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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루미와 목소리: 억압은 몸으로 말한다

마음이 막히면, 몸이 대신 말한다

by 심리한스푼

1. 고음이 나오지 않는다

골든 발매이후, 첫 라이브 무대 연습 장면에서

루미는 후렴부분에 목소리가 올라가지 않는다.

“왜... 소리가 안 나와?”


루미의 목이, 단 한 음절도 내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목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 조여오는 느낌.
클라이맥스 파트의 음이 터져야 할 순간,
마이크 속으로 나온 건 단지 공허한 숨소리였다.


고음 X.png 고음이 나오지 않는 루미


그녀는 스스로를 다그쳤다.
지금은 리허설일 뿐이야. 긴장해서 그래.
그러나 속으로 되뇌일수록 목은 더 굳어갔다.
억지로 음을 올리려 하면 할수록,
소리는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숨어버렸다.


매니저 바비가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 목이 좀 아픈걸까?”
루미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잠깐 끊죠. 5분만 쉴께요.”


목까지 문양이 올라온 루미.png 목까지 올라온 문양을 확인한 루미


루미는 자신의 팀을 안정시키기 위해 괜찮은 척했다.
그러나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말을 끝내는 순간에도 목 안쪽이 타는 듯했고,
거울을 본 그녀는 깨달았다.
문양이, 목 아래까지 올라와 있었다.
피부가 살짝 붉게 달아올랐고,
그 아래 보라빛 문양이 숨을 쉬듯 맥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목을 감쌌다.
누군가가 이걸 본다면— 공연이 망가질지도 모른다.
아니, 단지 공연뿐만이 아니다.
황금 혼문이 완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순간, 그녀의 두려움은 단순한 무대공포가 아니라
‘사명감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존재적 공포로 변했다.



2. 몸이 말을 대신할 때

루미의 목소리 문제는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다.
심리학에서 이런 현상을 ‘신체화(somatization)’라고 부른다.
감정이 말로 표현되지 못할 때,
그 감정은 몸의 언어로 바뀌어버린다.


우리가 속상할 때 목이 메이거나,
말을 참다가 속이 답답해지는 것도 같은 이치다.
마음속 갈등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면’,
몸은 대신 그 역할을 떠맡는다.


Sigmund-Freud_cover.jpg 지그문트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이런 현상을 “전환히스테리”라 불렀다.
정신의 갈등이 해소되지 못할 때,
그 에너지가 신체 증상으로 ‘전환’된다는 뜻이다.


루미의 경우, 그 갈등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나’였다.
그녀는 완벽해야 했다.
무대 위의 리더, 팬들의 희망, 헌터의 상징.
하지만 그 완벽함의 껍질 아래엔 늘 두려움이 있었다.

“내 안의 악령이 사람들에게 들키면 어떡하지?”


그 불안은 한 번도 말로 표현되지 못했다.


그녀는 늘 ‘괜찮다’는 말로 그 감정을 덮었고,
그 덮개 아래서 감정은 조금씩 응고되었다.
그리고 결국, 말 대신 ‘목소리’가 그 감정을 떠안았다.



3. 억압의 메아리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을 세 층으로 나누었다.
의식, 전의식, 그리고 무의식.
루미는 그중 무의식의 가장 깊은 층에서 자신을 억눌렀다.
“나는 괜찮아. 완벽해야 해.”
그 다짐은 보호막이었지만, 동시에 감옥이기도 했다.


억압된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형태를 바꿔 돌아온다.
어쩌면 루미의 문양과 목소리 문제는 같은 뿌리였을지 모른다.
‘감추고 싶은 진실’이 신체의 언어로 바뀌어 나타난 것.


일러스트.png 프로이트 성격의 3요소: 자아, 초자아, 원초아


그녀의 몸은 이미 오래전부터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목이 간헐적으로 타들어가는 느낌,
밤마다 잠들기 전 목구멍이 잠겨오는 듯한 압박감,
그녀는 그걸 단순한 피로나 스트레스로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신호였다.
“이제, 말해야 해.”


몸은 거짓말을 못 한다.
우리가 ‘모른 척한 감정’을 가장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언제나 이다.



