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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가는 길, 나만의 속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by 리베르테

최근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기상 시간이 불규칙했다. 아이는 일부러 나를 깨우지 않고 아침 운동을 다녀왔다. 나는 느릿하게 아침을 시작했고, 그런 나를 보며 아이는 충분한 수면이 중요하다며 각자 아침 시간을 자유롭게 보내고, 오후 2시에 차와 간식을 함께하며 하루의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좋은 생각이었다.


아침 식사는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시간이기에 중요했다. 그래서 하루 한 번, 저녁 식사 전에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간식이라고 해봐야 감자칩과 커피 정도였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간식을 먹으며 아이가 만들고 있는 음악과 영상에 관해 묻고, 함께 영상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행동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왜 그런 주제가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 생각하고 노력하지만, 실행력이 부족한 사람, 행동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특별한 목표 없이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 우리는 이 네 가지 유형에 대해 이야기하며 각자가 어디에 속하는지 물었다. 아이는 자신이 첫 번째 유형이라고 했고, 나에게는 두 번째 유형에 가깝다고 했다. 목표는 있지만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함께 생활하면서 그렇게 느꼈다고 했다.


나는 약간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나름의 속도로 노력하고 있는데 그런 평가를 받으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억울함은 내 안의 감추고 싶은 속내를 들킨 것 같은 느낌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곳에서 아이는 내가 적당량의 운동을 했는지, 매일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지속하는지 틈틈이 물었다. 대부분 하고 있다고 답했지만, 아이의 눈에는 내가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듯 보였나 보다. 사실 오랫동안 하고 싶다고 말만 해온 일이 있었지만, 정작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 모습이 아이에게는 '행동하지 않는 사람'으로 비쳤던 것 같다.


느리게 움직이는 사람을 보면 빠른 사람들은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느림’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특성이라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느리다고 해서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시간이 반드시 더디지만도 않다. 다만, 주어진 시간 속에서 시작과 과정, 결과에 이르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나는 한때 나 자신을 성실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계획한 바를 차근차근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 곁에 있다 보면 나의 더딘 속도에 대해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오랫동안 한결같이 노력해 왔고, 꾸준함을 지켜왔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남과 비교할 때는 보이지 않던 내 모습이, 나를 기준으로 바라보니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 주고 싶어졌다. 엄격한 비교의 잣대가 아니라, 각자의 속도를 존중하는 시각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원하는 것 없이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을 향해 행동하며 이루어 가는 사람도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나에게 맞는 길인지, 그리고 그 길이 결국 나를 행복으로 이끄는가 하는 점이라고 했다.


오늘 우리는 기쁨과 슬픔, 질투 같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른쯤의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깊이를 가진 아이의 사고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경험이 필요했을까 싶었다. 아이는 사회생활을 하며 느끼고 배운 것을 정리한 끝에 나름의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했다. 성숙해진 아이의 모습이 무척이나 멋져 보였다.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기에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려면 익숙한 시선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의 투명한 시선이 부러웠다.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새롭게 보고 듣고 느끼려는 모습이 내게도 필요했다. 익숙함을 벗어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도 내 오래된 시선을 바꿔야겠다.


아이와 이야기를 마친 뒤, 배낭을 메고 우유와 바나나를 사러 나섰다. 내가 "이곳에서 배낭을 메고 장을 보던 시간이 나중에 많이 생각날 것 같아"라고 말하자, 아이는 웃으며 "엄마와 저만의 특별한 추억이 될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 가는 우리가 뿌듯했다.


저녁은 나간 김에 조각 피자와 감자튀김, 핫도그로 먹었다. 낯선 곳이지만, 이제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언젠가 다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이곳에서 느낀 온기를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특히, '느림은 게으름'이라는 오래된 시각을 벗어던지고, '느림은 나만의 속도'라는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물었다. "그래도 엄마는 느리지만 꾸준히 가는 사람이 맞지?" 아들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그게 엄마의 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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