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9
오늘 아침, 창문을 열자마자 맑고 푸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파란 하늘이었다. 기분 좋은 공기에 서둘러 공원으로 나갔다. 아침 등굣길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고,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공원을 가득 채웠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덕분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걷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렸다. 매일 조금씩 걷는 거리를 늘리다 보니 한국에서 운동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땅이 녹고 날이 풀리면 다시 달리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작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느리게 천천히 걷는 그들의 모습에서 평온한 여유가 느껴졌다.
매일 마주치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다. 허리춤에 강아지 줄을 묶고 어찌나 빠르게 걸으시는지, 눈이 마주치면 인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럴 틈이 없다. 하지만 언젠가 인사를 나누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처음 만난 아주머니가 먼저 "굿모닝!" 인사해 주셨다. 나도 웃으며 "굿모닝!" 하고 답례했다.
산책을 마친 후, 가벼운 아침 식사로 여유를 만끽했다. 점점 아침 식사가 간단해지고 있다. 빵 두 조각, 달걀 프라이 두 개, 그리고 로메인 샐러드. 단순하고 간단하게 먹으니 몸도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아침 식사 후, 아들과 함께 특별한 미션을 수행하기로 했다. 한국 꽈배기를 판매하는 빵집을 가기로 한 것이다. ‘우리나라 꽈배기’라는 단어만으로도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걸어서 약 40분 거리였지만, 오랜만에 산책 삼아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는 길을 따라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따스할 줄 알았던 날씨는 생각보다 매서웠고, 바람이 옷 속까지 스며들었다. 하지만 처음 가보는 길이어서인지 주위를 둘러보는 재미가 있었다. 비슷비슷한 집들이 이어졌지만, 산책로가 보였고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큰 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자연 풍경이 곳곳에서 펼쳐지니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어깨에 배낭을 메고 걸으며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아들이 어렸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주로 나누었을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겠지. 그런 생각이 드니 사소하고 별일 없는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별다른 사건 없이 흘러가는 순간들이 쌓여 결국 우리의 삶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40분쯤 걸어 드디어 목적지인 ‘Sweet Paradise’에 도착했다. 빵집 안으로 들어서니 고소한 빵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빵과 치즈, 햄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한국식 꽈배기는 이미 다 팔리고 없었다. 순간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대신 매장을 천천히 둘러보며 식사빵과 칠면조 파이, 호박 파이를 샀다. 40분을 걸어온 것에 비해 소박한 장보기였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돌아오는 길, 멀리 나무 사이에서 익숙하면서도 신기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캐나다 사슴 한 마리가 숲 속에 서 있었다. 여우와 토끼를 본 적은 있지만, 사슴을 직접 마주한 것은 처음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사슴은 소만큼이나 컸다. 하지만 우리를 경계하지도 않고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오히려 우리가 더 긴장했다. 한동안 사슴을 바라보며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한 교감의 순간이었다. 잠시 후, 사슴은 천천히 숲 속으로 사라졌고, 우리도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침 아이들 하교 시간과 맞물렸다. 주택가를 지나는데 유난히 노란 스쿨버스가 많이 보였다. 캐나다에서는 스쿨버스가 정차하면 아이들의 승하차가 완료될 때까지 모든 차량이 정지해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반대편 차선의 차량들도 반드시 멈춰야 한다. 실제로 보니 신호등이 없는 곳에서도 모든 차선의 차량이 멈춰 있었다. 안전이 자연스럽게 습관이 된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조금 더 길을 걷자 사이렌 소리가 들리며 소방차가 달려왔다. 그러자 모든 차량이 길가 옆으로 차를 대고 정차했다. 구급차가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사이렌이 울리면 모든 신호등이 무효가 된다고 한다. 오직 긴급차량의 통행을 위해 모든 것이 멈추는 것이다. 어린이와 응급 상황에 놓인 사람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는 사회의 모습을 직접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자연 속에서 사슴을 만난 경험, 한국 꽈배기를 찾아간 발걸음, 이곳의 차량 문화, 그리고 아들과 나눈 대화까지. 오늘 하루의 모든 순간이 특별했다. 이 따뜻한 기억이 오래도록 남길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별일 없는 하루였지만, 이런 날들이 쌓여 결국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