라/내일은 오니까)
まっすぐ二人を照らした夕焼け煌めいてる 今まで感じたこと無いくらい胸の深くが熱い
(맛스구 후타리오테라시타 유우야케키라메이테루, 이마마데 칸지타코토나이쿠라이 무네노후카쿠가아츠이)
똑바로 두 사람을 비춘 저녁놀이 빛나고 있어, 지금까지 느낀 적 없는 정도로 가슴 깊은 곳이 뜨거워
- Forever love
난해하고 무의미한 가사가 범람하던 시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후크송에 지친 나는 잔잔한(때론 폭발적인) 멜로디와 아름다운 화음으로 가득한 그들의 일본 발라드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나의 감성을 촉촉하게 적신 건 서정적인 노랫말들이었다. 바람 부는 때에는 너의 벽이 되어주겠다니.. 그들의 발라드곡들은 마치 화음을 맞추어가며 읽는 한 편의 시 같았다. 일본어는 하나도 할 줄 몰랐지만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리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가사를 외웠다. 물론 그렇다고 일본어 문법이나 규칙을 공부한 건 아니었다.
"데모야, 와라카쿠, 코노테, 카라코보레타, 키미(하지만 부드럽게 이 손에서 흘러내리는 너)"
"그게 아니라 '데모, 야와라카쿠, 코노테카라, 코보레타, 키미'로 띄어서 읽어야 해"
가사를 달달 외우기만 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일본어를 잘했던 대학 동기 누나는 종종 나의 '무근본' 일본어를 바로 잡아주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고맙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뭐랄까, 팝송을 좋아하긴 하는데 정확한 가사를 몰라 "아나까나 까나리"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가사로 전달되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직접 이해하며 듣는 것과 번역된 텍스트로 보는 것은 차이가 있으니까. 내가 본격적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다른 외국어에 비해 일본어가 갖는 장점이 있다면 우리와 문장 구조가 같아서 단어만 외우면 된다는 것이다. 한국어 번역본을 대조해가며 가사를 외우기만 해도 JLPT N3에 해당하는 단어들을 제법 익힐 수 있었다. 특히 동방신기의 노래들을 듣다보면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들이 몇 개 있는데 그런 단어들은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예를 들자면 '보쿠노 세카이(나의 세계)', '키미노 세카이(너의 세계)', '마모루카라(지킬테니까)', '다키시메루(부둥켜 안다)' 같은 것들.
거기에 더해 "쿄 혼또니 아츠이데스네(오늘 정말 덥네요)", "모리아갓테 이키마쇼!(대충 분위기를 띄워보자는 의미)"처럼 멤버들이 콘서트 때마다 자주 언급하는 표현들도 쉽게 익혔다. 물론 "모리아갓테 이키마쇼!"라는 말을 일본생활을 하며 써먹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노랫말로 일본어를 공부하는 게 부작용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구출불가능(Rising sun)', '순종적인 집사', '극락조화'(9095)처럼 일상에서는 전혀 쓰지 않는 단어나 표현들도 머릿속에 입력되어버린 것이다. 어휘력이 풍부한 와중에 저런 생소한 단어도 익힌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는 단어도 별로 없는데 저런 단어들부터 외우다보니 이따금 일상 속에서 이상한 쪽으로 발현되곤 했다.
예를 들면 길을 걷다가 해질녘 하늘을 바라보며 옆사람에게 "저녁노을이 우리를 비추고 있네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일본인 친구들은 내게 "동수상은 표현이 서정적"이라며 칭찬해주었다. 그 순간은 우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가사로 일본어를 공부한 탓에, 가사에 없는 표현이나 단어는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자주 반복되다보니 내 자신이 민망해졌다. 어쩌면 당시 일본인 친구들은 나를 '이상한 표현은 잘만 하면서 정작 평범한 말은 못하는' 한국인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느꼈던 머쓱함이 어쩌면 내가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도 같다.
친구 중에 러시아 문학에 빠져 러시아어과로 진학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솔제니친의 소설을 원서로 읽기 위해 러시아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도통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한국어 번역본도 시중에 쫙 깔려 있는데, 그깟 소설이 뭐라고. 나에게 외국어란 그저 꾸역꾸역 공부해야하는 과목일 뿐이었다. 외국어에 의욕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죽어도 영어 공부 만큼은 하기가 싫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들으면 "나 마저 영어를 잘 하면 영어교사들은 뭘 먹고 사느냐"며 핑계를 둘러대기도 했다.
하지만 내 자신이 동방신기에 빠져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서, 나는 비로소 러시아 문학에 빠져 살던 그 친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좋아하는 대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싶었던 그 심정을. 그에게 외국어 공부는 덕질을 위한 전제였고, 내면에 품고 있던 열정의 발로였던 것이다. 삶이 정체되어 있는 것 같다면 덕질을 시작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을 동력 삼아 우리는 나날이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