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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린혜원 Jul 11. 2022

칠순에도 찢어진 청바지, 이 오빠들 '좀' 멋지다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

지난 한 주 내내 신문기사를 읽으며 가장 기분이 좋았던 순간은 오랜 가뭄 끝에 병아리 눈물만큼 비가 내린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아니고, 이른 더위에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환한 웃음을 발견한 직후도 아니었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넘어 심장까지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순간, 그 순간은 바로 그룹 송골매의 두 남자 배철수와 구창모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찍힌 사진을 발견했을 때였다. 그리고 그 사진의 위쪽에는 그들의 공연 소식이  어두운 밤의 전광판 마냥 빛나고 있었다.


송골매는 사실상 해체된 거나 다름없이 오랜 세월을 보내왔다. 그런 그들이 다시 뭉쳐 공연을 한다니! 그것도 머리가 하얗게 세고, 세월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노년을 앞둔 몸으로 말이다. 1980년대를 한국적인 락으로 호령했고, 무엇보다 강한 팬덤을 지녔던 흔치 않은 그들이었기에 이것이 일회성이든, 기획된 이벤트이든 이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숱한 인터뷰 중 가장 눈에 띄는 한 대목에 그야말로 마음이 뭉클해졌다. 바로 배철수가 구창모를 언급한 부분이었다.


"이렇게 음악적 재능과 감수성이 살아 있는 사람이 사업을 하고 있으니 너무 아까운 겁니다."


지음이라고 했던가, 나의 소리를 들어주고 알아주는 단 한 사람 그 사람이 있어서 행복한 구창모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 마음이 전해져 뒤늦게라도 이렇게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믿음이 있었던 것일 테고. 물론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송골매마저도 빠르게 변화해가는 국내 음악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는 게 그간의 현실이긴 했다.


송골매의 음원 리메이크 프로젝트에 참여한 잔나비의 최정훈이 한국 록의 기반으로 송골매를 꼽고, 존경을 표한 부분에선 왠지 송곳 하나가 발바닥을 찌르는 느낌도 들었다. 음악은, 노래는, 사라지지 않고 영원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시대의 흐름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새로운 것들을 데려오기 때문에 밀려나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것이 비록 수많은 히트곡을 양산하고 팬들을 구름처럼 몰고 다녔던 송골매라 할지라도.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
어쩌다 마주친 그대 두 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
그대에게 할 말이 있는데
왜 이리 용기가 없을까
말을 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내 가슴만 두근두근
답답한 이내 마음
바람 속에 날려 보내리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다운 그녀가
내 마음을 빼앗아 버렸네
이슬처럼 영롱한
그대 고운 두 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네
그대에게 할 말이 있는데
왜 이리 용기가 없을까
말을 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내 가슴만 두근두근
바보 바보
나는 바보인가 봐
그대에게 할 말이 있는데
왜 이리 용기가 없을까
말을 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내 가슴만 두근두근
바보 바보
나는 바보인가 봐/ 송골매 , 어쩌다 마주친 그대 가사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가사를 한 줄씩 음미하다 보니 마치 도입부의 기타 연주가 시원한 빗줄기처럼  머리를 적시는 것 같다. 이 노래는 한국 록의 명곡들 중에서도 명곡으로 꼽히는데, 구창모 전성기의 맑고도 시원한 음색이 돋보이는 노래인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가 바로 도입부의 펑키한 기타 연주 때문일 것이다.


단 3초의 도입부만 들어도 어떤 노래인지 알 수 있다는 건, 곡을 만든 사람에게는 엄청난 축복일 텐데, 그 일을 구창모가 해낸 것이다. 그리고 직설적이고도 마음이 그대로 뿜어 나오며 대상을 적절하게 녹여낸 가사야말로 한국적 락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 자체였다. 아무튼.


이 노래는 1982년 송골매 2집 음반에 실려 있다. 당시 대학 그룹사운드들이 장악했던 가요제 출신으로 항공대학교의 '활주로'와 홍익대학교 '블랙테트라'의 만남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들은 앨범의 모든 곡을 자작곡으로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곡을 만드는데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대중이 원하는 음악이 어떤 것인지를 정확하게 간파했기에 그들의 음악은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굉장히 독보적으로 와닿는다. 그래서일까, 대학시절 처음 가본 디스코 텍에선 언제나 송골매의 음악들이 라이브로 연주되거나, 음반으로 플레이되어서 흥을 돋우곤 했다.


유일무이의 기타 도입부가 끝나고 '어쩌다 마주친 그대 모습에 내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란 첫 소절이 흘러나오면 청춘들은 플로어로 몰려나가 살짝 엇박자로 갈리는 리듬 속에서 한껏 몸을 흐느적거리곤 했었다. 신나기는 하지만 왠지 춤을 추기에는 조금 모자란 듯한 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의 우리는 이 곡에 맞춰 춤을 추면서, 가사에 나오는 숙맥 같은 누군가를 그야말로 우연히라도 만나고픈 마음으로 여기저기를 유심히 둘러보기도 했다. 어두운 그곳에서 그런 일이 일어날리는 거의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의 서슬이 퍼랬던 그 시절에도 자유로움의 상징인 청바지를 입고 무대에 오른 최초의 그룹이 아닐까 싶다. 당시의 엄격한 방송규정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답답한 복장을 하고 무대에 오르는 가수들이 많았는데, 록음악을 구가하는 그들에게 이런 딱딱함은 마치 음악을 포기하라는 말과도 같지 않았을까? 음악보다 더 자유로운 모습과 몸짓으로 무대를 하는 내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던 40년 전의 송골매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축복이다.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그리고 이번 공연을 통해 그 축복은 다시금 증폭될 수 있을 것이고.


여든을 바라보는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나,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공연 소식이  들려올 때면 눈이 반짝 떠진다. 이번 송골매의 공연 소식도 이에 비견될만하지 않을까. 칠순의 나이에 여전히 찢어진 청바지와 나름의 멋이 우러나는 리넨 재킷을 입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아낌없이 피력하는 이 오빠들 좀 멋지다, 그리고 그들이 있어 시대를 함께 흘러왔던 팬들은 참 행복하다. 왠지 이번 공연을 통해 답답하고 무력했던 우리들의 일상마저 아주 잠깐일지라도 반짝거리는 순간을 맞지 않을까 싶어서.


내가 꼽는 가장 멋있는 대중문화인이자 어른, 또한  한없이 자유롭고 열려있는 사람 배철수와 그 배철수가 아끼고 사랑하는 재능 있는 뮤지션이며 여전한 감수성으로 대중들을 감동시킬 가수 구창모의 이번 공연이 너무나 기대된다. 공연의 제목 '열망'처럼 그 시절 우리가 함께 추구했던 것들에 대한 회상과 추억 소환도 함께 이뤄지기를..... 지금 다시 듣고 있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의 신나는 리듬에 실어 소망해 본다


오마이뉴스에 연재중인 '음악방송 작가의 선곡표, 문득 이 노래 ' 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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