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해도 괜찮아

D-24

by 리베르테

이른 아침, 전화벨이 울렸다. 둘째의 전화였다. 시계를 보니 한국 시간으로 밤 11시. 오늘이 시험 발표 날이라 기다리고 있었지만, 연락이 없어 내심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전화하지는 않았다. 어떤 결과든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본인이며, 기쁨도 슬픔도 결국 혼자 온전히 느껴야 하는 감정이기에 조용히 기다렸다.


"실망을 드려 죄송해요." 아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열심히 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시험 결과뿐인데, 기대했던 성과를 이루지 못해 면목이 없다고 했다. 지금 아이의 마음만큼 속상하고 슬픈 사람이 있을까? 아이가 얼마나 외롭고 고독할까? 그런 생각이 드니 가슴이 아팠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는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로만 괜찮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에서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는지를 보여주며 아이가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길은 여러 갈래로 놓여 있어. 지금 보이는 그 길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단다. 하지만 지금은 그 하나의 길만 보이니까 다른 것이 안 보일 수도 있겠지. 이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괜찮아, 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 “


"엄마는 실패한 적이 없었잖아요. “


세상에! 내가 실패한 적이 없다니. 더군다나 이렇게 평범한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완벽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는 나를, 우리를 완벽한 존재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말해주었다. 나 역시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고, 그 과정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학창 시절, 수학 시험에서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 실망했던 기억, 직장에서 중요한 일을 실수로 망쳐 한동안 의기소침했던 경험, 목표했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좌절했던 순간. 나 역시 수많은 실패를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으며 그것이 끝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오히려 실패는 새로운 기회와 배움의 강한 동기가 되었고. 실패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임을 아이가 깨닫고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년 1월, 나는 내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그 감정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하자 견딜 수 없었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고, 매일 울면서 출퇴근을 했었다. 하지만 그 좌절 앞에서 그대로 무너지고 싶지도 않았다. 실패를 성장의 기회로 삼기로 결심했고, 새로운 환경에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어 오현호 작가가 진행하는 행동력 수업 '굳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이전까지의 나를 버리고 다시 도전하는 나, 나이와 상관없이 초월해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작은 것부터 실행하는 나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성장하며, 내 인생 후반을 준비하는 내 모습을 아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어. 세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는 기념으로. 우리 스무 살 승기도 엄마와 함께 도전하며 새롭게 세상 속으로 나아가 보자. “


그렇게 나는 나의 목표를, 아이는 아이의 목표를 세우며 서로를 응원했다.


변화는 쉽지 않았다. 이전과 다른 내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저항을 견뎌내야 했다. 안주하고 편안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과 싸워야 했다. 달리기를 할 때도, 글쓰기를 할 때도 '굳이 왜, 그냥 편안하게 살면 되잖아'라는 목소리와 맞서야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새 익숙해졌고, 익숙해지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습관이 되면서 조금이라도 변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렇게 내가 변화하듯 아이도 도전하고 성장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 법을 배우길 바랐다.


우리 사회는 성공만을 강조하고 축하한다. 하지만 왜 실패는 축하받지 못할까? 나는 실패 또한 가치 있는 경험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가족 안에서 실패를 축하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이런 말이 황당하게 들릴 수도, 아이에게는 당장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실패에 도달한 그만큼, 노력한 그만큼 성공한 것이라고 축하해 주고 싶다. 위축되기보다는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고, 애쓰고 노력한 자체로 충분히 멋졌어"라고 말해 주며 아이의 노력을 인정하고 격려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씩씩하게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든든한 다리가 되어주고 싶다.


돌아가면 아이만을 위한 시간을 마련해야겠다. "정말 많이 애썼어. 이번 실패에서 배운 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이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실패를 좌절로 끝내지 않고,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를 바라며.


나도 실패가 두렵다. 지금도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줄까 봐, 비난받을까 봐, 실패가 내 인생을 잠식시킬까 봐 두렵다. 아이 역시 그런 마음일 것이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 준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노력했는데도 이루지 못한 능력에 대한 낙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일 것이다. 그 마음을 감히 다 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지만, 세상을 먼저 산 어른으로서 나는 안다. 지금의 실패가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패가 실패로만 남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아이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기를 바란다. 새로운 도전 속에서 작은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면서, 실패가 끝이 아니라 과정임을 체득하고, '실패쯤이야!' 하는 담대함으로 세상을 겁 없이 마주하길 바란다. 진심으로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 내가 아이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것은, 존재 자체로 사랑한다고,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떤 상황에 놓이건 포기하지 마. 너는 할 수 있어. 지금 그 길을 가는 여정에 있고, 결국 그곳에 도달해 있는 너를 만나게 될 거야. 너는 해내는 사람임을 스스로 믿기를 바라. “ 이 말을 다시 한번 힘주어 전하고 싶다.


오늘 아침 울린 전화벨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큰아이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대화 속에는 나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렇게 내 삶의 경험을 아이에게 담담하게 들려준 것은 처음이었다. 아들을 넘어, 한 사람으로서 삶의 무게와 선택, 그리고 태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세월의 흐름이 실감 났다. 아침 운동을 함께 시작하는 것부터 종일 아이와 단둘이 지내면서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쌓아가는 이 시간은, 서로의 기억을 차곡차곡 모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아이는 이미 벌어진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후회보다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집중하는 쿨한 면모가 있었다. 닮고 싶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오늘, 오히려 내가 아이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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