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의 문양은 ‘부끄러운 나’의 시각화
‘아이돌(idol)’은 본래 라틴어 idolum—즉 ‘형상, 우상’을 뜻한다.
과거엔 신을 대신한 숭배의 대상으로,
오늘날엔 사회가 투사한 ‘완벽함의 형상’으로 변했다.
헌트릭스 같은 아이돌은 그래서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대중이 꿈꾸는 이상적 자아의 거울이다.
우리는 아이돌과 같이 ‘완벽한 사람’에게 열광한다.
흠 없는 얼굴, 흔들리지 않는 태도, 실수조차 스타일로 승화시키는 능력.
하지만 ‘완벽하다’는 말은 언제부터 이렇게 위험한 찬사가 되었을까.
루미는 그 찬사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무대 위의 그녀는 언제나 빛났다.
팬들은 외쳤다. “완벽해!”
하지만 그 빛의 이면에는,
그녀 자신조차 외면하고 싶은 한 문양이 있었다.
팔의 아래쪽에서 시작된 보라색 문양은,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목 쪽으로 번져갔다.
그녀는 조명 아래에선 늘 웃었지만,
조명이 꺼진 순간,
거울 속에서 그 문양은 조용히 살아 움직였다.
그녀는 생각했다.
그것을 지우면, 자신도 함께 사라질 것만 같다고.
그건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자기혐오의 형태로 남은 상처였다.
작중 초반, Golden 발매이후 공연을 준비하면서
미라와 조이는 루미에게 공연이 끝나고 사우나에 가자고 제안했다.
이에 루미는 웃으며 말했다.
“난 괜찮아. 너희들 끼리가.”
겉으론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 짧은 말 뒤엔 복잡한 감정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문양을 들킬까 봐 두려웠다.
팔에 난 흔적이 노출되는 순간,
미라와 조이가 실망할까봐 두려웠다.
자신들이 처치하는 악령의 문양이 리더에게 있다니,
루미는 다른동료들이 자신의 문양을 보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의 두려움은 단순히 비밀을 감추는 게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를 부정하려는 몸부림이었다.
미라가 조이에게 물었다.
“루미, 우리한테 숨기는 거 있어?”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루미의 마음을 찔렀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을 피했지만,
그 웃음 속엔 자신을 믿지 못하는 불안이 섞여 있었다.
동료들과의 믿음을 중시하고,
‘솔직함’이 팀의 유대라고 믿던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심리학자 카를 융은 이렇게 말했다.
“그림자는 우리가 인정하지 못한 자기의 일부다.
그것을 직면하지 않으면, 그림자는 우리의 삶을 조종한다.”
루미의 문양은 바로 그 ‘그림자’의 시각적 언어였다.
그녀는 헌터로서 악령을 사냥하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에 깃든 악령을 두려워했다.
그녀는 ‘선한 나’의 대표로서 존재해야 했다.
무대 위의 루미는 늘 카리스마 있고, 강하며, 희망을 상징했다.
그러나 무대 아래의 루미는 불안했다.
그 완벽함을 유지하려는 압박 속에서
그녀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졌다.
억압은 언제나 역설적이다.
감추려 할수록, 감정은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루미가 문양을 가리려 화장을 덧칠할수록,
그 문양은 더 짙어졌다.
마치 “너는 나를 버릴 수 없어”라고 말하듯이.
그녀가 부정한 것은 ‘악’이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함이었다.
심리학자 휴렛 & 플렛(Hewitt & Flett, 1991)은
완벽주의를 세 가지로 구분했다.
① 자기지향적 완벽주의(Self-oriented) — “나는 완벽해야 한다.”
② 타인지향적 완벽주의(Other-oriented) — “타인도 완벽해야 한다.”
③ 사회부과 완벽주의(Socially prescribed) — “타인이 나에게 완벽을 기대한다.”
루미는 세 번째 유형의 전형이었다.
그녀의 완벽함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시선이 부여한 의무였다.
‘리더니까’, ‘아이돌이니까’, ‘흠이 있으면 안 되니까.’
그 명령은 점점 그녀의 내면에 각인되어,
자신을 검열하는 초자아의 목소리로 변했다.
이는 자신을 키운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인 셀린의 영향도 있다.
해당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 다루기로 하겠다.
루미의 삶은 통제의 연속이었다.
대중들 앞에서 늘 좋은 모습만 보여줘야했고,
혼문의 완성을 위해 자신의 감정은 숨겨야 했다.
그녀의 세계에서 ‘흠집’은 곧 ‘리스크’였다.
루미는 매 순간 ‘괜찮은 사람’으로 연기해야 했다.
하지만, 완벽은 언제나 대가를 요구한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흔들릴 때마다,
몸은 긴장으로 굳어졌고, 목의 근육은 서서히 경직되었다.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고음이 예전처럼 올라가지 않았다.
루미는 그것을 ‘컨디션 문제’로 넘겼지만,
그건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마음속에 갇힌 감정이,
몸을 통해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을 억누른 자리는 언제나 몸이 채운다.
사우나 사건 이후, 팀의 공기가 달라졌다.
미라와 조이는 여전히 루미를 따랐지만,
알게 모르게 루미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의 잔향을 남기게 되었다.
루미 역시 자신의 치부를 숨기는 자신에 대해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왜 팀동료에게 마저 솔직하지 못할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자신의 문양을 들키면 동료들이 실망할 것이라고 두려워 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그 분노의 방향은 언제나 안쪽을 향했다.
그녀의 문양은 목 언저리까지 번져 있었다.
이제는 스카프로도 가리기 어려웠다.
자신이 부정한 감정이,
몸을 통해서 드러나고 있었다.
그녀의 불안과 죄책감이 피부 아래서 살아 움직였다.
숨길수록 더 드러나는 진실.
억압할수록 더욱 튀어나오는 방식.
그것이 그림자의 방식이었다.
루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흔한 위로가 아니다.
그건 이미 수없이 들어왔으니까.
대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완벽하려는 순간,
사회적 시선에 부합하려 목을매는 순간,
그림자를 숨기려는 순간,
당신의 그림자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우리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종종 진짜 나를 잃는다.
루미의 문양은 그것을 멈추라는 경고처럼 다가온다.
가끔은 결함을 덮기보다,
“그래, 이게 나야.”라고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한마디 내면의 악령을 물리치는 주문이 될 수 있다.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비로서 진실한 자기자신과 조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