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텐 스토어는 왜 망했는가
필자가 대학교에서 외식경영을 전공하던 시절 '외식산업과 캐릭터 산업의 융합을 이용한 키덜트 식문화산업'이라는 졸업작품을 만들 때, 성공의 예로 들었던 것이 바로 '오타쿠 카페'였다.
늘 필자가 주장하는 '충성도 높은 지속적인 고객층'이라는 조건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존재가 '오타쿠'였고
이런 오타쿠들을 겨냥한 카페나 음식점은 키덜트 식문화산업에 완벽한 성공사례였다.
오타쿠 카페는 일시적인 이벤트로 반짝 매출 상승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콜라보레이션 이벤트와 오타쿠들이 직접 즐길 수 있는 각종 콘텐츠를 끊임없이 만들어 나가며
'한 번만 들리고 가는 독특한 카페'가 아니라 '매번 다시 가고 싶은 카페'가 되는 것이 오타쿠 카페의 중점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오타쿠를 그저 캐릭터 상품이라면 물쓰듯 돈을 쓰는 호구로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타쿠도 엄연한 고객이며 사람인데, 맛도 없고 특색도 없는 상품을 그저 캐릭터 하나 달랑 그려 저 있다고 좋다고 사 먹을 오타쿠는 없다.
그만큼 오타쿠 카페는 만화문화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특정 만화에 대한 관심이라는 오타쿠적 면모와
높은 수준의 음료와 음식의 퀄리티라는 카페적 면모까지 필요하기 때문에,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장사가 아니다.
특히나 만화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 높지 않은 한국에서 오타쿠 카페는 그야말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러한 불모지에서 개척자가 되어 선봉장이 되었던 한 카페가 있었다.
'게이머즈'라는 잡지의 필자였던 한경철 씨가 운영하던 사보텐 스토어는, 원래는 일본의 캐릭터 상품을 구매 대행하던 업체였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한국의 서브컬처 시장의 규모와 발전 가능성을 눈여겨봐왔던 한경철 씨는 구매대행업체던 사보텐 스토어를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콘셉트인 오타쿠 카페로 탈바꿈시킨다.
첫 개업 당시 사보텐 스토어의 인기는 굉장했다.
본디 오타쿠 문화라는 것은 2019년인 지금도 굉장히 매니악한 소수의 문화이기에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매우 한정적인 한국에서 오타쿠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은
그야말로 한국 오타쿠계의 혁명과도 같았다.
필자는 대학시절 늘 키덜트 산업의 성공사례로 뽑으며 사보텐 스토어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였고
SNS의 수많은 글들과 기자들의 긍정적인 기사는 사보텐 스토어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듯했다.
그렇다면, 2019년 지금 사보텐 스토어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때 판교와 대전에까지 분점을 만들며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했던 사보텐 스토어는
끊임없는 논란과 수많은 적자를 만들며 6년이라는 짧고도 강렬한 역사를 남기고 2017년 10월 폐업했다.
하지만 그 강렬함은 긍정적인 면만 남아있지는 않았다.
오타쿠층에게는 '그 카페'라는 부정적인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수많은 논란을 남겼었고,
아무리 개척해 나아가는 과정이라 할 지라도, 그냥 보고는 넘어갈 수 없는 문제를 너무나도 많이 만들어냈다.
폐업한 지 2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많은 커뮤니티에서 사보텐 스토어의 폐업에 대해 논쟁을 펼친다.
매장의 높은 월세, 게임이나 만화와의 콜라보레이션에 관한 저작권 문제, 불성실한 구매대행 업무 등등
많은 주장이 나오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사보텐 스토어의 폐업 사유는 조금 다르다.
편의점보다 2배나 많은 카페가 있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진 대한민국의 커피시장에서,
박리다매로는 대형 프랜차이즈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독창적인 자신만의 무기가 필요하다.
그로 인해 최근에는 직접 로스팅을 하는 '로스터리 카페'나 아름다운 라테아트를 선보이는 '라테아트 전문 카페' 등등 수많은 카페들이 이 피 튀기는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펼치는데,
아무리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카페는 카페로서의 본분을 잊으면 안 된다.
사보텐 스토어는 오타쿠를 주요 소비자로 선택했기 때문에, 당연히 오타쿠를 위한 상품이 있었다.
고객이 원하는 캐릭터를 시럽으로 그려주는 '시럽 아트'는 사보텐 스토어의 시그니쳐였고, 이것 하나 때문에 사보텐 스토어를 주기적으로 찾는 고객도 존재했다.
