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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 Sep 05. 2022

다시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도 인생도 코너링은 어려워

자전거를 탔다. 정확하게는 자전거랑 씨름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근 30년 만이다. 당시에도 자전거 타는 솜씨가 서툴렀다.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연습 중에 직진을 하다가 담벼락을 정면으로 들이받고부터는 아예 포기하고 말았으니까. 그 후로는 지금껏 자전거 타기에 아무런 미련을 두지 않았다. 운동화 한 켤레만 신고 나서면 산으로 들로 어디든 누빌 수 있는데, 굳이 위험하고 번거롭게 자전거를 동원할 필요까지 뭐 있나. 줄곧 튼실한 두 다리로 산을 오르고 강변을 거닐었는데, 요즘에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언제부턴가 동네에 하이킹을 즐기는 여행자가 점차 늘어났다. 그들이 머무는 자리는 늘 경쾌하고 발랄해 보였다. 터벅터벅 걷는 내 곁을 쌩 달리며 유후~~ 하고 달아나는 그들을 볼 때면, 소외감 또는 열등감, 경외심 혹은 부러움 등이 꿈틀대며 마음을 흔들었다. 닿을 수 없는 저곳에서 환희와 젊음이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만 같았다.

곧게 뻗은 자전거 도로 위를 달리던 무리로부터 급박하게 내쫓긴 어느 날, 드디어 결심을 굳혔다. 자전거와 재회하기로.


마침 나와 같은 생각을 하던 참이라던 동네 언니랑 날을 잡았다. 대여점에서 자전거 한대를 빌려 호기롭게 밀고 나왔지만, 머리 희끗한 아줌마들이 자전거를 부여잡고 엎치락뒤치락하는 광경을 상상하니 심히 주눅이 들었다. '늦었다 싶을 때가 가장 빠를 때다.' '부끄러운 건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만고의 진리를 되뇌며,

"좀 창피하면 어때. 엉치뼈만 안 다치면 돼!"

서로 부추기며 수줍게 핸들을 잡았다. 안장에 올라앉으니 잠깐 현기증이 났다. 페달을 찾느라 발을 더듬거렸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자전거가 굴러간다. 참 신기하다. 수십여 년 동안 망각 속에 묻혀있던 감각이 마치 어제처럼 되살아났다. 비틀거릴 때마다 저절로 앞바퀴를 까부르며 자빠질 듯 다시 용케 균형을 잡아나갔다. 잊혔던 감각이 살아나자 젊은 날의 내가 지금 나인 듯 생동감이 느껴졌다.

한편으론 참 고질적이다. 바퀴를 틀어 방향 전환을 시도하면 매번 좌절되고 말았다. 핸들을 틀자 몸이 경직되고 자전거가 기울고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낑낑대며 거듭한 시도 끝에 가까스로 몇 차례 방향 전환을 성공했다. 신나는 하이킹은 아직 멀었지만, 오늘 연습은 걱정했던 것과 달리 꽤나 만족스러웠다. 무려 30년 만의 새 출발이 아닌가. 우리는 모처럼 크게 웃었다.

                     

어디 자전거뿐인가. 내 삶도 새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를 맞았다. 얼마 전부터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약을 먹어야 하고 병원에도 다녀야 한다. 과로나 스트레스를 피하고 건강하게 먹어야 하고, 운동은 필수가 되었다. 동시에 직장생활도 삐걱거렸다. 한 직장에서 쉬지 않고 달려온 지 18년. 심신이 버거웠다. 기계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내 인생이 빛바래고 마구 소모된 건 아닐까.  막다른 길, 뭔가 전환점이 필요했다. 이를 계기로 올해 1년간 휴직을 감행 중이다.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고 싶었다. 초반에는 해방감에 들떠서 멀리 여행을 떠나고 사람들을 만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떠들썩한 시간을 보냈다. 그것도 잠시, 이제 홀로 집에서 고요히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늘었다. 정적 속에서 내 숨소리와 시계 초침 소리만 크게 들려온다. 느슨하게 풀어헤쳐진 내 하루 24시간이 무심히 흘러가길 반복하면서 삶은 수시로 의미를 감춰버렸다. 평온하다가도 문득 막다른 길에 이른 듯 막막함이 밀려든다.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노화를 의식한다는 것은 현재에 충실하지 않는 삶의 증거라고 한다. 현재를 사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과거만을 추억하며 미래를 걱정하는 삶은 늙은 삶이라고. (에리히 프롬 자기를 위한 인간에서)


자고 일어났더니 온몸이 쑤셔온다. 크게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자전거와의 갑작스러운 씨름 한판에, 게을렀던 근육들이 단단히 무리를 했나 보다. 다리는 온통 멍 투성이가 되었다. 그래도 힘겨웠던 커브 틀기를 성공하던 순간을 떠올리니, 방금 터진 신음소리가 탄성과 웃음으로 번진다. 지금은 버겁기만 한 자전거가 멋진 날개가 되어줄 날을 상상하며.


내 삶도 그렇다. 멍 투성이 근육통과도 같은 마음의 고단함을 툭툭 털어내고, 현재를 딛는 페달을 힘껏 밟아야겠다. 잠들었던 삶의 균형감각이 내 안에서 되살아 날 수 있도록.

눈부신 젊은 날들과 황혼의 저녁놀 그 사이 어디쯤 멋진 하이킹을 향해 다시 출발!


사진 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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