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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IT IS”:존재를 수용하는 '용기'의 심리학

그림자를 받아들이는 순간,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by 심리한스푼

1. 고요 속의 결말: 싸움이 끝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세상은 언제나 우리에게 싸움을 강요한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하고,
더 강해야 하고,
더 완벽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여정이 끝나는 곳은 ‘승리’의 자리가 아니다.
그 끝은 오히려 조용한 수용의 자리다.


루미가 귀마를 마주한 마지막 장면은,

바로 그 조용한 결말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을 조롱하는 귀마의 물음에 위축되지 않았다.

대신, 짧은 세 문장을 남겼다.


“I can't"
“They do.”
“IT is.”


그 순간 비로서,

그녀는 자신의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졌다.
귀마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혼문은 파괴 되었지만,

더 이상 그런 것들이 그녀를 막지 못한다.
그녀의 수용은 그것은 물리적 통합이 아니라,

존재의 해방이었다.




2. ‘I can't’ ― 존재의 수용, 자기(Self)의 회복

귀마와 루미가 마주한 순간,

귀마는 루미를 비웃었다.

"You think you can fix the world? you can even fix your self."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자기 하나도 해결 못하는 주제에.

세상을 고치겠다고 나선 그녀에게,

귀마는 냉소적으로 말한다. “너 하나도 고치지 못하지 않느냐.”

그 말은 진실이었다. 그리고 루미는 피하지 않았다.


"I can't."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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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대답은 절망이 아니라, 깊은 자각의 문장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없음을 받아들였다.
이는 자기부정이 아니라, 자기수용의 첫 단계였다.

심리학자 크리스틴 네프는 ‘자기연민(Self-compassion)’을 이렇게 정의했다.

“나의 고통을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
즉, 할 수 없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다.


‘I can’t’는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용기다.
그동안 루미는 늘 ‘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나는 할 수 없다’는 자각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진실의 복원이다.


인간은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
할 수 없는 나를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루미의 “I can’t”는 실존적 공허의 자리에 피어난 가장 인간적인 힘이었다.



3. ‘They do’ ― 타자의 수용, 세상의 인정

귀마는 다시 속삭인다.

“Now everyone finally sees you for what you really are.”
“이제 온 세상이 네 진짜 모습을 다 알게 됐구나.”


루미는 대답한다.

“They do.”
그래.(그들은 그렇게 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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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문장인 ‘They do’는 방향을 바꾼다.
이제 시선은 자기 자신을 넘어, 타인을 향한다.
귀마가 말했다. “모두가 네 정체를 알게 되었어.”

루미는 대답했다. “They do.”


이 짧은 문장은 세상에 대한 항복이 아니라, 인정이다.
그녀는 더 이상 ‘이해받지 못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고, 평가하고, 심지어 배척하더라도 —
그것은 그들의 몫이다.


이 수용은 포기가 아니다.
심리학적으로는 타자현실의 수용(Acceptance of others’ reality)이라 부른다.
즉, “타인은 나와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많은 고통이 여기서 생긴다.

“왜 그들은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왜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을까?”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타인이 나를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때 시작된다.

“그들은 그렇게 한다(They do).”
“나는 그것을 통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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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문장은 냉소가 아니라 평온이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반응하고,
그들의 시선에는 그들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관계적 자율성(Relational autonomy)의 시작이다.
타인을 통제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고,
그들이 ‘그들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

그녀는 이제 자신과 타인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안다.
그 경계는 단절이 아니라 자유로운 공존의 경계다.


이 인식이 자리를 잡는 순간, 관계의 얽힘이 풀린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세상이든 —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4. ‘IT is’ ― 존재의 수용, 모든 싸움의 끝

귀마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And the Honmoon is gone.”
“혼문은 드디어 사라진다.”


루미는 천천히 눈을 감고 대답했다.

“It is.”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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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은 영화 전체의 핵심이자,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진실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관계가 부서져도,

인간은 여전히 ‘새로운 문’을 만들 수 있다.


세 번째 문장인 ‘IT is’는 모든 싸움의 종착지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
혼문은 사라졌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IT is’는 실존적 수용(Existential Acceptance)의 문장이다.
즉, 세계가 불완전하고, 인간이 불완전하며,
그 불완전함이 바로 존재의 본질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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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용은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실존적 용기다.
폴 틸리히는 말했다.

“존재의 용기란,
존재할 이유가 사라진 순간에도 존재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루미가 말한 “IT is”는 바로 그 결정이다.
이것이 내 삶이고, 이것이 세상이며, 이것이 나다.
거기엔 더 이상 ‘하지만’이 없다.
모든 조건이 사라진 자리에, 순수한 존재의 긍정이 남는다.



5. 받아들임의 역설: 수용은 곧 창조다

앞서 '혼문은 드디어 사라진다.'는 귀마의 말에

루니는 '그렇겠지'라고 대답한다.

이는 루미가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실존적 용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잠시 뒤, 덧붙였다.

