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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수 Oct 27. 2020

CD를 사려면 대한해협을 건너야만 해

품절된 앨범 구하기

나는 동방신기의 앨범을 두 장씩 산다. 하나는 듣기 위한 용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소장용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소장용 앨범 하나만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정규 앨범이나 콘서트 DVD처럼 중요한 자료(?)는 여전히 두 개씩 산다. 이것은 일종의 심리적 안전장치다. 두 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크나큰 안도감을 준다. 만일 하나가 파손되거나 분실되더라도 또 다른 하나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품절됐다고 발을 동동 구를 일이 없다.


같은 앨범을 두 개나 사는 데에는 다른 의미도 있다. 하나쯤은 포장지를 뜯지 않은, 새것의 상태로 놔두고 싶은 심정에서다. 이것은 팬심이라면 팬심이다. 구매했을 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앨범을 보면 때묻지 않은 순수의 상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 감정은 마치 아직 눕지 않은 새하얀 호텔 침대를 보는 것처럼 산뜻하다. 아마 팬중에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감정을 알기에 때로는 서글퍼지는 경우도 있다.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미개봉 중고앨범'을 볼 때 특히 그렇다. 그 판매자는 왠지 나처럼 열정적인 팬이었을 것만 같다. 그러다가 어떠한 이유로 마음이 식어 그것들을 처분하는 과정이리라. 한때 누군가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아온 앨범이 중고 신세가 되어 내놓아진 모습은 만신창이가 된 우상을 보는 것처럼 씁쓸하다.


나는 남팬이기도 하거니와 성격도 게으른 편이라 공개방송을 찾아다니거나 팬클럽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느지막이 '입덕'한 탓에 앨범을 구하는 것이 문제였다. 우리나라 앨범은 그럭저럭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 앨범은, 그 중에서도 싱글 앨범은 출시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품절된 경우가 많았다. 아마 우리나라에 들여온 물량 자체가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좋아하는 곡이 수록된 싱글 앨범을 구할 수 없다는 건 정말 속이 쓰린 일이었다. 나는 길을 가다가도 레코드 가게가 보이면 곧장 들어가 동방신기의 앨범들을 살펴보았다. 인터넷에서는 이미 품절된 앨범이라고 하더라도 레코드 가게에는 아직 재고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실제로 수원 팔달문시장 앞에 있는 레코드 가게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아직 팔리지 않은 싱글 앨범 몇 장을 발견한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보물찾기로 다마고치 같은 대형(?) 상품을 받았을 때보다도 기쁜 심정이었다.


한번은 군대에 있을 때 대학교 동기에게 일본 앨범을 하나 부탁한 적이 있었다. 외국어에 능통했던 그녀는 자기가 직접 해외직구를 통해 그 앨범을 구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팔지 않는 앨범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해외직구를 한다는 발상 자체를 한 적이 없었다. 그게 가능한지도 몰랐다. 그녀가 마치 천군만마처럼 든든했다. 그녀는 그런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얼마 뒤 군대로 소포가 왔다. 상자를 여는데 정말 그 안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기대와 흥분은 케이스를 열었을 때 산산조각 나버리고 말았다. CD 케이스를 보면 가운데에 톱니바퀴처럼 생겨서 CD를 고정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게 와장창 깨져있었기 때문이다. 파편들이 널려있는 모습은 처참하기에 그지 없었다. 그렇다고 고생한 동기에게 나무랄 수도 없고, 교환을 요청할 수도 없으니 참.


2017년 가을 '~Begin again~'이 발매된 직후 도쿄 시부야의 타워레코드를 들렀다. 일본에서 데뷔한지 12년도 넘은 때였지만 여전히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2020년 1월 시부야 타워레코드에 방문했을 당시. 김재중의 커버앨범이 대대적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해외에 나갈 때마다 그 지역 중고 레코드점에 들러 재즈LP를 사모은다고 한다. 사실 제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고 국가 간 장벽이 낮아졌다고 한들 직접 가는 것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진열대에 꽂혀있는 제품 하나하나가 모두 온라인에 공유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 역시 일본에 갈 때면 늘 타워레코드(일본 음반전문매장)나 동네 음반매장을 기웃거렸다. 그곳에서 운 좋게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과거 앨범이나 DVD를 찾기라도 해면 날아갈 듯이 기뻤다. 그 쏠쏠한 재미를 계속 누리고 싶어 한번에 왕창 사지 않고 갈 때마다 한두 장씩 사왔다.


내친김에 타워레코드 자랑(?)을 하나 해야겠다. 삿포로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시절, 집 근처에는 타워레코드가 하나 있었다. 그 매장은 백화점 건물 한 층을 차지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 공간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법한 규모였던데다 동방신기의 앨범도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도쿄 시부야에 있는 타워레코드를 방문하게 되었을 때, 정말 입이 떡 벌어지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6층짜리 건물 하나가 통째로 음반매장이었다. 더군다나 K-POP에도 한층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동방신기는 그 중에서도 단연 스타였다. 기존 앨범들은 세 개의 진열대를 가득 채웠고, 최신 앨범은 가장 중심부에 대대적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잔뜩 쌓여있는 광경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가슴이 웅장해진다.


현지 레코드점에서 국내에서 구할 수 없는 과거 앨범이나 DVD들을 구매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시부야 한복판의 거대한 음반매장은 방문하는 것 자체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비단 동방신기의 앨범이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적 추세가 이미 스트리밍으로 넘어 온 시점에서, 이만한 규모의 대형 음반매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한 덕분이었다. 어쩌면 그 배경에는 아직까지도 페이나 신용카드보다는 현금을 사용하고 있는 일본의 독특한 문화가 내재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유야 무엇이든 매장을 돌아다니며 발매된지 몇 년 지난 앨범들을 살펴보다 보면 강한 소장 욕구와 함께 향수가 스멀스멀 되살아난다. 그 아날로그적 팬심은 디지털화 된 파일들 속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성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거기에 발 맞추어 사람들이 음악을 소비하는 형태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렇다면 팬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도 달라지게 될까? 미래의 팬심은 어떤 방향으로 진화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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