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된 '서른 즈음'-김광석 기일에

김광석을 듣고 읽는 밤 7/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by 초린혜원

1996년 1월 6일 그날


1996년 1월 6일,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손끝에서 미세한 떨림이 인다. 시간이 많이 지났고 이만하면 한 사람을 잃은 슬픔이 어느 정도는 옅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생각은 생각일 뿐 감정은 쉬 사그라들질 않고 자꾸만 기억의 부스러기들을 긁어모아 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앞에 툭 던져 놓고 간다.



스물 다섯 해전 1월 6일 점심 무렵이었을 거다. 막 태어난 지 백일도 채 안된 아이를 서툰 솜씨로 돌보느라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이가 선잠에서 깨어 칭얼거리기 시작해서 아마도 우유를 타러 잠시 뉘었던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중이었던 거 같다. 전화벨 소리가 가파르게 울렸다. 같은 전화벨 소리지만 이날의 벨소리가 유난했던 건, 거는 이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는 것이었음일까? 벨소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섞이더니 어느새 불안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있었다. 얼른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야.. 혜원아. 어떡해, 김광석이 죽었대"


"...."


친구였다. 나만큼 김광석을 좋아해서 콘서트도 함께 다니고 했던. 친구가 뭐라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하는데,

마치 진공의 방에 들어가 앉아 있는 것처럼 명확한 음절이 전달되는 게 아니라 계속 웅~하는 소리만 귓가에 맴도는 것처럼 들렸다.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이 울어대는 아이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나는 선잠을 자다가 꾸게 되는 악몽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뭐? 뭐라고 그랬어? 김광석이 죽었다고?"


우리의 대화는 거기까지 였다. 누구랄 것도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고,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울음은 어느새 대성통곡으로 바뀌어 있었으니까. 말을 잃어버린 울음을 울어본 적이 있는가? 억울하고 부정하고 싶은 상황에서 생각보다 몸과 마음이 먼저 반응해서 나오는 울음. 친구와 나는 그야말로 꺼이꺼이 울다가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수 없음에 서둘러 전화를 끊어버리고야 말았다.


'왜, 그가 도대체 왜? 그것도 스스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은 그날 종일토록 이어졌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이의 우유를 겨우 챙겨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 외에는 청소며 끼니를 이어가는 집안일은 물론이고, 세수조차 하지 못한 채로 퇴근해 오는 남편을 맞은 터였다.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집안을 휘~ 둘러보던 남편은 짐짓 망설인다 싶더니, 기어코 한 마디를 던지는 거였다.


"당신, 지금 김광석 죽었다고 이러는 거 맞지, 누가 보면 부모님이라도 돌아가신 줄 알겠다"


-이보시오. 그 입 그때 좀 다물었으면 참 좋았을 걸-



그와 함께 내 청춘은 영영 못 올 곳으로 돌아갔으니


1995년 9월 김광석의 마지막 대구 콘서트장에 전화를 한 바로 그 친구와 내가 있었다. 둘 다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아, 배가 잔뜩 부른 채로 김광석의 노래들을 듣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어가면서도 한껏 그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변해가네'가 좋네, 아니다. '거리에서'가 더 좋네. 의미 없는 다툼을 해 가면서 말이다.


워낙 김광석의 노래들을 좋아하는 나는 그의 노래들을 들으며 태교를 했다. 태교음악으로 많이 선택되는 클래식 음악 역시 마니아인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김광석의 노래를 틀어 놓을 때, 뱃속의 아이가 더 평안에 깃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듣고 또 들을 수밖에.


태교음악의 신비함을 나는 아이가 태어난 다음에 곧바로 느낄 수가 있었는데, 김광석의 노래들을 듣고 아이는 그 까만 눈을 반짝이면서 본능적인 반응을 보여주고는 했다. 그리고 대, 여섯 살쯤이 되면서부터는 김광석 노래들의 멜로디와 가사는 물론이고 가사에 담긴 의미까지 정확히 짚어내는 아이가 되어있었으니. 어느새 나의 김광석에서 딸과 함께 듣는 '우리의 김광석' 이 돼 있었던 거다.


아이는 가끔 묻곤 했다


"엄마는 김광석 아저씨 노래가 왜 좋아?"


"글쎄, 왜 좋을까?"


김광석이 영원한 잠에 들었다는 연락을 받은 날, 나는 마치 내 몸의 일부가 사라지면서 역사가 삭제되는 통증을 느꼈다. 그냥 느낌만이 아니고 심장이 잠시 멈추는 듯한 고통에 손발이 저려왔다. 그랬다. 아이가 묻는 물음의 답이 여기에 있었다. 김광석 그는 내 청춘의 대변자였고, 내 삶을 노래로 이야기해주는 단 한 명의 가수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콘서트에서 즐겨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귓가에 맴돌기 시작한다.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 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그는 내 빛났던 청춘의 함축이자 많은 것을 내포한 은유였기에, 그가 세상을 떠난 1996년 1월 6일, 내 청춘의 시계도 함께 멈춰 섰음이니. 그가 떠난 오늘, 오직 한 사람 김광석을 위해 이곡을 선곡한다.

