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지 못하는 콘텐츠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아무렇게나 던져 넣은 물건들로 정신없는 방, 세월의 풍파를 거쳐온 듯한 백발이 되어가는 머리
어느 동네에나 한 명씩 있는 폐지를 줍는 할아버지 같은 이 남자는 누구일까.
8090년대 태어난 독자라면 컴파일이라는 기업은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컴파일은 모르더라도 컴파일의 게임들을 본다면 바로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를 정도였다.
특히 퍼즐을 이어서 없앨 수 있는 '콤보'개념과 상대방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대전 모드'로 굉장한 집중력과 순발력을 요구하는 심오한 게임인 컴파일의 '뿌요뿌요'는 엄청난 인기를 자랑하며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게임으로 남아있다.
컴파일의 게임은 게임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었고, 전설과도 같은 명작들을 남겼다.
이런 컴파일을 이끌었던 사장이었으나 지금은 몰락한 기업인인 되어버린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컴파일 할배' 니이타니 마시미츠를 만나보자.
뿌요뿌요의 인지도가 워낙 거대한 만큼, 컴파일을 지금의 넥슨 정도 되는 대기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컴파일은 하청으로 시스템을 개발하던 중소기업이었다.
그러다 80~90년대 높은 수준의 슈팅게임과 뿌요뿌요 시리즈의 대성공으로
단숨에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IT기업이자, 대기업들 사이에서 목소리 좀 낼 수 있는
규모의 기업이 된 컴파일에게 무서울 것은 없었다.
당시 컴파일의 연매출은 70억 엔, 우리 돈으로는 대략 700억 원이었다.
중소기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컴파일의 이끌었던 니이타니사장은 중소기업의 전설이라 불리며 10억 원 이상의 연봉을 자랑하는 성공한 기업가였다.
니이타니사장은 굉장히 공격적으로 기업을 운영해 나아가는데, 특히 무리해서 히로시마 중심부로 사옥을 이전하고 이미 300명이 넘는 사원이 있는데도 120명을 추가로 고용하는 등, 마치 IMF 시절 대우그룹처럼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그의 폭주기관차 같은 경영방식은 단지 '뿌요뿌요'의 인기 단 하나만을 믿고 밀고 가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니이타니사장의 도박과도 같은 공격적인 경영에는 이유가 있었다.
1994년 히로시마의 명물 모미지 만쥬를 뿌요뿌요 스타일로 만들어낸 '뿌요만'은 그야말로 대 히트를 치며
컴파일의 대표 효자상품이 되었다.
게임회사의 주력상품이 빵이라는 건 좀 황당무계한 이야기지만,
그만큼 뿌요뿌요가 굉장한 위력을 가진 콘텐츠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본이었고,
컴파일의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는 상품이기도 했다.
니이타니사장은 컴파일을 최종적으로는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처럼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만드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고, 무리한 사옥 이전과 신입사원 채용도 종합 엔터테인먼트의 최종 목표인 '놀이공원'추진을 위해서였다.
한국의 롯데월드를 표본으로 삼아 기틀이 잡히기 시작한 지상 10층 규모에 놀이공원에는,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 시설과 호텔시설, 워터파크와 푸드코트가 계획되었다.
이 놀이공원의 이름은 '뿌요뿌요 랜드',
뿌요뿌요라는 콘텐츠가 해 온 사업 중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의 계획이었다.
모든 행정절차를 마치고 뿌요뿌요 랜드는 대망의 착공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는데,
그 대망은 거대한 야망이 아닌, 컴파일의 거대한 망조였다.
컴파일이 성공한 기업이라 할 지라도, 엄연한 중소기업이었다.
콘텐츠 경쟁력은 오로지 뿌요뿌요뿐이었고. 더 큰 문제는 뿌요뿌요의 성공에 취해 새로운 게임 개발에는
미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뿌요뿌요를 통해 벌어들인 어마어마한 수익은 그야말로 시궁창에 버려지고 있었다.
천만 원 정도의 회사자금을 개인 사비로 이용하여 뿌요뿌요의 캐릭터 분장(코스프레)을 한다던지,
돈 먹는 하마라고 불리는 모터스포츠 스폰서가 되는 등, 그야말로 정신 나간 행동을 일삼았다.
말도 안 되는 부실공사로 1년 만에 무너질 뻔했던 삼풍백화점이 '무량판공법'이라는 건축공법 덕분에 기적적으로 5년이라는 시간을 버틴 것처럼, 무너지고 있던 컴파일은 사실상 '뿌요뿌요'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컴파일을 완전히 무너지게 만든 최악의 실수가 나온다.
1998년 컴파일은 사무용 소프트웨어'POWER ACTY(파워 액티)'를 출시한다.
회사에서의 업무를 즐겁고 신나게 만들기 위해 뿌요뿌요 캐릭터로 장식하고 캐주얼하게 만들어진 파워 액티는
신뢰성과 업무효율이 최우선 되는 사무용 프로그램으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제품이었다.
심지어 이 최악의 제품에 개발비용과 마케팅 비용을 전부 쏟아 넣으면서, 막상 제일 공을 들여야 하는 게임들은
그야말로 찬밥신세였고, 그 해 게임회사로서는 최악의 평가를 받으며 컴파일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뿌요뿌요의 저작권 처분한 컴파일은 1998년 750억 원이라는 부채로 화의신청을 한다.
니이타니사장은 900억이라는 빚으로 파산했고, 지금은 월세방에서 살며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래도 2016년 COMPILE O(컴파일 마루)라는 회사를 다시 창립하고 자신의 힘으로 '뇨키뇨키'라는 게임을 출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아직 게임에 대한 노익장의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컴파일의 몰락은 콘텐츠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잘 보여주고 있다.
뿌요뿌요의 저작권을 구매하여 지금도 꾸준한 변화를 거치며 수익을 만들어내는 '세가'의 모습은 잘 만들어진 콘텐츠의 위력을 잘 나타내고,
뿌요뿌요라는 콘텐츠로 성공했지만,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몰락하는 컴파일의 모습은 콘텐츠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기업의 최후를 절실히 보여준다.
지금도 많은 커뮤니티에서 컴파일의 몰락에 대한 수많은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니이타니사장의 무리산 사업 확장이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도 컴파일 파산의 원인이지만,
필자는 컴파일이 자신들의 대표 콘텐츠인 뿌요뿌요에 좀 더 노력과 투자를 통한 변화가 있었다면
아케이드 시장이 축소된 21세기가 조금 힘들긴 했을지라도,
컴파일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남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콘텐츠의 바다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품들도 시간이 지나면 오와콘(끝나버린 콘텐츠, 퇴물을 뜻하는 일본 은어)이 되어간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콘텐츠라 할지라도 콘텐츠에 대한 기업의 애정과 변화가 없다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
콘텐츠의 힘은 영원하지 않다.
-FIN-
글쓴이-쉐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