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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러를 두른 봄

놓지 못하는 것들에 관하여

by 리베르테

꿈을 꾸었다.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동료가 등장했다. 꿈속에서 괜한 신경전이 오갔고, 불만이 쌓였다. 결국 뭔가를 따지려는 순간,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하지만 부당함을 따지지 못한 채 깨어난 것이 억울했다. 현실에서도, 꿈속에서도 이렇게 억울하다니. 꼭 해야 할 말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직장 생활을 끝낸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 이런 꿈을 꾸다니, 답답함에 한숨이 나왔다. 결국 헛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지금 여기까지 왔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과거는 점점 뒤로 묻혀간다. 그런데도 직장과 관련된 꿈을 꾸었다는 것은 내 기억 어딘가에 아직 그 잔상이 남아 있다는 뜻이겠지. 언젠가는 이 기억마저도 희미해질까. 그렇게 생각하며 아침을 맞이했다.


오늘 낮, 아이가 환기가 필요하다며 산책하러 가자고 했다.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어제처럼 하늘은 맑고 푸르렀고, 햇살은 따스했다. 거리의 사람들도 한결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겨울 내내 두꺼운 패딩을 걸쳤던 이들은 이제 가벼운 겉옷을 입었고, 아이들은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뛰어다녔다. 민소매 차림으로 가볍게 달리는 사람도 보였다. 이곳 사람들은 참 추위에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나도 오늘은 가벼운 옷을 입었다. 무거운 외투 대신 얇은 겉옷을 걸쳤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찬 바람이 느껴져 두툼한 겨울 머플러를 둘렀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만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나만큼이나 아직 겨울을 보내지 못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어쩌면 나는 계절이 아니라, 내 마음속 무언가를 쉽게 놓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스치자, 이 머플러가 단순한 추위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완전히 보내지 못한 겨울의 미련처럼 느껴졌다.


산책의 목적지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팀홀튼 카페였다. 그저 걸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러 가는 길이었지만, 따스한 햇볕과 상쾌한 바람을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집에서 마시는 커피와는 달리, 사람들이 북적이는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선사했다. 문을 열자마자 커피 향과 도넛 냄새가 달콤했고, 사람들의 활기찬 기운이 느껴졌다.

방학이라 그런지 카페와 연결된 웬디스는 삼삼오오 모인 학생들로 붐볐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 종이책을 넘기는 소리, 웃음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햄버거와 콜라를 먹으며 여러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모여 즐겁게 웃고 떠드는 모습도 보였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저 그 분위기만으로도 즐거움이 전해졌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점이 있었다. 팀홀튼 카페에는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꽤 많았는데, 반팔 차림인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아직 여름옷을 입기엔 이른 날씨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 모습이 따스한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다가오는 봄을 누구보다 반갑게 맞이하는 듯했다. 그에 비해, 머플러까지 둘러맨 내 모습이 문득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계절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처럼, 혹은 변화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오늘 아침, 오현호 작가님의 편지는 '긍정적인 댓글 남기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편지가 무척 반가웠다. 나는 댓글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작은아이의 성장 일기를 블로그에 남겼던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글쓰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아이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글을 남겼다.


그러던 어느 날, 댓글 하나가 달렸다. 내가 쓴 문장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이었는데, 그 글의 뉘앙스는 따뜻한 조언이라기보다는 비난처럼 느껴졌다. 마치 쌀쌀하고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 후로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를 검열하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그 지적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을 쓰기 전에 ‘이 문장이 맞는가?’부터 고민하게 되었고, 점점 글을 쓰는 횟수가 줄어들며 자신감을 잃었다. 결국 블로그에 남기던 성장 일기는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지금도 여전히 글 쓰는 두려움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 나는 그런 비판을 견딜 만큼 단단하거나 강하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모든 글이 완벽할 필요는 없으며, 완벽해야만 기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내 글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공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까.


꿈속의 미해결 된 감정이든, 계절이 바뀌었음에도 벗지 못하는 머플러든, 부정적인 댓글로 인한 상처든, 이 모든 것은 내가 아직 완전히 놓지 못한 것들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그리고 놓지 못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때로는 그것이 나를 보호하는 따뜻한 머플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사람을 살리는 말, 서로에게 기운을 주는 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항상 좋은 말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따뜻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꿈꾼다.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말들이, 비판이 아닌 조언이, 상처가 아닌 격려가 오갈 수 있으면 참 좋겠다.


나부터 실천해야겠다. 내가 읽은 글에 긍정적인 댓글 하나 남기기. 누군가의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 한마디 전하기. 그리고 때로는 계절이 바뀌었음을 인정하고 머플러를 풀어놓는 용기를 가져보기. 그것이 내가 봄을 맞이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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