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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윤 Feb 18. 2022

나를 살리는 불안

[책 리뷰] Randolf M. Nesse, 이기적 감정



Evolutionary Psychiatry라는 학문이 있다. 한국말로 하자면 진화정신의학으로, 정신과적 질환을 진화론적으로 이해해보고자 하는 학문이다. 이들에 따르면 행복은 물론이고 슬픔이나 두려움,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 또한 진화론적으로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에 생겨난 감정들이다.

생쥐의 'flight or fight' 반응을 생각해보라! flight는 포식자를 만났을 때, 두려움에 사로잡혀 저 멀리 도망가버리는 반응이고,  fight는 오히려 흥분해서 포식자를 공격해버리는 분노 분출형의 반응이다. 두 가지 방법 모두 경우에 따라 생존에 도움이 된다.


이기적 감정이라는 책은, 우리의 나쁜 감정들이 이렇듯, 사실은 필요에 의해 진화 되어온 생존 메커니즘이라고 주장한다. 이기적 감정은 당신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고, 당신의 생존 확률을 극대화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 사실 이 책의 원제는 'Bad Feelings for Good Reason' 인데, 나는 이 원제가 책의 의미를 훨씬 더 잘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기적 감정이라는 제목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따온 캐치프레이즈 인 것 같으나 (왜 그러려고 했는지, 이유는 충분히 이해한다), 원제보다 훌륭한 비유는 아닌 것 같다.




불안한 감정은 우리를 보호하는 메커니즘이다. 불안 장애는 생존 메커니즘의 과잉 반응이다.

저자는 불안장애나, 공포증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경우,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서 울리는 경보 시스템이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이런 질병을 앓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뱀이나 거미 등 작은 동물에 대한 공포증은 동물에게 해를 입을 가능성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커니즘이 과잉반응 하는 현상이다.

고소 공포증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다칠 가능성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커니즘이 과잉반응 하는 현상이다.

광장공포증은 탁 트인 공간에서 포식자 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격받을 가능성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커니즘이 과잉반응 하는 현상이다.

사회불안장애는 특히 인간의 생존에 있어서 중요한 사회적 지위를 상실할 가능성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커니즘이 과잉반응 하는 현상이다.

건강염려증은 질병으로부터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메커니즘이 과잉반응 하는 현상이다.

위의 상황들은 모두 실제로 생존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상황들에 대한 과도한 반응이다. 꽃이나, 나무, 나비 등에 대한 공포증을 가진 환자는 없다.


대체로 과잉 보호 반응을 통해 위험을 확실하게 회피하는 편이, 둔한 경보 시스템 때문에 벌레에 물리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것보다는 낫다. 위험이 있든 없든 간에, 위험 회피 반응이라는 적은 비용을 치름으로서 더 큰 피해로부터 확실하게 보호 받는 셈이다.




불안 과소증

불안 과잉과 마찬가지로 불안 과소증도 있다. 저자가 보기에 불안 과소증이야말로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질환이지만, 본인은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에 정신과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고 한다.

우리는 대게 이들을 응급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위험할 정도의 속력으로 주행하다가 사고가 난 오토바이 운전자, 겁 없이 높은 곳에 올라가 멋진 사진을 찍으려다 추락한 인플루언서, 나이트 클럽에서 약물이나 알코올을 과량 복용하여 음독으로 입원한 젊은 남성 등이다.

모터사이클 선수가 경주 도중 사망한 친구를 목격한 이후 불안 증세를 느끼고 저자에게 찾아왔었다고 했다. 그 사건 이후, 위험천만한 경주 중에도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최고 속력을 낼 수 있었던 이 선수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불안함을 느끼지 않고 예전처럼 질주할 수 있도록 약물 처방을 해달라는 환자에게 그는, "당신의 불안이 당신을 보호해주고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불안 장애이지만 괜찮아.

불안장애를 앓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이 나약하거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불안장애를 앓는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의 환자들에게, "불안은 유용한 반응인데 종종 지나치게 커진다 (p.172)"고 설명하며, 불안이라는 감정이 자연스럽고 사실은 생존에 꼭 필요한 유용한 메커니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고 한다. 그러자 환자들은 자신감을 더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불안감과 두려움의 감정으로, 스스로를 자책하는 이들이여

너무 자책하지말고, 남들보다 뛰어난 위험감지센서를 타고났다고 한번쯤은 스스로 다독여주자!




재미있는 사실! 남자의 조루, 진화에 유리하다.

저자는 남성들이 대게 조기사정증(조루) 앓고, 여성들대게 불감증을 앓는 이유도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있다고 주장한다. 남성에게 있어서 빠르게 사정하는 것이 적어도 진화론적으로는 이득이라는 것이다. 빠르게 사정해야만, 성행위가 중단되기 전에, 자신의 유전자를 확실하게 전달할  있다 (이런 정말 이기적인 유전자 같으니라고!). 반면 여성의 경우, 너무 빨리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경우, 아직 사정하지 않은 남성에게 성행위를 중단시킬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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