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피터 팬 증후군’을 앓아도 괜찮겠지?

편지, 딸에게

by 초린혜원

서재 창으로 내다보이는 나무들이 하나, 둘 씩 가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구나. 유난히 혹독했던 이번 여름의 기운이 과연 물러갈 수 있을까? 반문하고 반문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바람이라도 낫~게 부는 날엔 벌써 낙엽마저 뒹구는 광경을 보는 게 어렵지 않은 날들로 이어지고 있어서.. 어쩐지 더 스산하단다.


아! 벌써 단풍 물이 들었네.. 참 예쁘다.” 란 혼잣말에

어머 소녀 같으시네요!”라고 누군가 한 마디 툭 던지고 지나가더라.


‘소녀 같으시네요’.. 그래, 이 흔하디 흔한 찬사에 엄마는 왠지 가슴 한편 내내 잔잔히 고여 있던 우물물이 출렁이는 느낌을 받았단다. 헛된 희망일지는 몰라도 몸은 늙어가더라도, 마음만은 늘~ 열일곱 그 시절에 푸르게 머물러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겠지. 항상 냉혹하리만치 이성적일 때가 많은 엄마여서, 아니 그렇게 남들에게 비치고 인식되는 나여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소녀감성’ 이란 게 해석하기 나름이기는 하겠다만, 엄마에겐 적어도 사물을 바라보는 눈에 형형색색의 필터를 갖다 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시선으로 응시함을 의미한단다. 세월의 속도에 비례해 발맞춰 나아가야만 반드시 균형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만족은, 어쩌면 굉장히 무의미한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세상의 잣대대로 하더라도 철이 들기 전 아주 어린 소녀였을 때부터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던 엄마이기에, 그에 대한 반발로 더더욱 느리게, 혹은 아예 성장을 멈추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과도하게 누르는 이성의 힘을 이기고 오늘처럼 이렇게 한 번씩 묻어 두었던 ‘소녀감성’ 이 발현할 때면, 엄마는 은근히 기쁨의 춤사위라도 보이고 싶은 심정이란다. 부정적 의미로만이 아닌, 마음을 싱싱하게 재생해 줄 수 있는 이런 ‘피터 팬 증후군’이라면 가끔은 앓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네. ‘철없음’ 이 상대방을 괴롭힐 수준만 아니라면 더없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요즘 절실히 깨닫고 있는 중이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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