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2
“엄마, 눈이 가로로 와요!” 아이의 말에 창밖을 보았다. 정말 눈이 바람에 휘날리며 가로로 흩날리고 있었다. 바람 소리와 함께 몰아치는 눈발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을 열고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아이가 아침을 준비하려고 냉장고를 열더니 가지를 보고는 ‘가지 라자냐’를 만들겠다고 했다. 야채로 만드는 요리는 뭐든 좋다고 했다. 아이가 요리를 하는 동안, 나는 밖으로 나가보았다. 집집마다 마당 앞에 파란색 분리수거함이 나와 있었다. 오늘이 분리수거 날인가 보다.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 병과 플라스틱이 담긴 통, 일반쓰레기, 그리고 종이를 정리해 내놓았다.
다행히 늦지 않게 내놓았지만, 날씨가 추워서인지 오전이 한참 지나도록 수거차가 오지 않았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분리수거함이 날아갈까 걱정돼 자꾸 창밖을 내다보았다. 잠시 후, 차 소리가 들렸고, 커다란 수거차가 와서 일반쓰레기만 가져갔다. 아, 종류별로 다른 차량이 와서 수거하는구나! 게다가 음식물을 따로 버리는 곳이 없어 일반쓰레기와 함께 배출해야 하는 점이 영 익숙지 않았다.
덩그러니 남은 플라스틱 수거용 박스와 종이 박스도 곧 수거해 가겠지!
아침을 먹고 내가 자청해서 눈을 치웠다. 눈을 치운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재미 삼아해보고 싶었다. 아이는 춥다며 말렸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세종에 눈이 오면 이른 아침부터 제설차량이 다니는 소리가 들렸고, 밖에 나가보면 이미 도로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직접 눈을 치울 일이 없었다. 문득 이번 설 연휴에 눈이 많이 왔다던데,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모두가 무사히 이동했기를 바라본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간간이 눈이 내렸지만, 따뜻하게 챙겨 입고 외출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상쾌한 공기였다. 집 뒤에 있는 메도우랜드 파크에 가서 걷고 올 생각이었다. 퇴근 시간이 다가와서인지 도로에는 차량이 많았고,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강아지들이 하나같이 무척 컸다. 덩치가 커서 마주칠 때마다 움찔할 정도였다.
공원을 크게 한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체통이 보였다. 이곳에 도착한 첫날, 준 님이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가져오겠다며 나섰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야 비로소 집집마다 우편물이 직접 배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길가에 놓인 작은 우체통들이 아담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빨간 우체통이 떠올라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을을 지나는데, 어떤 집의 현관 앞에 ‘환영’이라는 커다란 장식물이 세워져 있었다. 집주인이 사람을 좋아하는 따뜻한 성격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어떤 집은 현관문에 꽃으로 만든 리스를 걸어두었고, 어떤 곳은 입구에 눈사람을 세워 두었다. 집마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오늘 저녁은 내가 준비해야 하는데, 왠지 요리하기가 귀찮았다. 아이에게 하루만 바꿔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허락했다. 메뉴는 요리하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 원칙이니, 기대하며 기다렸다. 아이가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요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저녁은 냉장고에 남은 야채를 넣어 만든 오일 파스타였다. 아침에는 가지 라자냐, 저녁에는 파스타라니, 오늘 하루는 양식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이와 함께 가볍게 맥주 한 잔을 곁들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 집집마다 내놓은 분리수거함
- 도로에 있는 마을 우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