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껏 보필했을 뿐인데

여전히 자신의 행동은 품위적이라 믿지만 내 눈엔 불로소득일 뿐이다.

by 공삼

예전에 모셨던 분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는 아주 단순했다. "연락합시다"였다.


그분과의 일을 그만 둔지가 무려 10년이 지났는데도 가끔씩 이렇게 연락을 주신다.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그리 반갑지가 않다.


나는 그분 덕분에 일을 비서로 일을 했고 연구원을 다녔다. 어쩌면 그분에게 엎드려 절을 하며 떠 받들어도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난 그분의 일이라면 정말 성심성의껏 일을 했었다. 사실 주변의 다른 교수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일을 했었으니까. 그렇게 그분과 한 몸처럼 일을 하며 지내다가 그분의 퇴임 이후로 각자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난, 늘 고마운 마음을 지니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가끔씩 당신의 소일거리를 맡기기 시작하셨다. 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각하여 일과 시간 이후에 내 시간을 쪼개가며 일을 도와드리곤 했었다. 처음엔 그분도 염치가 없으셨는지 미안해하시면서 일을 맡기셨다. 일은 크게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단지 연세가 있으셔서 디지털로 해야 하는 일이 서툴러서 부탁하신 정도였다. 그러나 한두 번 지나자,,, 어느새 당연하게 생각하며 수시로 필요할 때 전화를 주어 일을 맡기곤 하셨다. 앞에서 말했듯이 나에게 많은 길을 열어주신 분이라 생각하여 말없이 그냥 꾸준하게 일을 처리해 드렸다. 그렇게 많은 횟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는 늘 눈치가 보였다.


그러던 와중에 그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어서 대화를 했는데, 그분의 마음속엔 여전히 자신을 보필하던 비서 정도로만 ,,, 딱 그 정도로만 나를 생각하고 계신 걸 알았다. 사실 나 보다도 더 똑똑하고 여유 있으며 실력 있는 자기 제자들도 많은데도 왜 하필 나한테 유독 일을 시키는지 이유를 알만했다.


원래 사람이란 자신이 부리던 사람만 부린다는 말이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위를 취득한 후에도 자기 제자들에게는 박사라는 칭호를 썼지만, 나에게는 사용하지 않았다. 남들이 함께 자리에 있을 때 한 두 번 들어 본 게 전부였다. 그분에게 있어서 나는 여전히 일개 비서일 뿐이었다.

왜 그러냐고 투정도 해 보고 싶었지만, 뻔하디 뻔한 답을 이미 알기에 물어보지도 않았다.

뻔한 답이란 오히려 상대를 미안하게 만드는 화법으로 억울한 심정을 담은 답변이다.

예를 들어, "내가 너를 워낙에 아껴서 편하게 불렀는데, 마음이 많이 상했다 보네"라는 식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그런 화법을 말한다. 여기에 다음 날 태도를 싹~ 바꾸면 나만 힘들어지기 때문에 물어보지도 않았다.


학교 생활을 청산하고 아내의 직장으로 인해 이사를 오면서 많은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더 이상 학교 일과 연계되기 싫었던 마음에서였다. 학교에서 했던 일로 불려 가기 싫었고, 학교 교수들과의 갈등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작년 한 해는 육아와 글만 쓰면서 살았는데,....

2020년 새해가 되고 여느 날처럼 온전하게 나만의 삶을 살고 있는데,,,, 페이스 북에 짤막한 답글 하나가 나의 고요한 마음을 미세하게 흔들어 놓았다.

"연락합시다"


나는 연락할 이유가 없는데, 여전히 그분은 연락을 해야 할 이유가 있으셨던 모양이다.

내가 그분에게 연락드렸을 때는 그렇게 만나기 쉽지 않았었는데...

어렵게 만났을 때도 모 사장님을 대동하여 점심 식사를 이유로 겨우 겨우 만났었는데...

그래도 그 이후로도 틈틈이 당신 일을 도왔는데...

그리고 다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오면서 다른 여러 사람들과 그분을 마음에서 놓아버리고 살고 있었는데,,,, 오늘 "연락합시다"라는 세상에서 가장 함축적이고 짧은 메시지를 받고 적잖이 마음이 어두워졌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신다면 이렇게 말씀하실 거라 생각한다.


"거참, 그냥 안부가 궁금해서 물은 것뿐인데, 뭘 저렇게까지 생각을 하나? "정도로..