4. 황금 혼문, 그리고 무너지는 사명감

루미의 목소리는 ‘골든’ 첫 공연을 앞둔 리허설 직전에도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헌트릭스의 매니저 바비는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루미야, 진짜 괜찮아? 물 한잔 줄까?”

루미는 잠시 끊고 휴식을 취한다며,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공포에 휩싸였다.
이러다 무대에서 고음이 터지지 않으면?
황금 혼문은 완성되지 않을 거야.
그건 단지 ‘무대 실패’가 아니라 ‘세계의 균열’이었다.
그녀의 사명감은 그녀를 옥죄어오는 불안과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혼문의 완성이라는 사명 앞에서

자신의 심리적 압박에 대해,

'내가 버텨야한다'라는 마음가짐을 스스로를 채찍질 한다.

하지만 그 ‘버팀’이야말로,
그녀의 증상을 더 악화시키는 원인이었다.



5.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

목소리를 잃는다는 건 단순히 말을 못하는 게 아니다.
그건 ‘나의 언어’를 잃는다는 뜻이다.
루미는 목소리를 통해 자신을 증명해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헌트릭스의 정체성이었고,
팬들은 그 목소리 속에서 위로를 얻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자신을 증명하던 도구를 잃었다.


그건 마치 ‘자기표현’의 봉인이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다.
보이고 싶지만, 보여선 안 된다.
이 모순 속에서 루미의 정신은 점점 혼란스러워 졌다.

동시에 그의 악귀 문양 역시 커져가고 있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루미의 목소리 상실은
‘자기표현의 억압’신체로 전이된 전형적인 현상이다.
말하지 못한 감정, 표현되지 못한 분노,
그리고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 모든 감정이 목에 걸려버린 것이다.


루미는 그것을 ‘몸의 문제’로만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마음의 언어’가 막힌 결과였다.
우리가 감정을 억누를수록,
몸은 더 큰 소리로 우리를 대신 말한다.



6. 마음이 막히면, 몸이 대신 말한다

루미의 목은 그녀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녀가 침묵할수록 목소리는 사라졌다.
그녀가 웃을수록 문양은 짙어졌다.


그녀의 몸은 언제나 진실했다.
그녀가 완벽한 리더의 얼굴을 유지하려 할수록,
그 완벽함의 균열은 피부와 목선을 타고 올라왔다.


이건 루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역시 마음이 막히면,
몸이 대신 말하기 시작한다.
말하지 않은 서운함은 위를 망치고,
표현하지 못한 분노는 어깨를 굳게 한다.


‘괜찮다’는 말 뒤에는, 언제나 ‘사실은’이 숨어 있다.

그 ‘사실은’을 끝내 말하지 못할 때,
몸은 그것을 대신 증언한다.


루미의 목소리가 멎은 건 실패가 아니다.
그건, 몸이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녀의 무대는 멈췄지만,
그 침묵 안에서 진짜 ‘루미’가 깨어나고 있었다.



7. 침묵 이후의 무대

컴백무대의 리허설 도중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루미.
그녀는 혼자 대기실에 남아 조용히 거울을 바라봤다.
목의 문양은 더 짙어졌고,
그 안쪽에서 미세하게 맥이 뛰고 있었다.

루미는 결국 무대에 서지 못했다.


컴백 스케쥴은 취소되었고,

숙소로 돌아온 루미는 미라와 조이를 만난다.

루미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말한다.

라이브 못해서 미안해.


루미를 위로해주는 미라와 조이.png 루미를 위로해주는 미라와 조이


루미 괜찮아.
아무일 없이 다 잘될꺼야.
바비가 수습한데

조이와 미라는 루미를 위로하고,

그녀의 목소리를 되돌리기 위한 방안을

함꼐 모색한다.


그러나 루미는 여전히,

동료들에게 자신의 그림자인 악령의 문양을 숨긴다.

이러한 솔직하지 못한 행동에

점차 미라는 인내심이 바닥나고

루미를 추궁하기에 이른다.


미라의 단단한 눈빛, 조이의 따뜻한 표정.
그녀는 어쩐지 낯설었다.
그 두 얼굴이,

마치 자신 안의 서로 다른 목소리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 싸움은 악령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 안의 세 목소리가 부딪히는 싸움일지도 모른다고.




✍️ 한줄요약

"루미가 잃은 건 단순한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말할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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