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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 내 안으로 떠난 여행

절반의 여행

by 리베르테

어느덧 이곳에 온 지 절반의 시간이 지났다. 여행이 짧든 길든 시작과 끝이 있기 마련이고, 어느새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이 절반의 시간 동안, 나는 무던히도 편안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늘 떠나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유 모를 주저함에 가로막혀 결국 떠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여행은 떠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누군가의 이 말이 내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여행이 단순히 새로운 곳을 방문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를 바랐다. 내 안의 고요한 시간을 찾고, 나 자신과의 만남을 위한 길이 되기를 원했다.


3개월 동안 해외에서 보내기로 했을 때, 사람들은 "그 많은 시간 동안 뭘 할 거야?" "어디 어디 가볼 계획이야?"라며 여행 일정에 관해 물었다. 하지만 나는 '떠남'이 아닌 '멈춤'을 선택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대신, 나를 멈추게 하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싶었다.


나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에서 고립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너무 많은 생각과 움직임 속에 지쳐 있었고, 이제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했다.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정해진 일정에 맞춰 움직이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지나치는 풍경들.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처음 며칠은 어색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불안함,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점차 그 감정들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나는 굳이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지 않았고,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좋았다. 이렇게 편안하게 오래 머물다 보면 딱딱하게 굳어 갈라진 내 마음이 다시 말랑말랑하게 부드러워질 거라 믿었다.


아침에 가볍게 운동하고 차 한 잔을 마시는 것,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바람과 하늘을 바라보는 것, 저녁노을을 가만히 감상하는 것, 아이와 함께 요리하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 그런 시간이면 충분했다. 우리는 바쁜 일상에서 이런 단순한 순간들을 얼마나 놓치고 있었을까.


시간이 흐르며 나는 점점 더 많은 고요함을 느꼈고, 그 속에서 내 마음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항상 '더 많은 것'을 원했다면, 이제는 '더 적은 것'을 원하게 되었다. 더 많은 경험, 더 많은 성취, 더 많은 소유가 아닌, 더 깊은 이해, 더 깊은 관계, 더 깊은 만족을 바라게 되었다.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계속 멈추고 싶다.


이제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여행은 과연 내가 무엇을 찾기 위해 떠났던 것일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기 위한 여정이었다면, 그 과정에서 변화는 또 어땠을까? 아직 답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의 지금 이 시각이 내게 놓치고 있던 감정과 생각을 다시 바라볼 기회를 주었다는 것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이 말처럼, 고요함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고,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더라도, 내게는 질문을 던지는 과정 자체가 중요했다.


어쩌면 여행이란 새로운 장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향하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행을 통해 내가 더 나은 나로 변화할 기회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잊곤 한다. SNS에 올라오는 화려한 여행 사진들, 남들이 가본 곳을 따라가며 그들의 감정을 쫓아가기보다, 나만의 감정과 깨달음을 찾는 것. 그것이 진정한 여행이 아닐까.


여행을 떠나기 전과 떠난 후, 나는 조금 더 깊게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깊이 생각하고 알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귀한 선물이 되었고, 나는 내 안에서 찾아온 고요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멈춤'이 준 선물을 잊지 않으려 한다. 잠시 멈춰서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그것이 내가 이 여행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진정한 여행자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고, 마음만 변화시킨다고 한다. 이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변화는, 결국 내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앞으로도 나는 더 적게 소유하고, 더 많이 느끼며, 더 깊이 존재하는 삶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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