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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D Feb 03. 2022

체스의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참아내는 일이란 안그러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절박함에서야 가능한데 그렇다면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 <체스의 모든 것>, 김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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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의 단편 소설 <체스의 모든 >처음 읽은 시점은 2017년에서 2018년으로 해가 넘어갈 무렵이었다. 라오스 여행에서였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나무 오두막 판상에 앉아 연유가 잔뜩 들어간 달디  라오 커피를 한모금씩 들이켜며 책장을 넘긴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이 책이 쉽게 읽혔다. 그 말인 즉, 이 책이 나에게 크게 와닿지 않았고 그래서 대충 넘기며 읽었단 뜻이다.  


더군다나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국화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와 완전히 다른 인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왜 저렇게 타인에 대해 배타적이고, 앙칼지며 예의가 없을까' 라며 온갖 부정적인 미사여구를 다 붙여도 시원찮을 만큼 성격이 뒤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2022년, 난 국화가 되어 있었다.


파주 미술관에서 촬영한 앞, 옆면이 다른 작품. 앞면은 웃고 있지만 옆면은 울고 있다. 그것도 검정 눈물을 흘리며.


노아선배에게 분명 호감을 가지고 있었을 국화가 노아 선배를 마구 짓밟는 모습은 일종의 테스트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국화는 다른 사람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노아 선배를 테스트하고 판단하려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후, 놀랍게도 그 똑같은 행동을 내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은 저질러진 후였다.

깨달은 후에 난 본성을 착할지 몰라도, 남들이 보기에 참 이기적이고 못되고 제멋대로인 인간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참회할 수 있는 동물이다. 사고할 수 있고 뒤엎을 수 있고 새로 시작할 수 있기에.

요즘은 '어떻게 하면 좀더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될까' 라는 생각으로 꽉 차있다.

나 스스로를 위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 책은 오래전 읽었던 책이라 사실 세부적 스토리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뇌리에 박히는 문장만큼은 오래도록 실생활에서도 종종 떠오르며 나에게 깊이 각인될 뿐. 그래서 최근 이 책이 은연중에 갑자기 들이닥친 옛손님처럼 여겨졌다.

노아선배처럼 나에 대해 감내해주는 사람을 만났고, 문득 이 책 속 문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파주의 한 미술관에서 촬영한 컷. 모든 종이의 간격과 크기는 일정하고 적힌 메세지는 저마다 다르다. 종이가 붙여진 위치도 다 의도된 작품의 일부분이다.




그 모든 것을 참아내는 일이란 안그러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절박함에서야 가능한데 그렇다면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 <체스의 모든 것>, 김금희




요즘 책을 참 안읽었다. 책 하나를 읽을 때 온전히 집중하며 머릿 속으로 장면 하나 하나를 다 세부적으로 그려나가며 읽기에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는 핑계를 대며 말이다.


올해엔 좀더 복잡미묘하게 내 심기를 건드는 책을 많이 읽고 싶다. 휙휙 넘어가는 쉬운 책이 아니라. 이로 인해 스스로 성장하고 내 주변에 이로운 영향을 끼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2022년 시작점에서, 타인을 더 돌아보고 배려하려고 노력 중인 스스로에게 바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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