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도 함께, 떨어져 있어도 연결된 우리

D-17

by 리베르테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중, 이른 시간에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평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여기며 자주 통화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따라 웬일일까?


결혼 후 처음으로 3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내가 캐나다에서 3개월을 보내겠다고 했을 때, 남편은 늘 그렇듯 "잘 다녀와요"라고 말했다. 그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해외여행에도 큰 흥미가 없는 사람이다. 떠나기 전, 나는 혹시라도 남편이 혼자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는 "걱정 마요, 잘 지낼게요"라며 웃었다. 그런데 막상 출국하는 날, 나를 배웅하던 그의 표정이 유독 어색했던 게 기억난다. 그 미묘한 표정을 떠올리니 갑자기 마음이 찡했다.


"혼자 있어 심심하지 않아요?"라고 물었더니, "조금 심심하지만 괜찮아요. 요즘 이웃들과도 자주 만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남편이 나 없이 이웃사람들과 어울린다니 조금 놀라웠다. 그는 혼자서 잘 지내는 사람이었다. 운동도 주로 홀로 하는 수영, 사이클, 마라톤, 등산, 서킷 트레이닝 같은 운동을 좋아하는데, 그런 그가 오히려 더 활발하게 생활하고 있다니 안심이 되면서도 왠지 모르게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내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 걸까?


통화를 마친 후 산책을 나섰다.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비 속에서 하늘과 눈 쌓인 땅이 맞닿은 경계가 희미했다. 공기가 촉촉하게 스며들어 기분이 묘했다. 익숙한 근처 산책길을 걸으며 문득 떠올렸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산책하는 기분이 이토록 묘할 줄이야.


오늘은 아이가 아침 준비에 늦장을 부렸다. 이곳에 와서 외식하는 날이 거의 없었는데, 마침 아이가 "엄마, 근처에서 브런치 한 번 먹는 게 어때요?"라고 물었다.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지만, 아이가 덧붙인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오늘 날씨가 참 이상해요. 꼭 집에서 하루 종일 쉬어야 할 것 같아요. “


아이도 바깥으로 나갈 마음이 없는 듯했다. 나 역시 해야 할 일도 있고, 아침 산책을 했으니 오후는 집에 머물기로 했다.


오늘의 할 일은 미뤄둔 글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좋은 생각' 잡지의 생활문예대상에 응모했다. 물론 결과는 항상 '미채택'이었다. ‘응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잡지 한 권을 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나는 늘 도전했다. 이번에도 큰 기대 없이 써놓은 글을 다듬어 마침내 응모 버튼을 눌렀다. 순간, 속이 후련해졌다. 결과가 어찌 되든, 나는 내가 '쓰는 사람'임을 계속 증명하고 싶었다.


하루 종일 나는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쓰고, 아이는 곡을 만들고 있다. 각자 다른 작업을 하고 있지만, 같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우리는 그 과정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늘 생각만 거듭하다 미루는 편이고, 아이는 뭐든지 생각하면 즉시 하는 편이다. "생각하면 그냥, 바로 하면 되는데, 엄마는 왜 이렇게 고민이 많아요. 엄마가 은연중에 생각이 많으신 분이었네요"라는 아이의 말에 뜨끔했다. 정말 나는 무엇이 두려운 걸까? 잘하지 못할까 봐, 실패할까 봐 주저하는 것일까? 아이의 말에 반박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니까.


어느덧 어둠이 내렸다. 아이는 2층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오늘은 저녁을 각자 해결하기로 했다. 아이는 연어 덮밥을 만들 테고, 나는 계란 프라이를 올린 밥을 김에 싸 먹을 것이다. 일상이 단순해지니 먹는 것도 단순해졌다.


오늘은 단순함의 미학을 온전히 누려보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고, 그저 흐르는 대로. 때로는 이런 하루도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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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과 땅이 똑같이 하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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