왜 궁금하셨을까? 그 이유는 차고도 넘치지만,,, 굳이 하나하나 언급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나는 2018년도에 학교 생활을 뒤로하고 모든 것에 새로운 마음을 살아가려는데,,, 지나온 나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는 듯싶다. 그저 시키는 대로 성심성의껏 일을 했을 뿐인데, 나의 모습은 그분에게 그저 일 잘하던 10년 전 순종적인 내 모습만을 기대하시는 듯싶었다.

여전히 그분에게 있어서 나는 그저 일개 개인비서일 뿐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부르면 가야 하고, 시키면 군소리 없이 해줘야 하는 그런 사람을 쓰고 싶을 뿐이라는 생각이다.


자신을 통해 배출된 수많은 석박사 졸업생들은 왜 그리 아끼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옆에서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제자들은 시켜도 이제 더 이상 따라주지 않을 거라 믿기 때문에 그렇고, 나는 어느 정도 이야기하면 잘 들어주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라고,,,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하긴 나부터도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는 법이니까. 그래도 공짜로 뭔가를 바란 적은 일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는 만큼 그 세월에 맞게 상대를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예의이자 격이다.

특히, 상대를 대함에 있어서 굵직하게 선을 긋고, 그것이 자신의 멋진 기준이라 생각하며 언사나 행동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만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개인주의일 뿐이다. 자신의 멋스러운 행동과 말에 상대가 불편해하고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전혀 모른다. 그저 자기가 바라는 것만 이루면 그만일 뿐이다.


사람이 필요하면 돈을 주고 해결하면 되는데 여전히 무료 서비스를 원하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적어도 무료 서비스를 받았다면 말이라도 격에 맞게 해야 하는데 당연하다는 식의 모습은 이기주의에 가깝다고 본다.

아니, 무슨 주의를 논하기 전에,,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위 자체가 남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믿고 사는 듯싶었다.




어쨌든 나는 그 답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답글을 달았다.

심지어 그 답글에도 의미를 찾으려 했던 그분, 답을 알면서도 되묻는 일은 여전하셨다.

나도 그분 옆에서 정말 오랫동안 일을 했던 터라, 상대에게 짐을 지우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름 모른척하며 답글을 다시 달았다. 그리고 그 뒤로 다시는 답글이 달리지 않았다.


아마도 더 이상 나를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지리적 위치와 입장과 심적 이유를 아셨을 거라 본다.

그러고 보니, 이런 불편한 관계를 오랜 시간 동안 이어왔던 것 같다.


학교에서 밥 벌어먹으면 살면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었냐라고 물으면 나는 한 가지를 답하고, 한 가지는 마음속에서 답한다.

늘 했던 말은 내가 내 지위에 취해서 다른 일을 못 할까 봐서 걱정이다 였다.

그리고 늘 마음속으로만 담아뒀던 것인데... 오늘에서 처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신의 지위에서 불로소득을 누리고 싶어 하고, 심지어 그 행위에 대해서 불로소득이라 생각하지 않는 높은 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힘이 들었다


일명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일을 하게 되면, 흔히 이런 말을 한다. 부당하다고...

그렇게 그런 분들과 무려 10년 이상을 지내왔었다. 심지어 나는 그런 그분들의 모습을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이해하며 나 하나만 잘하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내 인생을 살아보니 나는 그렇게 불로소득을 바라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냥 그렇게 인정해 버렸던 그분들의 모습을 더 이상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엔 당연한 것이란 없다고 믿는다.

나 하나로 시작되어 바로 옆에 있는 내 딸아이가 영향을 받고, 나아가 내 딸아이의 친구가, 그 친구는 자신의 부모에게, 그리고 그 부모는 또 누군가에게 영향을 이어갈 수 있는 만큼 세상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는 연결고리가 존재하고 그것이 이유가 되어 존재하는 법이다. 흔히 우연이라며 때론 운명이라며 말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 또한 그 순간 설명하기가 어려울 뿐,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연결된 결과라 생각한다.


나는 그저 맡은 소임에 충실하며 70년대 생에 걸맞게 나름 충성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충성은 당연하게 되고, 오히려 내가 충성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리지만, 그래도 이제는 당신이 필요할 때마다 부르는 그런 사람들보다는 그 충성을 정말 꾸준하게 나를 바라고 원하는 사람에게 하고 싶다.

매우 억울해할 것이라 본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무시하고 토사구팽 했던 일들을 다 기억하고 난 뒤에도 억울해할까 싶다. 난 그저 날 무시하고 토사구팽 했더래도 당연히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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