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탓인지 안구건조증이 조금 더 심해졌단다. 일을 그만두고 컴퓨터를 덜 쓰게 되면서 나아지는가 싶더니,
가을 들면서는 책을 한 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읽는 것이 불가능해질 정도가 됐구나. 눈이 뻑뻑하고, 충혈이 되면서 머리까지 아프게 되는 제반 증상과는 별개로, 책을 오래 읽지 못한다는 것이 엄마에겐 더 불편하고 마음이 아픈 일이거든. 오후가 들면서 통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램프 삼아 읽는 문장들은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그런 즐거움을 자주 끊어가며 쌓아야 한다는 게 참~속상하기도 하네.
사람들에겐 자신이 가진 믿음이나 종교 외에도 신성시하는 그 무엇이 있잖아. 가령 네게 뮤지컬이 그런 의미이듯 엄마에게는 책, 그 자체보다 ‘책을 읽는 행위’가 그러하단다. 물론 엄마의 개인적인 취향이며 의식이지만, 읽고 싶은 책이 생기면 몇 끼니 정도는 가뿐히 거르거나, 외출 자체를 작파하고 며칠씩 은둔자 생활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단다. 마치 수도자의 수행을 연상케 하는 이러한 일련의 행위들은, 책을 읽으므로 얻게 되는 무한한 기쁨과 황홀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책을 읽고 있는 순간만큼은 세상에 오로지 나 홀로 존재한다는, 아니구나! 나의 존재 자체조차 망각하고 어딘가에 있을 한 점을 향해 달려가는 ‘무아지경’에 빠지는 걸 느끼니까 말이야. 그런데 이런 건강한 중독을 즐기는 것에 불편이 생기고 나니, 이만저만 슬픈 것이 아니구나. 대신 한 시간씩 끊어 읽다 보니 왠지 주관적인 읽기의 자세로부터 조금씩 객관적을 향해 무게추가 옮겨지는 거 같기도 해서, 일단은 이렇게 또 몇 달을 견뎌보려고 한단다.
네가 열한 살 무렵이었나? 책을 쌓아두고 읽기를 즐겨했던 엄마와 너의 모습을 보며 네가 “우리는 책 꾸러기!”라고 별명을 붙여주던 그 장면이 새록새록 떠오르네. 그래, 네 말대로 엄마는 세상 끝 날까지 영~원한 ‘책 꾸러기’로 살아갈 수 있게끔 눈 건강에도 신경을 써가면서 읽어야겠다. 더불어 너를 사로잡는 책들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그래서 다시 네가 책 꾸러기로 돌아왔으면... 하고 읽던 책의 마지막 장에 새겨 넣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