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태권브이에 열광하며 태권브이와 함께 젊은 시절을 보내신 나이가 지긋하신 독자분도 있으실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는 참으로 죄송하지만
이번 칼럼에서 필자는 태권브이를 용서할 생각이 없다.
태권브이의 카프 박사처럼 필자가 오랜 세월 동안 묵혀둔 울분을 오늘 한번 터트려보자.
한국 정부에게 캐릭터 마케팅이란...
마징가를 가린 스티커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는 표절논란
태권브이의 명성과 인기는 참으로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70~80년대 유행하던 만화가, 필자가 어린 시절인 2000년대 초반까지
과학잡지에서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로봇 태권브이'라며 엄청나게 띄워주었으니
사실상 캡틴 아메리카, 아니 캡틴 코리아였던 것이다.
하지만 태권브이에겐 언제나 표절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아니 이젠 의혹도 아니다. 진짜 표절이니까.
이젠 김청기 감독도 인정하는 표절
만화에 관심이 많지 않은 분들은 "어차피 로봇 만화 다 거기서 거기인데 로봇 생긴 게 다 똑같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태권브이는 빼도 박도 못하는 마징가 Z의 표절작품이며, 그에 대한 증거는 너무나도 많지만
이를 적기에는 여백이 부족하다.
태권V의 마징가Z표절은 많아도 너무나도 많다
일본에서 태권브이는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었다.
일본 우익들은 자국의 만화를 베낀 짝퉁 만화가 한국에서 찬양받는 걸 보면서 비웃기에 바빴는데,
오죽하면 태권브이가 일본에서 개봉했을 때, 일본 만화팬들은 "우익들이 만든 거짓말인 줄 알았던 태권브이가 정말로 있다는 것을 알고는 충격을 먹었다"라는 말을 할 정도였을까.
그런데 높으신 분들이 이러한 표절 문제에 관심이 별로 없는듯하다.
뒤늦게나마 다 죽어가는 만화산업을 한국 세계화 산업으로 만들겠다는 훌륭한 정부 정책이 나왔지만
참으로 애석하게도, 한국을 대표하는 캐릭터로서 일본의 마징가를 베낀 태권브이를 내세우는 모습을 보면
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만화를 사회악으로 취급하고 불태우던 시절의 분들에게 만화는 정말 관심 밖이라는 것을 느끼게된다.
만화에 대한 이해도와 존중심이 부족한 분들이 그저 지역발전과 유권자들의 표에 눈이 멀어 질러대는 정책은
한국 만화계에 전혀 도움도 되지 않고, 캐릭터 마케팅의 실패사례로 논문에 남을 뿐이다.
올바른 캐릭터마케팅의 사례인 오아라이(좌)와 사세보(우)
이전 칼럼에서 소개했던 오아라이나 사세보의 경우처럼, 훌륭한 캐릭터 마케팅으로 지역 부흥과 유권자 모집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아낸 지역이 있다.
하지만 저 두 사례는 절대 막가무내 식으로 캐릭터 하나 갔다뒀다고 성공한 것은 절대 아니다
확실한 계획과 노력을 통한 결실이다.
스토리텔링의 정석인 모래시계의 정동진
참으로 답답하다. 멀리 일본이 아니라 바로 강릉에서도 찾을 수 있는 정답을 왜 높으신 분들은 찾지 못하는 것일까?
정동진이 그저 '모래시계의 촬영지'라는 호칭 하나만으로 유명해진 것일까?
정동진역에서 무엇을 했는가? 혜린의 정동진역 체포 씬은 정동진에게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제공했다
그리고 폐역이 될 뻔한 정동진은 통일호조차 지나치던 역에서 KTX가 서는 역이 되었다.
콘텐츠 마케팅의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과 지속성이다.
무엇을 팔 것인지보다 어떻게 팔 것인지가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콘텐츠 마케팅의 중점이다.
이러다 보니 태권브이를 이용한 캐릭터, 콘텐츠 마케팅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태권브이 마지막 시리즈인 90 태권브이가 나온 지 벌써 30년이 되어가지만
태권브이라는 콘텐츠는 어떠한 발전도 없었고, 새로운 작품도 없었다.
그런데도 왜 더 이상 나올 국물도 없는 태권브이의 사골을 끓여먹고 있는 것일까?
