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와 아이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창밖으로 눈 덮인 산과 호수가 펼쳐졌다.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새하얀 눈으로 덮인 산은 겨울왕국을 떠올리게 했고, 호수는 꽁꽁 얼어 그 위로 소복이 쌓인 눈이 포근한 담요처럼 덮여 있었다. 그 주변엔 우뚝 솟은 자작나무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렇게 큰 나무는 얼마나 오랜 세월을 견디며 이 자리에 서 있었을까?’
나무의 굵은 줄기와 하늘을 향해 뻗은 가지를 보며 그 나이와 역사가 궁금해졌다. 마치 세월을 초월한 듯,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켜왔을 것 같았다. 봄이 오면 초록빛 새싹이 돋아나고,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사각이며 속삭이겠지. 문득, 봄날의 자작나무 숲을 거닐며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 소리를 듣고 싶어졌다.
마을에 도착하니 집집마다 넓은 마당에 커다란 나무들이 서 있었다. 저 많은 나무들 관리는 어떻게 할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이곳의 겨울은 적막하면서도 평온했다. 도로와 차고지 앞, 그리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에는 눈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한쪽에 치워진 눈이 높이 쌓여있었다. 하지만 연로한 어르신들은 ‘이 많은 눈을 다 치우려면 얼마나 힘드실까?’ 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어르신께 물었다.
“이 많은 눈을 어떻게 치우세요? 힘드실 것 같은데요.”
어르신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셨다.
“예전에는 직접 치웠지. 새벽이면 눈을 치우느라 한 시간씩 빗자루 들고 서 있곤 했어. 그때는 힘들다는 생각도 안 했지. 그게 다 일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미끄러지면 큰일 나니까, 눈을 치워주는 회사와 계약해서 눈을 치우고 있지. 눈이 조금 내린 날은 내가 직접 쓸기도 하고.”
눈을 치워주는 회사라니!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정확한 비용이나 계약 기간까지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내 집 앞에 쌓인 눈을 일정 시간 내에 치우지 않으면 벌금이 부과되는 곳도 있고, 차 위의 눈을 완전히 치우지 않고 도로를 주행해도 벌금이 있다고 했다. 모두 도로 위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하셨다.
문득, 눈 오는 날 아침마다 차 위의 눈을 대충 털어내고 출근했던 오래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단순히 귀찮아서 했던 행동이지만, 다른 운전자들에게 위험이 될 수도 있었겠구나. 작은 행동 하나가 교통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이가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다. 하루 못 봤을 뿐인데도 며칠 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아이와 함께 오늘 있었던 일들을 나누며 따뜻한 저녁을 먹었다. 그러다 아이가 문득 말했다.
“엄마, 어제 하려던 영상 만들기 수업 준비해야지요.”
순간 당황했다. 어제 계획했던 일이긴 했지만, 그냥 지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니 피할 수 없었다.
“알았어.”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이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프로그램을 열었지만, 나는 모든 게 어설펐다.
“여기 이 버튼을 누르면 영상이 잘려요.”
“어, 어... 아, 잠깐만. 내가 뭘 잘못 눌렀지? 영상이 다 사라졌어!”
아이는 웃으며 “엄마, 취소 버튼 누르면 돼요!”라고 말했다. 다행히 다시 복구할 수 있었지만,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마치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처럼 손가락이 굳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오래전부터 영상 제작을 해보고 싶었기에 어렵지만 재미있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첫 시도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드디어 내 채널을 개설했다. 나도 유튜버가 된 것이다.
아이는 내게 매일 하나씩 영상을 만들어 보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마음 한편으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기꺼이 해보기로 했다. 나처럼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인내심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도 아이는 내게 시간을 내어 주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 모습이 참 고마웠다.
문득, 오늘 마주한 자작나무가 떠올랐다.
이 겨울이 지나면 자작나무에도 새싹이 돋고, 호수의 얼음도 녹을 것이다. 그렇게 또 한 해를 살아갈 준비를 할 것이고, 나는 아이와 함께 매일 조금씩 성장할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며, 우리는 겨울 속에서도 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