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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 May 11. 2020

나의 무차별 폭력 참회기

군복을 빨아 널으며.


몇 년 전 제대한 예비역 아들의 뻣뻣한 군복을 빨아 널다가 씁니다.


학생 시절 군복 입은 아저씨(그 당시엔)에게서 좋지 않은 경험으로 크게 놀란적이 있다. 그 후 어른이 되고도 한참 더 나이를 먹기까지 군복 입은 사람에 대한 지독한 편견 속에서 살아왔다.


굳은 표정으로 트럭 뒤에 실려 가는 그들 모습을 보면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시선을 돌리고, 거리에서 그들 곁을 지나칠 때면 몸과 마음이 굳어 그저 기피 대상이었다. 그 편견에 대해 돌아보지 않고, 오래도록 군인 복장을 한 모두를 향해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무책임한 오해를 이어갔었다.


세월이 지나 조카들과 내 아이가 군에 입대하게 되자 군인에 대한 나의 태도는 물론 돌변했다.


입대를 앞둔 논산 훈련소에서는 까까머리 아이들이 대열에 들기 직전에 대기석 여기저기서, 가족과 연인 속에서 눈물 바람의 이별 진풍경이 펼쳐진다. 그 속에서 나는 멀뚱멀뚱하게 아들의 등을 몇 번 토닥여서 들여보내며, 눈물 한 방울 안 흘린 살갑지 않은 엄마였다. 그렇지만, 여름철 첫 휴가를 나온 아이를 보니 짠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여름 무더위에 통풍도 되지 않는 군복은 사철 똑같은 재질로, 마치 나무실로 짠 옷처럼 뻣뻣해서 탄력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나이롱 양말과 다리를 압박하는 족쇄 같은 군화에 피부염이 생겨도 군말 없이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살갗에 닿는 것에 유독 까다롭고 민감하던 아이가 저 답답한 것들을 담담히 감내하는 곳이 군대구나.' 싶었다.

첫 휴가를 마치고 배웅하던 차 안에서는 생전 안 하던 배앓이를 하던 것이 그 당시엔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가기 싫은 부대로 돌아가야만 하는 공포의 표출이었으리라.

2년여 아들의 군 생활을 지켜보며, 잇따른 군대 내 사고 소식에 남몰래 가슴 졸이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면서, 눈부신 경제발전 속 국방을 최우선시한다던 당시의 정부에서 청춘 바쳐 희생하는 군인 애들에 대한 대접이 너무 박하다 싶어 무척 분개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그 처우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고, 수평적인 분위기와 군대 내 복지도 많은 부분 개선되어 봉급도 대폭 올랐다니 세월이 참 좋아졌다. 그러고 보니, 흉흉한 군대 내 사고 소식도 들어본 지 오래다.

이제는 까까머리 군인을 만나면, 뻣뻣한 군복 안에 담긴 청춘들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따뜻하게 바라본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알량하게 아들 하나 군대에 보내 놓고 그제야 누군가의 대가 없는 희생이 보이고, 홀대에 속상해했던 내 좁은 시야가 정말 얄밉고 부끄럽다.

신형철 작가의 '폭력에 대한 정의'에 의하면, 진실을 알려는 노력도 없이 편견 속에 안주 모든 군복 입은 청년들을 좌시했던 예전의 내 사고는 다름 아닌 '폭력'인 것이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 어떤 주장이나 대상, 또는 혐오하는 것들에 대한 좀 더 섬세한 성찰을 다짐해 본다. 그리고, 지난날 내 곁을 스쳐 지나갔던 군인 아저씨들에게 내 편견으로 가한 '폭력'에 대해 사과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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