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속삭임
어디든 아이들의 방학은 신나고 즐거운 법이다. 마침내 아이들이 고대하던 3월의 봄방학이 시작되었다. 보통 3월 둘째 주에 찾아오는 봄방학. 그 덕분에 조용했던 공원은 저마다의 즐거움을 찾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생동감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많은 아이가 모여 활기차게 뛰노는 모습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그네를 타며 하늘을 나는 듯 즐거워하는 아이들,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며 까르르 웃는 아이들, 농구를 하거나 배드민턴을 치며 활기차게 뛰노는 아이들. 공원 한편에서 신나게 하키 연습을 하는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높이 퍼졌다.
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가 공원 전체를 환하게 밝히는 듯했다. 비록 일주일 남짓한 짧은 봄방학이지만, 가족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며 보내기에 충분한 듯 보였다.
웅크려 있던 겨울을 밀쳐내고 어느새 환한 기운이 성큼 다가오자, 나무들도 슬금슬금 깨어날 준비를 하는 듯하다. 햇볕이 따뜻하고 포근해지니 기분도 한결 밝아지고, 일상에도 작은 변화가 스며들었다. 창가에 서서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다 가까이에서 그 활기찬 모습을 보고 싶어 산책을 나섰다.
오늘 만난 아이들이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많았다. 아이들의 얼굴은 발그레하게 물들었고, 표정에는 해맑은 미소가 가득했다. 그 모습에서 땅의 힘찬 기운이 전해지는 듯했다. 아이들이 뿜어내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며, 나도 모르게 기분이 들떴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나무들은 봄을 맞아 새싹을 틔울 준비를 하는 듯했다. 아직 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연이 꿈틀거리는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바람에 실린 흙 내음과 부드러워진 공기의 향기가 미묘하게 달라졌고, 나는 그 변화를 온전히 느끼고 싶어 자꾸만 킁킁거렸다. 코끝이 간질간질해졌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지저귀는 새가 있다고 들었다(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맑은 울음소리는 겨울의 고요를 깨우는 봄의 신호라고 했다. 그런데 벌써 그 새가 날아와 봄을 예고했다고 한다.
따뜻해진 날씨 때문인지, 문득 토론토에 있는 산드라가 생각났다. 검은 생머리와 반짝이는 눈동자를 가진 산드라는 둘째 아이의 친구로, 애니메이션 뮬란의 주인공을 닮았다. 현재 토론토대학을 다니고 있으며, 호기심이 많고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아이다. 나는 산드라와 이야기 나눌 때마다 서로 주고받는 에너지가 참 좋다고 느낀다.
내가 캐나다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반갑게 만나자고 약속했지만, 예상치 못한 폭설과 추위로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드라에게서 연락이 왔다. 잘 도착했는지, 적응은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날이 따뜻해지면 만나자고 했다. 현재 아르바이트하는 카페의 주소도 함께 보내왔다.
둘째 아이의 친구들 중 몇몇은 마치 내 친구처럼 친근하게 지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산드라는 우리 가족과 오랜 인연을 맺어, 아이의 친구라기보다는 딸처럼 느껴진다. 산드라는 유난히 나를 잘 따랐고, 함께 책을 읽거나 뜨개질, 요리, 달리기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오래전, 집에 놀러 왔을 때 함께 요리하며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소박한 상차림에도 행복해하던 산드라의 모습이 어찌나 순수하고 사랑스러웠던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토론토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우리는 함께 차를 마시며 산드라의 대학 생활에 대한 꿈과 기대를 나누었다. 그 시간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전해질 때면 그 어떤 순간보다 충만한 기분이 든다. 문득, 산드라가 일하는 카페에 들러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제 날씨도 한층 따뜻해졌으니, 슬슬 움직일 때가 온 것 같다.
카페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지난 몇 개월 동안의 이야기, 산드라의 대학 생활과 새로운 친구들, 그리고 다양한 일상들을 나눌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렌다.
토론토에 있는 '토론토 식물원(Toronto Botanical Garden)'에 가보고 싶다. 이곳은 아름다운 조경과 다양한 식물로 유명하다고 한다. 특히 야생화, 진달래, 다년생 식물, 장미가 이쁘고, 바위 정원, 온실, 연못, 분수대, 산책로 등 여유를 즐기기 좋은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캐나다의 대자연도 좋지만, 이번에는 이곳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토론토 식물원은 연중무휴로 운영되므로, 3월 말에서 4월 초쯤 방문하면 다양한 꽃들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그곳에서 봄의 첫 번째 꽃들을 함께 감상한다면 더욱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다. 나무가 꽃을 피우기 전 설렘 속에서 기다리듯, 나 역시 산드라를 만날 생각에 기분 좋은 기대감이 밀려왔다.
봄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과 반가운 재회의 계절이다. 이번 봄, 산드라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많은 소중한 인연들과 따뜻한 시간을 나누며 뜻깊은 추억을 만들어갈 것이다. 겨울의 긴 침묵을 깨고 꽃이 피어나듯, 나도 봄의 기운 속으로 한 걸음 내디뎌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