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태권도장에 다닙니다.

6

by 지하

도장에 다닌 지 4개월이 넘어갈 때 즈음 검은띠와 단도복을 하사 받았다.

등판에 화려하게 도장 이름이 박혀있는 것은 똑같지만

어린이 친구들 것처럼 옷깃에 빨간색이 들어가 있는 도복이 아니라 옷깃 전체가 검은색인 단도복이다.

또한 1단이었기에 한쪽에는 이름, 다른 한쪽에는 도장 이름이 자수로 적힌 검정띠였다.


보통 성인부는 3개월이면 그만두는데 나는 계속할 것 같아서 주문했다고 하셨다. 앞으로도 기필코 계속 태권도를 하리라고 다짐했다.


*


도장에 다니는 성인들이 늘어났다.


20대 중반의 여성분들이 3명이 더 들어왔고, 거기에 내가 회사 후배를 한 명 더 꼬드겨서 데려왔으니 성인 여성부가 5명으로 새로 구성된 셈이다.


비슷한 수준의 또래들이 늘어나니 발차기를 배우는 시간이 늘어났다. 관장님이 미트를 잡아주시고, 5명이 줄을 서서 돌아가면서 발차기를 했다. 늘 그랬듯 실력과 배운 기간이 비례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회사 후베 덕분에 꼴찌는 면할 수 있었다. 나는 공격을 할 때 힘이 거의 들어가지 않아 평화주의자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이런 나를 따라 자연스럽게 회사 후배는 평화주의자 동생이 되었다. 관장님은 거기 다니는 사람은 다 이렇냐며 우리 회사 자체를 걱정했다.


공격에 힘이 영 들어가지 않는 것에 대한 해결책의 일환으로 열받는 대상을 떠올려보라고 하셨다. 회사 분위기가 평화롭다 보니 상사에 대한 생각정도로는 딱히 효과가 없었고, 대신 전 남자친구를 생각했더니 힘이 절로 들어가더라. 아이고 고마워라.


또래들이다 보니 틈틈이 잡담을 하면서 친해지는 재미도 있었다.

놀라운 것은 새로 온 세명 중 두 명이 지방에 있는 내 본가 바로 옆에 붙어있는 고등학교를 나왔고, 다른 한 명은 그 당시 남자친구의 회사와 자주 협력하는 스튜디오 직원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입밖에 내지 않아 당사자는 모르지만 말이다. 역시 소소하게라도 나쁜 짓을 하고 살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


관장님과의 상의 끝에 2개월 후에 2단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코로나로 인해 심사 절차가 간소화된 지금을 노리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심사비로 20만 원 가까이 냈던 것 같은데 토익과 토익 스피킹의 악몽에 시달려온지라 제법 괜찮은 가격이라고 생각했다. 2년짜리도 아니고 평생 가는 거니까.


비록 주 3회 반을 결제하긴 했지만 나올 수 있으면 최대한 나오라고 하셨다. 토요일에도 열려있을 거라고. 그러나 너무나도 친절한 이 제안은 어차피 못 올 것이 뻔한 직장인에게는 심적 부담감만 주었을 뿐이었다. 주 3회도 간신히 나가는 중이었다.


어쨌거나, 드디어 본격적으로 품새 외우기에 돌입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태권도장에 다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