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람 Nov 14. 2019

#33 선생님은 왜 뒤늦게 눈물이 고였을까.

전편: #32 나의 쓸모를 나의 존재를 위해.

https://brunch.co.kr/@simon1025/69



그날은 오랜만에 동학년 회식을 하는 날이었다. 사실대로 이야기하자면 우리 동학년 사이는 그렇게 끈끈하지는 않다. 때문에 그날의 회식은 누군가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도 아니었고, 누군가를 위로하려고 만든 자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일 년에 몇 번 모여야 한다고 여겨지는 날 즈음에 모인 회식이었다. 그렇다 보니 회식에서 주고받는 말들은 그저 건조한 안부 몇 마디와 시시콜콜한 학교 이슈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생각해보면 나의 힘겨움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눌 공동체가 없었다는 것도 잿빛 같았던 날들에 큰 한몫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로 싸운 것도 아니었고, 성향이 다른 것도 아니었다. 여자 선생님들이었고, 후배들이었기에 나의 치부에 대해 말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학기 초에 그렇게나 잘난 척을 해댔었다. 이제 와서 힘들다고 말하기에는 더더욱 체면이 서지 않았다. 나의 힘겨움에 대해 눈치채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와 같은 텔레파시는 초코파이 광고 속에서만 통하는 기적이었다.


어쨌든 회식은 조금 지루했다. 2차를 갈 것인가 고민했다. 하필 그날따라 닭발이 당겼다. 닭발을 뜯기 위해서는 2차를 가야만 했다. 그래서 2차를 갔다.


닭발은 맛있었다. 1차에 삼겹살에 소주를 먹은 터라 배가 꽤나 불렀을 텐데도 닭발은 목구멍을 비집고 들어갔다. 닭발이 조금은 매우니 물 대신 술로 매운 입을 중화시켰다. 닭발을 꽤나 먹었으니 그에 따라 술도 꽤나 들어갔다. 알코올로 인해 정신은 흐려지고 있었지만 흥이 차오르는 술자리는 아니었기에 졸음이 몰려왔다. 슬슬 자리를 파하려고 꼼지락꼼지락 거리고 있는데, 후배 선생님이 상담에 대해 물었다. 전에도 상담 공부에 대해 꽤나 관심을 표하던 선생님이었다. 나름 상담 공부를 함에 있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배웠다고 말하기엔 강의시간에 핸드폰을 너무 많이 해 말해줄 게 없었다. 그러나 환상은 지어내는 법이었다.


“사람이 잘 보여”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언뜻 들으면 상담 공부를 하면 무당이 될 수 있다는 소리로 들리기도 하겠다. 다만, 그때는 술에 조금은 취해있을 때였다. 알코올은 헛소리에 윤활유를 발라주었다.


“약간 그 사람을 보면 무의식이 보인 다랄까?”


물론 상담에 있어 정신분석과 같은 기법을 통해 무의식을 끄집어내 볼 수는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자유 연상’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기법을 사용하려면 긴 의자에 편안히 누워 최면과 비슷한 몽롱함에 내담자를 인도해야 한다. 즉, 내가 동학년 선생님들의 무의식을 바라봤다는 것은 완전히 헛소리였다.


“우와 진짜 신기하다. 그럼 우리 학년 선생님들 무의식은 어때요?”


아뿔싸. 어찌 됐든 뭔가 그럴듯한 이야기를 끄집어내긴 해야 했다. 다행히 주변 선생님들을 나름 관찰했었다. 한두 줄 정도는 이야기해줄 거리가 있었다.


“음. 선생님은 속으로는 잘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한데, 겉으로는 그냥 한 번 그냥 해보는 거라고 약간 쑥스러워하는 것 같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근데 그 후배 선생님은 화들짝 놀랐다. 못 볼 거라도 본 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틀어막았다.


“와 소름 끼쳐요”


얼떨결에 맞춰버렸다. 내가 실제로도 사람을 좀 잘 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들이 전부 한 명씩 자기도 봐달라고 했다. 살짝 흥이 올랐다. 무당집 신녀가 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약간 평가받는 걸 엄청 싫어하는 것 같아. 잘한다고 칭찬받는 것도 어색해하고 못한다고 지적하는 것은 더 못 견뎌야 하는 것 같아”


또 맞췄다. 사실 흥을 깨지 않으려고 그 선생님이 동조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미 나는 사람을 꿰뚫어 보는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 돼있었다. 다음 차례의 선생님은 실제로도 해줄 이야기가 있었다. 평소에 품고 있었던 생각이었는데, 오지랖처럼 보일까 봐 꺼내놓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사실 힘들어하는 것 같아. 선생님이 생각하는 선생님의 이상향이 있는데, 거기에 스스로를 너무 끼워 맞추려고 하는 것 같아. 그래서 힘든 데도 그냥 계속 참는 것 같아. 지나가다 보면 퇴근도 항상 늦게 하고, 쉬는 시간에도 맨날 일기 검사하거나 시험지 채점 매 주고 있더라고”


그 후배 선생님이 잠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입술을 물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다. 그렇게나 그 선생님의 마음을 콕 찍을 거라곤 생각 못했다. 술이 조금은 들어가 더 쉽게 감수성에 휘둘릴 수 있었다. 그 후배 선생님은 꽤나 울었다. 사실은 힘들었고, 불안했다고 고백했다. 안타까웠다. 아직 나도 완전히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조금은 도움이 되어주고 싶었다.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조금은 진지하게 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어떻게 힘들었으며, 지금 현재 어떻게 이겨내고 괜찮아지고 있는지 차분히 이야기했다. 충고나 조언보다는 그냥 내 이야기를 했다.


술자리는 잠시 숙연해졌다. 사실 모두들 마음속에 그런 힘겨움 한 덩어리쯤은 품고 있던 터였다. 같은 힘겨움을 공유하기에 더욱 서로를 안쓰러워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위로의 말을 건넸다. 교사가 되기 전에는 교사의 삶이 이렇게나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힘들었던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힘겨움에 대해서도 위로받는 듯했다. 누군가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상처는 꽤나 아물었다.


다음날, 그 후배 선생님은 연구실에 조금은 더 밝은 얼굴로 등장했다. 이제는 쉬는 시간에 일기검사도 안 하고, 채점도 하지 않고 그냥 쉴 거라며 밝게 웃었다. 모두가 따라 웃었다. 왠지 모르게 뿌듯함을 느꼈다. 더불어 닭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닭발 덕분에 2차도 갔고, 황당한 신 내림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선생님의 힘겨움도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정말 힘들 때 누군가에게 손 내밀지 못했다.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를 쉽게 못했다. 그런데 힘겨움을 나눈다는 게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힘겨움의 무게는 나눌수록 가벼워졌다. 그리고 나와 함께 힘겨움을 나누려는 이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기쁨을 나눈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슬픔을 다 같이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을수록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더욱 따듯해질 거라 믿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라도 옆에 매달고 다니려고 한다.


“혹시 힘든 일 있어?”

이전 15화 #32 나의 쓸모를 나의 존재를 위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