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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 사라진 날

서머타임 시작

by 리베르테

오늘 한 시간이 사라졌다. 새벽 2시가 3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어제 아이와 함께 “해가 길어졌어.”라고 이야기했는데, 마침 오늘부터 서머타임이 시작되었다. 매년 3월 둘째 주 일요일에 시계를 한 시간 앞당겼다가 11월 첫째 주 일요일에 다시 원래대로 돌린다고 한다. 캐나다 전역에서 시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 해밀턴에서는 한 시간을 조정해야 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는 자동으로 시간이 바뀌었지만, 벽시계는 손으로 직접 조정해야 했다. 낮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지만, 순간적으로 사라진 한 시간이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저녁이 길어지면서 퇴근 이후 활동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좋을 것 같았다. 해가 길어졌다는 건 봄이 성큼 다가왔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오늘따라 거리에는 유난히 사람들이 많았다. 공원을 달리는 사람들,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는 사람들. 따뜻한 햇살과 잔잔한 바람 덕분에 마음에도 봄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산마늘을 캐러 갈 수 있을 텐데요. 냉이도 캐고, 쑥도 캐고요. 아, 달래는 또 얼마나 맛있는지요. “

오늘 나눈 이야기 중에는 봄이 오면 쑥과 냉이를 캐러 가고, 산마늘로 장아찌를 담근다는 말이 있었다. 이곳 캐나다에서도 봄나물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냉이와 쑥을 캐고 달래간장을 만들어 밥을 비벼 먹는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낯설던 이곳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디에 있든 우리는 음식과 기억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봄이면 집안 가득 쑥 향이 퍼지곤 했다. 쑥떡, 쑥 전, 쑥 된장국, 쑥버무리까지, 쑥을 활용한 음식들은 봄의 전령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달래를 송송 썰어 만든 달래간장은 밥 한 공기로는 어림도 없을 만큼 입맛을 돋우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갑자기 허기가 졌다.


오늘 만난 사람들은 모두 다음 달이면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아쉬워했다. 나 역시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깊이 들었음을 느꼈다. 이제 곧 꽃 피는 봄이 오면 나무에 초록 싹이 돋고, 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질 텐데,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니 아쉬웠다. “꼭 다시 오세요.”라는 말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네, 이곳에서 받은 환대가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아요. 꼭 다시 올게요."

진심을 담아 답했다.




아이는 이곳에 와서 수영할 수 없음을 아쉬워했다. 일주일 내내 새벽 수영을 하던 아이에게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다. 돌아가서 4월부터 시작하는 수영 강습 신청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꼭 신청을 마쳐야 한다며 긴장했다. 결국 선착순 모집에 성공했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일요일 저녁, 아이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올 더 머니(All the Money in the World, 2017)》를 골랐다. 가족 네 명이 모두 모이면 늘 함께 영화를 보곤 했는데, 오늘은 둘이서 조용히 영화를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비록 한 시간이 사라진 날이었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주는 행복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 속에서 둘만의 단단한 추억을 쌓았다. 캐나다의 봄, 그리고 아이와의 소중한 일상. 이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 작은 씨앗으로 남아,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을 때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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