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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수 Sep 02. 2020

홀로 도쿄돔에 간 남팬의 이야기

"한 번 떠나간 콘서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공항을 빠져나오니 이미 밤은 깊어 있었다. 삿포로에서 도쿄는, 서울에서 도쿄만큼 먼 거리였다는 걸 새삼 다시 느꼈다. 바로 전철을 타면 도쿄를 들어가기도 전에 이름 모를 어딘가에서 멈출 것만 같았다. 가뜩이나 도쿄는 초행길인데 길을 잃을 순 없는 노릇, 결국 공항 인근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황급히 와이파이를 켜고 근처 호텔을 잡았다. 나리타시에 있는 비즈니스 호텔이었다. 주변에는 논밭이 펼쳐져 있었고 이따금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허기가 졌다.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과 튀김을 샀다. 방에서 TV를 틀어놓고 홀짝홀짝 맥주를 마시는데 들뜬 감정을 좀처럼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른 아침 호텔을 나섰다. 드디어 도쿄돔에 간다는 생각에 새벽부터 눈이 번뜩 뜨였다. 도쿄의 관문인 우에노역으로 향하는 전철을 탔다. 일반 전철을 타면 나리타에서 우에노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평범한 도시의 모습마저 아름답게 다가왔다. 물론, 처음 가는 도쿄이기에 그런 걸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도쿄에 발을 디딘 순간, 처음 느낀 감정은 기쁨과 환희가 아닌 당혹감과 이질감이었다. 그것은 마치 <산시로>의 주인공(산시로)이 도쿄에 처음 당도했을 때 느낀 감정과 비슷했다. 나는, 비록 서울 출신임에도, 삿포로와 비교할 수 없는 도쿄의 번화함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마치 이 도시는 한 줌의 맨 땅도 허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어지럽게 하는 것은 지하철 노선도였다. 다른 나라 사람이 서울에 와도 같은 기분일까? 수많은 노선이 얽히고 설킨 도쿄의 지하철 노선도는 정말 보고만 있어도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게다가 회사가 다르면 게시된 노선도도 달랐다. 꿈 속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개념이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도쿄돔을 가기 위해서는 JR 주오소부센이나 도에이 미타센을 타면 된다는데 당최 어디로 가야하는 지 갈피를 잡을 수도 없었다. 


환승을 위해 신주쿠역에서 내렸다. 그런데 이 역에서만 10개가 넘는 노선이 지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사방이 공사중이었다. 나는 졸지에 삼척동자가 되었다. 승강장을 몇 번을 오르내리며 길을 헤맸다. 그나마 어렵고 복잡한 도쿄의 지하철 시스템 속에서 JR 소속 노선을 타면 그 노선들끼리는 환승이 무료라는 것을 익혔고, 그 덕분에 어떻게 저떻게 해서 신주쿠역을 지나 스이도바시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쿄 스이도바시역에서 도쿄돔으로 가는 출구(좌)와 후쿠오카 야후오쿠돔으로 가는 길(우)


오는 길은 험난했지만 스이도바시역에 도착하고나서는 전혀 걱정할 것이 없었다. 수많은 인파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되었다. 사람들이 가는 데로 가는 것. 이는 아이돌 팬이라면 마치 큰 바다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고향을 찾아가는 연어떼처럼 몸에 밴 습관일게다. 나는 우리나라 올림픽공원 콘서트 때나 심지어 (역과 공연장 사이의 거리가 꽤 먼)후쿠오카 야후오쿠돔 콘서트 때에도 이 방법대로 공연장을 찾았다. 어쩜 다들 이렇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길을 찾아가는 지. 귀신 같이 최적경로로 길을 찾는 팬들을 보노라면 집단지성이란 게 이런건가 싶기도 하다.


도쿄돔은 스이도바시역에서 도보로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공연 두 시간 전이었음에도 이미 역 앞은 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콘서트 날짜에 맞춰 비공식 아이돌 굿즈를 판매하는 상인들이 여럿 보였다. 이건 만국공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리어카 가득 쌓여 있는 한국가수의 굿즈를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시간도 많이 남았는데 구경할까도 싶었지만, 괜히 한번 보면 이것저것 사게 될 것 같아 눈길도 주지 않고 도쿄돔으로 향했다.


스이도바시역 앞에서 JYJ 굿즈를 판매하고 있는 리어카상(좌)과 도쿄돔 앞에서 사진 촬영 중인 어느 일본 팬(우). 참고로 모르는 분이다.

도쿄돔은 아티스트에게도 팬들에게도 꿈의 공간이다. 일본에서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지 않고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일본의 콘서트들은 라이브 하우스(1~2천 명 규모), 홀/부도칸(5천~1만 명), 아레나(1만~3만), 돔(3만~5만)으로 규모를 나누는데 동방신기는 2006년 라이브 하우스에서 첫 콘서트를 연 이래 매년 한 단계씩 단위를 높여나갔다. 2009년 7월 도쿄돔에서 열렀던 콘서트 '4th LIVE TOUR 2009 ~The Secret Code~'는 동방신기가 이제 막 일본에서 정상에 올랐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는 자국 가수들조차 이루지 못한 빠른 성장세였다. 이후 두 명이 된 동방신기는 올해 초까지도 돔 투어를 이어오고 있으니 그들이 일본에서 누리고 있는 인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때 내가 간 콘서트는 동방신기에서 나온 세 멤버(김재중, 김준수, 박유천), JYJ의 세 번째 도쿄돔 콘서트였다. 지금은 비록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JYJ 역시 돔 투어(도쿄돔, 오사카 쿄세라돔, 후쿠오카 야후오쿠돔)를 돌 만큼 최정상급 인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도쿄돔 한 편에 마련된 굿즈판매대. 공연 시작이 2시간이나 남은 시점이었지만 이미 꽤 많은 상품들이 품절이었다. 나는 라이트스틱(맨 오른쪽) 하나에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연이 한참 남았기에 나는 라이트스틱을 사러 굿즈판매대로 향했다. 꽤나 넉넉히 시간 여유를 두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고 싶은 품목들 중 상당수가 이미 품절이었다. 하릴 없이 라이트스틱 하나만 사고는 얼른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렇게 일찍 들어갈 필요가 있었나 싶지만, 그때는 한시라도 빨리 도쿄돔에 입성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공연 시작을 두 시간여 앞둔 도쿄돔 내부