경제선진국, 그리고 문화후진국
장난감 회사 손오공
태권브이나 여러 국산 만화를 보던 아이들은 이제 사회의 중요 위치를 담당하는 대한민국 중, 장년층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태권브이가 나온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만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시선이 많다.
키덜트 산업이 중요 산업으로 자리 잡은 21세기에, 한국의 만화문화는 아직 제자리걸음 중이다.
만화에 대한 인식도 그렇고, 만화를 이용한 마케팅의 주요 타깃이 거진 영, 유아층이라는 것도 그렇다.
"만화는 유치하다"라는 인식 속에서, 태권브이에 멈춘 한국의 만화 인식은 어떠한 진화도 하지 못했다.
일본의 용산전자상가던 아키하바라가 거대한 만화 천국이 되고
미국의 마블과 DC가 세계의 수많은 어른들을 아이들의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동안
우린 어떠한 발전도 없는, 문화후진국이 되었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동용 만화를 주력으로 만드는 한국의 만화 기업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뽀로로나 카봇, 구름빵 같은 수많은 명작 애니메이션은
아동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산업의 역군들이 지금도 새로운 만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다만, 이러한 만화 기업들을 그저 "애들 코 묻은 돈 뺏는 유치한 놈들"로 보는 문화가 바뀌여야 한다는 것이다.
비난의 화살은 만화회사가 아닌, 정말로 애들 코 묻은 돈을 뺏는 대기업 장난감 회사로 향해야 한다.
손오공의 대표적인 만행 라젠카
라젠카, 故신해철 씨의 N.EX.T의 노래 덕분에
한국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이 만화는
참으로 슬프고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굉장히 철학적인 내용으로 13세 이용가의 작품으로 계획되었던 로봇 애니메이션 라젠카는
대기업 장난감 회사의 스폰을 받게 되는데
그 회사가 바로 그 유명한 손오공이었다.
만화 제작 당시 제작진은 유아용 완구 판매를 목적으로 더 많은 로봇이 나오는 것과 7세 이용가로 수위를 낮춰 만들어달라는 손오공의 요구에 시달렸는데, 기존에 있던 각본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렸고 제작진들 역시 심한 압박에 의한 스트레스로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만화가 나오게 된다.
'만화는 애들 것이다'라는 인식이 작품을 완전히 망쳐버린 것이다.
라젠카의 주제곡인 'Lazenca, Save Us'만 보더라도, 라젠카가 굉장히 철학적이고 어두운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라젠카의 주제곡을 아동용 만화처럼 상큼발랄하게 만들어달라는 손오공의 요구에 화가 났다는 故신해철 씨의 일화가 있을 정도다.
물론 또봇처럼 어른과 아이들을 모두 잡아낸 아동용 로봇애니의 사례도 있으니 무조건적으로 손오공 잘못으로 볼 수는 없지만, 라젠카는 당시 한국에서 만화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K-POP, 한식 세계화 등등 수많은 사례를 떠올리며 한국이 문화 후진국이라는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독자들을 위해, 한 가지 사례를 하나 더 풀어볼까 한다.
자동차는 그저 이동수단이라고 생각하는 현실
2018년 WRC유치를 목표로 했던 강원도
2015년, 강원도는 WRC(월드 랠리 챔피언쉽) 유치를 목표로 했다.
자동차 마니아인 필자에겐 정말 최고의 소식이었다. 필자가 사는 강원도에서 WRC를 보는 날이 오다니!
하지만, 역시는 역시나 역시였다.
2016년, 윤세영 태영그룹 회장의 지시로 강원도 WRC개최는 무산된다.
윤세영 회장은 국내 랠리 인프라 부족을 뽑으며, 인제 스피디움의 정상화부터 추진하기로 하였는데
모터스포츠 팬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그래도 국내 모터스포츠의 미래가 기대되는 윤세영 회장의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에 대한 이유를 전남 영암 F1을 꼽는 사람들이 있었다.
참으로 답답하도다, WRC 이야기에 대체 F1은 왜 나오는가?
F1(좌)과 WRC(우)는 성격 자체가 아예 다르다.
영암 F1은 한국 모터스포츠팬에게는 참으로 끔찍한 기억이다.
웬 시골마을이 갑자기 F1을 개최한다 하더니, 수천억을 들여서 만든 경기장은 국제 망신 그 자체였다.
