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세상이다
아침부터 분주했다. 어제부터 불려둔 취나물을 삶고, 국간장과 마늘, 들기름을 넣어 정성껏 무쳤다. 오늘 한인 교인 모임에 가져갈 비빔밥 재료였다. 집안 가득 퍼지는 취나물 향이 고소하고도 정겨웠다.
이곳에 온 이후 요리다운 요리를 할 일이 많지 않았다.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게 익숙해졌지만, 가끔은 묵은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처럼 한국에서 흔하게 먹던 음식이 생각날 때가 있다. 한국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맛볼 수 있는 것들이지만, 해외에서는 한 끼의 한식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오늘 모임에서는 각자가 비빔밥 재료를 하나씩 준비해 함께 나누기로 했다. 나는 취나물을 하겠다고 했다. 고추장에 비벼지면 맛이 티가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늘따라 더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싶었다. 말린 취나물을 물에 불려 삶고, 깨끗한 물에 여러 번 헹군 뒤 간을 맞췄다. 간이 맞는지 아이에게 맛을 봐달라고 했다. 오랜만에 나물 반찬을 본 아이는 맛있다며 밥 비벼먹고 싶다고 고추장을 찾았다.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을 양을 준비하느라 손이 꽤 바빴지만, 정성껏 무친 취나물은 먹음직스러웠다. 이곳에서 처음 참석하는 모임이라 그런지 작은 설렘도 함께였다.
차가 없는 나를 위해 모임 시간보다 일찍 데리러 와 주셨다.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해 함께 준비하고 싶었다. 도착해 보니 콩나물과 시금치 나물이 한데 모여 있었고, 다른 나물들도 손질하는 중이었다. 나는 무나물을 만들고, 쌀을 씻어 밥을 하고, 간식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사람들이 하나둘 도착하며 각자의 재료를 내놓았다. 색색의 나물, 고기, 달걀, 고추장이 한데 모이자 금세 푸짐한 한상이 차려졌다.
한국에서는 흔한 음식이지만, 오늘 우리가 만든 비빔밥은 유난히 특별했다. 각자의 정성이 모여 하나의 맛을 이루는 것이 마치 우리 삶과도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듯이 말이다.
우리는 둥글게 둘러앉아 짧은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따뜻한 마음이 함께해서인지, 오늘의 비빔밥은 유독 더 맛있었다. 고소한 참기름 향, 아삭한 나물, 매콤한 고추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입안 가득 한국의 맛을 선물했다. 한 숟가락 뜰 때마다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했던 식사 시간이 떠올랐다.
음식을 나누며 자연스럽게 대화도 깊어졌다. 누군가는 캐나다에서의 적응기를 이야기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한국에서의 추억을 꺼냈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나누며, 같은 고향을 가진 이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정을 확인했다.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디서든 사는 모습은 비슷하다고 느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해가 저물자 자리를 정리했다. 오늘의 비빔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를 연결하는 끈이었고, 이국땅에서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음을 확인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오늘의 따뜻한 한 끼를 떠올리며 다시 힘을 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