김광석길의 기타 조형물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 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 내 텅 빈 방 안에 가득한데
이렇게 홀로 누워 천장을 보니 눈앞에 글썽이는 너의 모습

잊으려 돌아 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지나간 시간은 추억 속에 묻히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이렇게 긴 긴 밤을 또 잊지 못해 새울까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 방 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밤하늘에 빛나는 수많은 별들 저마다 아름답지만

내 맘 속에 빛나는 별 하나 오직 너만 있을 뿐이야
창 틈에 기다리던 새벽이 오면 어제 보다 커진 내 방 안에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하얗게 밝아온 유리창에 썼다 지운다 널 사랑해

김광석/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누가 노래의 힘이 뭐냐고 묻는다면 김광석의 노랫말을 들려주시라


고 김광석. 그가 가장 사랑했던 자신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김광석이 직접 곡을 쓰고 가사도 붙인 노래다. 내가 함께 했던 그 9월의 콘서트에서 그는 수줍은 고백처럼 이 노래에 대한 단상들을 풀어놓았었다. 너무도 사랑했지만 잊어야 하는, 그러나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애틋함이 가사 곳곳에 숨어 있다. 본인의 얘기이기도 하고, 사랑을 하는 모든 이들의 얘기 같기도 한, 그래서 더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 가사가 아닌가 한다.


김광석을 떠나보낸 후의 상실감은 나를 포함해, 그를 몹시도 사랑하던 사람들만이 가지는 것은 아니었던가 보다. 한 시대를 자신만의 방향을 가지고 뚜벅뚜벅 걸어가던 뚝심 있는 가객이자, 노래하는 철학자로서의 그의 진가는 오히려 사후에 더 사랑을 받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소환될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다정하게 소비되고 있다. 얼마 전 한 가요대전에서 새까 많게 어린 후배들이 그를 추모하며 존경을 담아 그의 노래들을 부르는 것만 봐도, 김광석이 우리 가요사에서 가지는 무게감이 상당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김광석의 노래들에는 시대를 안고 가는 청춘의 고민과 방황,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가장 진솔하고 아름다운 방법들에 대한 그의 처방이 숨어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우리 가요를 사랑하고, 그 가사들에 숨은 의미를 찾아 해석하는 게 취미였던 나는, 아주 오래 관련된 원고를 썼었다. 그 시간 동안 정말 다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노래 가사들을 맞닥뜨렸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작사가의 의도대로 순정하게 움직인 노래들은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그저 좋은 곡에 입혀진, 입에 붙는 가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삶의 언덕에서 하루를 바라보며 너와 나의 시간과 공간을 담담히 얘기하는 김광석의 노랫말들이 더 와 닿는지도 모르겠다. 노래의 씨앗이, 듣는 이들에게로 가서 활짝 꽃 피우려면 그만큼 가사를 전달하는 가수의 역할이 중요함이다. 누가, 좋은 노래의 힘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물어올 때면 찬찬히 김광석의 노랫말을 낭송해 주시라.


내 박제된 청춘에 고함.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는 최대한 볼륨을 낮게 하고 들어야 한다. 그래야 마치 바로 옆에서 읊조리듯 노래하는 진짜 김광석을 만나게 되니까. 가사를 곱씹으며 생각한다.


'그래요 광석 씨, 대체 무엇을 잊어야 할까요?'


오늘은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창문에다 대고, 쭉 찢어온 노트 한 장에다 대고, 빼곡하게 김광석 그의 이름을
썼다 지우고, 다시 써야 할 거 같다.

이 노래의 가사에도 나오듯 맘속에 빛나는 별 하나, 그것도 가수로서 빛나는 별 하나는 오직 김광석이니, 그의 기일인 오늘, 1월 6일은 매번 애통할 따름이다.


이렇게 내 청춘을 온통 대변하고 정의하는 가수를 다신 만날 수 없을 거 같았던 예감은 틀리지가 않았다. 수많은 가수들이 나타나고 사라지거나 잊히기도 했지만 영원히 내 맘 속에 불멸의 혼으로 살아있는 가수는 단 하나이니, 내게 남은 깊디깊은 이 김광석이라는 火印. 굳이 지우려 애쓰지 말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의 노래 한 곡이 재생될 때마다 그를 잃은 아픔과 안타까움도 함께 재생되기에, 이는 시지프스의 고통에 상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듣는다. 박제된 청춘으로 향하는 여전히 뜨거운 눈물을 집어삼키며, 청춘의 빛났던 그때, 그 빛남을 오롯이 노래해준 그를 잊지 않기 위해 말이다.


그는 갔지만, 그의 노래들은 남아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하다. 어쩌면 영원히 '서른 즈음'자신의 生을 봉인해 놓고는 혼자서 흐뭇하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늙은 청춘으로 사는 우리들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예의 그 담백한 한마디"행복하십시오"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무한 리플레이하고 있을 수도.


오늘만큼은 나도 수줍은 서른 즈음으로 다시 돌아가

당신이 누군가에 했던 고백,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게 되는 바로 그 고백을 보낸다.

사랑하는 김광석, 그대 편히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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