건설 일정을 맞추지 못해 경기 며칠 전에 아스팔트를 깔지 않나
머신(경주용 차량) 바퀴에 인조잔디가 감기지 않나
심지어 주변 관광인프라도 부족했던 영암은 수많은 F1 팬들과 외신들을 모텔에서 숙박하게 만드는 등
정말 국제 망신이란 망신은 다 보여준, 전형적인 실패한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으로 뽑힌다.
그런데, 이 영암 F1의 실패는 강원도의 WRC유치 취소에 대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모나코의 몬테카를로는 무려 F1과 WRC를 둘다 개최한다!
WRC는 공도를 이용하기 때문에, 서킷 건설이 불필요하다.
따로 전용 서킷을 만들어야 하는 F1에 비해 유치비용이 적다.
심지어 모나코의 몬테 카를로처럼, 시가지를 서킷으로 만들어
F1도 개최하고 산길을 이용해 WRC도 개최하는 경우도 있다.
영암과 달리 강원도는 WRC와 정말 찰떡궁합인 지역이다.
배후령 옛길, 미시령 옛길 등등 유명한 산길들은 그야말로 천연 WRC 랠리 트랙이 되어주며
예로부터 관광산업에 강했던 강원도는 관광인프라까지 완벽하니, 그야말로 한국의 몬테 카를로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인제에 있는 인제 스피디움까지, 그야말로 WRC를 위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강원도의 WRC유치는 영암 F1처럼 절대 맨땅에 헤딩인 무모한 계획이 아니었다.
충분한 실현 가능성과 아이템이 있지만, 신중한 결정을 위해 유치를 취소한 것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은 F1의 사례를 들으며 강원도 WRC의 유치를 필사적으로 막는다.
랠리와 F1조차 구분 못하는 자동차문화 후진국인 한국의 현실을 뼈저리게 보여주는 것이다.
도요타 AE86의 정신적 후속차량인 도요타 86
이젠 더 이상 자동차산업이 자동차 문화를 생성하고 발전시키는 시대가 아니다.
과거 자동차는 하나의 이동수단으로써의 목적만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 자동차가 여가의 주요 수단이 되었고,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차들이 나오고 있다.
만화 이니셜D의 영향으로 유명해진 도요타의 AE86는 자동차 문화의 대표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도요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AE86의 주행 스타일을 계승한 정신적 후속차량 86을 출시한다.
그런데, 한국 자동차 기업은 자동차 문화의 발전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했나?
자국 차량의 구매자들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서킷을 만들었는가?
국제 레이싱 대회에서의 뚜렷한 족적을 남겼는가?
자동차박물관은 있나?
튜닝 문화에 대한 뚜렷한 지원책은 있나?
현대, 기아자동차는 그저 내수 독점에 만족할 뿐이다.
한국은 자동차 선진국이지만 자동차문화는 후진국이다.
문화선진국을 향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논란과 비난만 남겼던 독도 태권브이 건립계획
한때 너도나도 일본 만화를 표절하는 시기에 태어난 태권브이에게 잘못은 없지만
'그런 시절도 있었지'하고 넘어가야 할 일본의 잔재와도 같은 태권브이가 대한민국의 대표라는 것은
21세기 최고의 블랙코미디일지도 모른다.
태권브이에 묻혀 아련한 기억속으로 사라진뻔했던 철인 캉타우
그렇다고, 태권브이 말고 한국의 로봇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 만화 표절의 시기에 독자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태어난 이정문 화백의 '철인 캉타우'는
놀라운 완성도와 잠재력에 불구하고 아직까지 대중들에게는 멀게 느껴지는 존재이지만,
진정한 한국의 로봇으로 인정받으며 새로운 리메이크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굳이 태권브이에 고집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부디 무주군의 생각이 바뀌길....
이번 무주 태권브이 논란으로, '애들 코 묻은 돈 뜯는 아이템'이라던가 '일발성 이벤트'로 치부되는
대한민국의 만화문화가 조금이나마 바뀌길 바라며,
만화문화뿐만 아니라, 모터스포츠, 오토바이 등등 이런저런 오해로 하대 받는 문화들이
언젠간 인정받으며 당당히 K 로고를 달고 한국만의 문화로 세계에 나아갈 그날을 위해.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e스포츠의 세계적 유명인사 '페이커'
이것은 전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게임중독자'라는 누명을 쓰던 '프로게이머'라는 직업도 게임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