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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 May 26. 2020

'콩이'의 사랑법

유혹의 기술

애완동물을 좋아하진 않는다. 정확히는 정을 주고받고 관계 맺는 것이 부담스럽다. 한 생명을 사랑해야 하는 만큼 수고로움을 감내하고, 마음 아플 일들을 겪는 인정에 인색한 탓이리라.


정 많고 순수한 사람이 동물을 좋아한다더니 과연 맞는 말인 것 같다. 그런 계산 없이 정성과 시간을 기꺼이 동물과 사랑하는 일에 들일 수 있다는 것은 순수하다 말해 마땅하다.


그에 비해 나는 사람 건사 만으로도 힘겨울 때가 있다. 귀여운 애완동물을 바라보는 것은 즐겁지만, 혹시라도 눈을 맞추거나 장난이라도 치면 마구 달려들어 귀염 떠는 그들이 부담스러워 지레 철벽을 친다. 원래 무뚝뚝한 성격이 동물 곁에서는 극에 달하니, 동물 주인에게 가끔 미안할 때가 있다.
 
 애완동물의 대표주자 개와 고양이 중 굳이 선호도를 따진다면, 갈등하지 않고 단호히 고양이를 선호한다. 이유는 예상되는 바와 같이 사람을 덜 따르고, 혼자 잘 놀고, 애교 피우지 않는 독립적인 면이 곰살맞은 강아지보다는 훨씬 좋다.


 좋아하지도 않는 동물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것은, 얼마 전 만났던 멋진 녀석이 문득문득 떠올라서다.


며칠 전 아래 지방에 사는 친구 집에 방문했다. 노란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한 식구가 되어 살고 있었다. 덩치도 제법 있고 활동적이어서, 함께 있는 동안 편치 않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어디를 가도 졸졸 따라오고, 가는 곳마다 문이 닫히기 전에 날쌔게 먼저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관심을 끌어보려 다리나 발에 자기 몸을 비비고 까부는 것이 영 성가시고 못마땅했다.

 ‘얘가 사람을 잘못 봤네.’ 생각하며 더욱 무반응으로 녀석에 대한 나의 비호감을 표시하자, 급기야는 발가락을 깨무는 지경까지 간다. 그런데 영리한 녀석이 이빨 물기의 강약 조절이 절묘해서 딱 아프지 않을 만큼, 나의 무신경을 무너뜨리는 만큼만으로 선을 넘지 않는다. 하마터면 아프고 화날 뻔할 때, 물러나 주는 고도의 밀당 기술을 구사한다.


친구는 사랑하는 고양이와 불편해하는 나 사이에서 양쪽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이다. 밤이 이슥하도록 친구와 수다를 떠는 내내 이 녀석은 주변에서 떠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관심 끌기를 시도했다. 피곤한 밤이었지만, 내심 다음 날 성가실 것이 더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다음 날, 번거로운 아침맞이를 각오하며 방문을 나섰다. 그런데, 이 녀석이 사뭇 달라진 태도를 보였다. 그리도 치대던 녀석이 의연하게 두어 뼘쯤 거리를 유지해 준다. 코를 들이밀고 귀찮게 구는 동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고양이 특유의 도도하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나와의 거리를 유지하고 눈으로만 바라봐 준다. “그래, 네 맘 알겠어.” 하고 사태 파악을 한 듯하다.


그 녀석 이름은 ‘콩’이다. 고양이인 콩이로부터 존중받는 기분이란. ^^ 동물의 정직한 감각으로 이렇듯 날카로운 판단과 정확한 반응이 가능한 것이라면, 동물도 이성적 사고가 가능한 것일까?  아니 어쩌면 그와 반대로 이성적이거나 이해타산적이지 않아서 가능한지도 모른다. 원래 동물적이고 자연적인 사랑법은 이렇게 상대에 대한 존중과 동시에 자기 존중을 추구하는 것이 본성인지도 모른다.


자연에서 한 참 멀어진 인간관계에서는 사랑을 외면하는 대상에게 원망과 미움으로 상심에 이르는 것이 다반사건만. 한 걸음 떨어져 나를 바라봐 주는 콩이를 보며, 손을 뻗어 쓰다듬고픈 유혹이 느껴졌다. 



 단연코 사회성 최고인 콩이에게 흠뻑 반하고, 가끔 그 녀석을 생각한다. 사랑법에  관한 중요 '팁'을 친구네 집 야옹이 '콩이'에게서 배우게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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