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 챙.
이 소리는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십원 짜리가 십원 짜리로 떨어지는 소리다.
25년 아파트 생활, 8년 원룸, 고시원, 기숙사 생활을 완료하고 30대 중반이 되어 창업을 하기 위해 주택으로 집을 구한 지 6개월이 되어 간다. 겨울에 이사와 코로나로 주택 월세가 아깝지 않게 집콕을 하다가 어느새 여름이다.
나는 시민들의 학습모임을 기획, 운영하며 책을 출판하는 일을 시작했다. 모임 운영 장소로 집만큼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는 공간은 없다는 주관적인 생각, 출근 5분 거리보다도 신박한 작업 환경을 원했던 게으른 로망, 상가의 월세를 내느니 살 집을 키워 나가는 돈을 합치면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는 단순한 계산. 이러한 것들의 결과물로 나만의 주택 공간을 찾게 되었다.
유원지가 5분 거리에 있어 걸어서 산책을 나가면 강을 볼 수 있고, 유원지 공영주차장을 손님들의 주차장 삼아 주차 문제를 날려버릴 수 있는, 너무 깊숙이 박혀 있지도, 너무 도로 앞에 나와 있지도 않은 위치의 주택. 1층에는 나만, 2층에는 주인집만 사는 단순한 건물 구조.
앞집, 앞집의 좌우 옆집들 6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들이 약 15년이 넘게 서로 이웃이 되어 살고 계셨다. 그러한 고정 감은 요즘도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지만 내 스타일이다 싶었다. 어르신들은 가끔 식사도 같이 하지만 거의 매일 골목에 나와 마늘을 까며 대화를 나누거나, 문 앞 계단에 앉아 수다(주로 자식 이야기인 것 같다)를 떨거나, 그냥 서서 수다(장 본거, 요리 뭐했는지 등의 이야기도 자주 한다) 삼매경에 빠진다.
추위가 가득한 1월에 이사를 오는데 웬 젊은이 한 명이 꽤 널찍한 주택 1층으로 이사 오는 것이 요상했는지 힐끗힐끗 쳐다보시던 할머니들. 그 뒤로도 책상들이 들어가고, 의자들이 들어가니 도대체 뭐하는 청년인가 싶으신 눈빛을 발사했고, 나는 설명을 했지만 희귀 직종인 내 직업을 어르신들에게 완벽히 이해시켜드리지는 못한 것 같다. 우리 부모님에게 앞집 할머니가 자기들은 오랫동안 같이 살아왔다고, 날이 풀리면 골목에서 화투를 친다고 했다. 화투 룰을 깨우치지 못해 보는 것도 잘 모르는 나였지만 봄이 기대되는 할머니 멘트였다.
그러다 코로나가 붕하고 대구에 착륙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나도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와 그들은 낯설어서 가끔씩 나를 보면 어르신들은 움찔움찔하였다. 나도 마찬가지로 어르신들을 보면 움찔움찔하였었다. 신천지 교인이 있지는 않을까. 내가 잘 모르던 누구를 보던 그런 생각을 하던 시기에.
뭐하는지 모르겠는 이방인 나.
나에게도 낯선 어르신 무리.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봄이 완전히 들어섰다. 조금씩 일상생활을 시작하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할머니들은 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주택 사방에 창문이 있어, 꽃가루 계절을 제외하고는 창을 모두 열어 두고 지내던 나는 큰방에서 들리는 ‘챙’ 소리가 처음에는 물건을 잠시 이동시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긴 시간 주기적으로 들리는 소리, 간간히 들리는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듣고는 깨달았다.
시작했구나!
할머니들은 엄숙하게 화투를 친다. 한번 시작하면 세 시간은 기본이다. 돗자리를 깔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한쪽 다리를 올려 한쪽 팔로 감싸고 섬세하게 화투를 들여다본다. 물론 마스크를 쓰시고서.
봄의 오후 시간에는 내가 사는 집의 큰방 벽 아래에서, 여름의 오후 시간에는 골목의 여러 집 벽 앞에서, 비가 올 때는 옆집 주차 공간(두 채의 집은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사는데 오후에는 차가 주차되어 있지 않아서 이쪽을 이용하신다.) 안에서 판이 벌어진다.
챙, 챙.
운동을 나갈 때, 장을 보러 나갈 때, 장을 보고 집에 올 때, 볼일을 보러 나갈 때, 볼일을 보고 들어올 때. 할머니들은 이동하는 벽화처럼 우리 골목을 꾸미고 있다.
할머니들은 각자의 옆에 바게쓰(붉은 갈색의 당신이 떠올리는 그 바가지)를 두고 있고, 거기에는 십원 짜리가 수북이 쌓여 있다. 고봉밥처럼 고봉 십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 동전들은 5월 즈음부터 거의 매일 오후 시간마다 이 어르신에서 저 어르신 바가지로 이동을 반복하고 있다. 벽화에서 반짝반짝하며 위치를 이동하고 있는 십원.
돌고 도는 십원 짜리 소리는 어느새 내 작업 환경의 BGM이 되었고, 우리 집에 자주 오는 이들의 백색소음이 되어주었다. 가끔씩 들려오는 엄숙한 할머니들의 대화를 제외하고는 조용한 화투장.
돌고 도는 십원 짜리 소리는 내 옆에 누군가 살고 있고, 그들과 내가 거의 매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아파트에 살 때는 층간 소음 외에는 사람이 살고 있는지 확인할 거리가 없었고, 8년 이상을 살아도 이웃 간에도 5분 이상 대화를 하지 않았었다. 원룸도 마찬가지로 벽 사이 소음, 야간 소음으로 쪽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얼굴 대면을 하는 식이었다.
반대로 주택살이는 적당한 소음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그 안정감을 알아채는 순간 나는 주택살이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