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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r 13. 2020

남들은 모모 씨에게 관심 없습니다

매정한 사람 고... 마워요

몇 년 전 10월 어느 날, 목 끝까지 눈물이 차오른 날이 있었다. 슬픔의 눈물이라기 보단 화로 비롯된 눈물. 초짜 신규 시절 최고 레벨 1학년 담임을 맡으며 사람에 치여 인생 회의론자로 들어설 무렵이었다. 말 한마디를 떼기도 전에 목이 멍든 것처럼 그득그득 화가 차이는 바람에 대화가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매일 같이 도망가는 상상을 했다. 분노조절이 안되던 우리 반 아이가 밖으로 도망갈 때 난 마음속으로 학교 교문 밖을 뛰쳐나갔다(지구 밖을 뛰쳐나가고 싶었을지도). 아니 머리 끝까지 생각이 차올랐을 땐 발이 움찔했다. 지금 밖으로 나가야 돼! 조정당한 것처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뭘까. 밤새 음소거해놓은 티브이를 멍하니 지켜보며 다가올 내일 아침을 두려워했다. 여기를 벗어나자. 도망가자. 소리가 0인 세상, 사람이 없는 세상에 살고 싶었다.

그냥 살고 싶었다.


매일 도망가고 싶다고 주문 아닌 주문을 외우니 정성이 닿았는지 아는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독서 모임 하는데 함께할래? 무슨 모임이든지 오케이, 어디든 가고 싶었다. 더 이상 직장이 내 하루의 전부라 말하지 말아 줘. 오후에 어디로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직장을 벗어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 누구 씨라고 부르는 명칭. 몇 년 만에 내 이름을 글자 그대로 들었다. 내가 없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었구나. 생경한 그 느낌이 좋았다. 그들과 둘러앉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는 돌고 돌아 다시 내 차례. 말을 이어가는 도중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졌다. 눈물이 흘렀다. 전혀 눈물이 나올 타이밍이 아니었는데(사회과학 책이었는데...) 애써 말로 때워보기에 이미 시작된 눈물을 막긴 어려웠다. 어떤 의미 부여도 없는 눈물이었다. 간신히 틀어막은 눈물 댐의 구멍은 무게를 감당하기에 너무 나약했다. 어느 음이라도 비집고 나오면 장대한 포문을 열어버릴 만큼 울음이 목 끝까지 차올라 있었을 때였다. 나만 이해하는 눈물은 어떤 설명도 머금기 전에 부끄러움만 터트릴 뿐이었다. 민망한 나머지 서둘러 눈물을 닦고 죄송하단 말만 연발했다. 조용히 휴지를 건네는 사람들 속에서 한 사람이 책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생각보다 남들은 모모 씨에게 관심 없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죄송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 네...(매정한 사람)"


눈물이 쏙 들어갔다. 더 민망해지는 타이밍. 뭐 저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나, 춥다 추워. 사회의 냉혹함(?)을 한 몸에 받고 미처 흐르지 못한 눈물을 얼른 거두었다. 그 날 모임은 그렇게 머쓱하게 끝이 났다. 신기하게도 그동안 목 끝까지 차이던 눈물도 민망했는지 어디론가 함께 사라졌다. 증발했다. 왕왕 울리던 우울도 바짝.


"생각보다 남들은 모모 씨에게 관심 없습니다"

"생각보다 남들은 모모 씨에게 관심 없습니다"


오늘 새벽 갑자기 생각이 났다. 사실 처음은 아니고 여러 해를 거쳐 몇 번이나 되돌아왔던 말이었다. 잊을 만하면 떠올랐는데, 웃기게도 그럴 때마다 위로가 됐다. 흑역사가 아닌 위로. 그 말은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을 때, 지나치게 남에게 나를 맞추려 할 때. 그냥 때때로, 종종. 매섭게 나를 붙잡아줬다. 생각보다 남들은 나한테 관심 없으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게요 혹은 이기적일 만큼 그저 무언가를 지켜도 되는 거겠죠? 따위의 질문도 던진다. 해석과 각색은 내 맘대로.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 웃겼다. 하나의 의미로 끝나는 법이 없었다.


문득 몇 년간 잊지 않고 찾아와서 위로를 건네준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안 나지만 꾸준히 메시지를 보내준 그에게.


저기, 매정하게 말해줘서 고마웠어요.

앞으로도 종종 그 말 빌려가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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