하지만 시럽 아트는 사람이 직접 그려야 하는 특성상 회전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오타쿠 소비자층은 시럽 아트 하나를 위해 먼길을 왔지만, 낮은 회전율로 인해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고
당연히 기다림에 지친 소비자는 자연스레 가게에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또 대부분 시럽 아트를 경험했던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그림을 받은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지, 맛에서의 만족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빵 메뉴인 시럽 아트는 카페의 주력상품인 음료가 아니다.
당연히 커피 같은 음료 메뉴들은 밀려날 수밖에 없고, 그저 시럽 아트를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키는
일종의 들러리일 뿐이다.
게다가 만원이 넘어가는 가격은 오타쿠 카페의 주요 소비자층인 청소년층에게는 꽤나 부담스럽고
경제적 여유가 어느 정도 생기는 성인층의 경우 더 좋은 서비스와 즐길거리가 있는 일본을 가지
굳이 시끄럽고 어수선한 사보텐 스토어를 갈 이유가 없다는 점도 크나큰 단점이었다.
낮은 회전율, 주요 소비자층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 책정, 평균 이하의 맛
'만화'라는 콘텐츠는 굉장한 잠재력을 가진 독창적인 무기지만, 총이 없으면 총알을 쏠 수 없다.
사보텐 스토어는 카페의 본분을 잊고 있었다.
'우주전함 야마토'에서 시작된 1세대 오타쿠들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 자체를 즐기는 방식이 전부였다.
1세대 오타쿠들에게 만화는 지금의 영화처럼 꽤나 고상하고 매력적인 취미 중 하나였고
한국도 참여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까지는 직접 일본을 다녀오지 않는 한
일반인들은 즐기기 힘든, 고급스럽고 높으신 분들만 즐길 수 있는 문화였다.
하지만 누구나 해외여행을 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의 문화를 알 수 있는 지금은,
만화는 굉장히 입문 난이도가 낮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되었다.
콘텐츠가 증가하면서 만화는 점점 만화 그 자체를 즐기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만화와 관련된 상품을 구입하거나 행사를 즐기는 방향으로 변하였는데,
이로 인해 '키덜트'라는 새로운 소비형태가 생겨나고 '만화 마케팅'이라는 독특한 홍보 방식이 생겨났다.
문제는 '오타쿠는 무조건 구입한다'라는 만화 마케팅에 대한 잘못된 이해다.
오타쿠도 소비자다. 아무런 매력이 없는 물건을 고작 캐릭터 하나 그려져 있다고 구입할 사람은 없다.
아무리 만화 마케팅을 속된 말로 '호구 장사'라고 부른다지만, 만화 마케팅을 하는 많은 회사들이
고작 캐릭터 하나 믿고 아무렇게나 상품을 만들고 판매하지는 않는다.
수집 욕구와 적당한 가격, 그리고 상품의 퀄리티 등등 오타쿠 소비자층도 상당히 신중한 소비자층이기 때문에
시장조사는 당연한 것이다.
사보텐 스토어의 한경철 대표도 오랜 기간 게임과 만화에 몸을 담그며 만화 마케팅의 가능성과 힘을 느꼈을 것이고, 사보텐 스토어의 프랜차이즈화나 사보텐 스토어의 본점이 위치한 사당을 중점으로 일본의 '아키하바라'나 '덴덴타운'같은 '오타쿠 타운'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으니 당연히 철저한 시장조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청소년에겐 가격이라는 벽은 너무나도 거대했고 성인에겐 콘텐츠와 퀄리티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만화 마케팅의 힘을 느낀 것 까진 좋았으나, 정작 중요한 사업가로서의 면모는 부족했다.
사보텐 스토어는 만화 마케팅에 대한 큰 교훈을 남겼다.
카페에게는 살벌한 카페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창성은 반드시 필요한 무기지만
'콘셉트에 잡아먹히다'라는 말처럼 카페가 음료에 무관심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 잘 보여주고
최근 만화 마케팅의 대세를 따라 오타쿠에게 빨대를 꼽아보려는 기업에게는
콘텐츠의 부족함에 대한 한계를 명확히 보여준다.
콘텐츠가 없는 그림 쪼가리에 애정을 쏟아부을 바보 오타쿠는 없다.
만화의 힘은 거대하지만, 주인공은 만화가 아닌 상품이다.
-FIN-
글쓴이-쉐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