입구에서 예매권을 제출하고 좌석 번호가 기재된 티켓을 받았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내 평생 도쿄까지 와서 한국 가수의 콘서트를 볼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한국 남자가 한국 남자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도쿄로 온다라. 굳이 표현하자면 '한류의 역수출' 정도 될까? 아마 비행기 타고 홀로 여기까지 온 한국 남성은 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뿌듯했다.


계단을 한 층 올라가는 데 정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잰걸음으로 얼른 내 자리가 속한 구역을 찾았다. 입구에 들어서니 마치 언덕길을 넘어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듯, 도쿄돔의 웅장한 내부가 나타났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와하!" 혼자였지만 입이 귀에 걸리도록 껄껄 웃었다. 아마 나를 본 사람들은 나를 미친 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게 도쿄돔이구나! 도쿄돔은 정말이지 굉장했다. 반대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맞은 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 땐 얼굴 식별이 불가능하다는 뜻이게 마련인데, 도쿄돔은 정말 사람 머리통 자체가 보이지 않았다. 


6시 정각이 되자 공연장의 모든 조명이 꺼졌다. 5만 개의 라이트스틱이 붉게 빛날 때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동시에 꿈을 이루는 순간이기도 했다. 20대 초반, 동방신기의 도쿄돔 콘서트 영상을 보면서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도쿄돔이라는 공간이 주는 상징적인 의미도 남달랐다. 취업을 내던지고 일본까지 워킹홀리데이를 온 보람이 있었다. 아마 내가 20대에 했던 일 중 가장 잘한 일일 것이다.


세 시간에 가까운 콘서트가 마무리 될 즈음, 세 멤버는 마지막 곡으로 <Begin>을 불렀다. <Begin>은 동방신기의 최고 명곡으로 손꼽히는 곡 중 하나다. 내가 동방신기 일본곡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곡이기도 했다. 반주가 나오면서부터 내 앞뒤 양옆 아주머니들은 추억에 잠기며 훌쩍훌쩍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60대는 되어보이는 분들이 그러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 연령대에 이르러서도 그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자기의 아티스트를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이 부럽기도 했다. 나는 마지막 앙코르곡을 들으며 때로는 눈을 감고, 때로는 무대를 응시했다. 다시 오지 못할수도 있는 순간, 그 찰나의 행복을 다양하게 만끽하고 싶었다.


콘서트가 끝나고 스이도바시역으로 향하는 인파. 5만 명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때의 번잡함은 이루말할 수 없다.
2014년 12월 후쿠오카에서 열린 JYJ 콘서트. 나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홀로 후쿠오카에서 보냈다.


2014년 초겨울, 나는 삿포로에서 도쿄와 후쿠오카를 오가며 그들이 열었던 콘서트의 절반을 갔다. 정말 원없이 따라다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당시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과 한국어 과외를 하며 버는 돈을 다 합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실상 가처분 소득의 대부분을 JYJ 콘서트 보러 다니는데 바친 격이었다. 그 때문에 일상은 비루하고 고달퍼졌지만 후회는 없었다. 젊은 날 동경하는 가수를 보기 위해 도쿄와 후쿠오카까지 찾아갔던, 그만큼의 열정을 내가 가지고 있었다는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정도 과업을 이루었으니 앞으로의 인생 또한 의미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해 JYJ가 개최했던 돔 투어의 이름은 이치고이치에(一期一會)였다. 우리 말로 '일생에 단 한 번'이라는 뜻이다. 공교롭게도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던 그들의 돔 투어는 정말로 마지막이 되었다. 아마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긴 어려울 것이다.


왠지 나는 그걸 은연 중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콘서트가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우려를. 그것은 2009년 7월 다섯 명의 동방신기가 한국인 최초로, 그리고 다섯 명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도쿄돔에서 열었던 콘서트를 무심코 흘려보낸 뒤 내 안에 침전되어 있던 미련이기도 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다. 10년 뒤든 20년 뒤든 마지막 콘서트는 반드시 찾아온다. 나는 그때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현재 눈앞에 놓인 것들에 최선을 다 했다. 


우리나라에서 동방신기가 한창 활동하던 시절, <환상의 커플>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그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이었던 한예슬의 명대사 중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한번 떠나간 짜장면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내게는 동방신기의 도쿄돔 콘서트가 그런 것이었다.


나는 지나간 도쿄돔 콘서트 영상들을 바라보며 스스로 되새긴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기에 더욱 열과 성을 다해 이 순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것을. 그래야 미련이나 후회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다는 것을. 비단 콘서트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상이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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