“So we can make a new one.”
그럼 다시 새로 만들면 돼.
새로만듬 ㅋ.png


루미는 “그래서 우리가 새로 혼문을 만들 거야”라고 말한다.
그녀는 수용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 받아들임은 멈춤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


우리는 종종 ‘수용’을 패배나 체념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진정한 수용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순간,
그 위에 새로운 가능성을 쌓을 수 있게 한다.


루미가 말한 혼문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불완전함을 인정한 존재들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질서”다.
즉, 혼문은 ‘완벽한 인간들의 성벽’이 아니라,
‘상처를 공유한 인간들의 다리’인 셈이다.


19796923ea33fd37.jpg 작중 혼문 형상화


현실에서도 그러하다.
자신의 결핍을 인정한 사람만이, 타인의 결핍을 껴안을 수 있다.
상처를 부정하는 사람은 고립되고,
상처를 드러내는 사람은 관계를 만든다.


루미가 혼자 싸우던 시절엔, 귀마는 강했다.
그러나 “우리”라는 이름이 생긴 순간, 귀마는 무력해졌다.
수용은 혼자의 내면에서 시작되지만,
치유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6. 개성화의 완성: 불완전함의 통합

융은 인간의 심리적 성장의 마지막 단계를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불렀다.
이는 ‘완벽한 자아’로의 상승이 아니라,
‘모든 모순을 품은 자아의 통합’을 뜻한다.


루미는 더 이상 자신 안의 어둠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 어둠이 자신을 구성하는 일부임을 알았다.
귀마와의 싸움은 결국 ‘자기 내부의 그림자’와의 싸움이었고,
그 싸움의 끝은 파괴가 아니라 통합이었다.


“I can't / They do / I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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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문장은 각각 자아, 타자, 세계의 화해를 의미한다.
즉, 그녀는 자신세상, 그리고 존재 전체를 하나로 묶었다.

이것이 바로 ‘개성화의 완성’이다 —
싸움의 끝이 아니라, 존재의 일치.



7. 현실로의 귀환: 우리 각자의 “IT IS”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끝나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우리는 여전히 불안하고, 미완성이고, 흔들린다.
그러나 루미의 마지막 대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받아들이는 순간, 모든 싸움이 끝난다.”


수용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하지만 수용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바꾼다.
그 순간, 고통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현실의 “IT IS”는 늘 불완전하다.
상처는 낫지 않았고, 관계는 여전히 삐걱거리고,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그래도 나는 살 수 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래도 세상은 존재한다.”


그 단순한 수용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자유다.



8절. 싸움의 끝에서: 그림자를 품은 자아

루미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다.

귀마의 눈앞에서,

그녀는 자신이 두려워했던 모든 상처를 마주했다.


그것은 실패한 무대,

부서진 관계,

그리고 완벽해야 한다는 집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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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두려움을 인정하자, 귀마의 형체가 흔들렸다.

억눌린 그림자와의 싸움은 증오가 아니라 포용의 행위였다.

루미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순간,

헌트릭스의 멤버들이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각자의 결핍과 오해를 용서하며 다시 손을 맞잡았다.


싸움은 계속되었지만,

루미의 눈빛엔 더 이상 두려움이 없었다.

자신의 문양을 더이상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혼문이 사라졌다는 것에 더이상 좌절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품은 자의 평온한 빛이었다.



9. 존재의 수용: 불완전함 속의 완성

귀마의 마지막 공격이 루미를 향했을 때,

진우가 몸을 던져 그 칼날을 막았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You did. You gave me my soul back. And now... I give it to you.
넌 해냈어. 내 영혼을 돌려줬잖아. 이제... 너에게 줄게."


이후 루미는 귀마의 빈틈을 보았고,

사인검을 통해 귀마를 쓰러트렸다.

귀마가 쓰러지자, 악령들은 고요히 사라졌다.


싸움은 무사히 끝났고,

새로운 혼문은 완성되었으며

귀마는 사라졌다.

그럼에도 세상은 그대로였으며,

달라진건 루미였다.


루미는 마지막 전투를 치른 후,

미라, 조이와 함께 사우나를 간다.

"우와 이거 끝내준다"
"진작 우리 말을 들었어야지~"


news-p.v1.20250902.7ef2229223ed4fc5822e61023813a155_P1.jpg 왼쪽부터 조이, 루미, 미라


루미가 멤버들과 사우나를 가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루미는 자신의 문양을 보여주기 부끄러워 하였고,

이에 사우나 가기를 거절했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통합된 자신으로 나아감으로서

멤버들과 함께 사우나에 가는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 루미의 자기실현의 상징이기도하다.


이제 그녀는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인간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믿음,

그 자리에서 새로운 세계가 다시 태어난다.




모든 싸움이 끝난 후에도, 인생은 계속된다.

상처는 완전히 낫지 않지만, 우리는 함께 노래할 수 있다.
그 노래가 바로 혼문이며,
그 노래가 바로 삶이다.


루미의 여정은 이제 우리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다음 장, 에필로그 ― 불완전함으로 완성되는 우리.
루미 이후의 세계에서, 우리는 각자의 혼문을 만들어간다.
그 혼문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이,
우리의 존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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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줄요약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일 때, 세상은 더 이상 적이 아니다.
바꿀 수 없음의 자리에서, 비로소 존재는 고요히 자신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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