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에 몸 담고 있다 보면 자존심이고 뭐고 다 내려놓아야 할 때가 종종 발생한다. 음악방송 작가 생활을 오래 한 나는 특히나 프로그램 중 출연자들을 맞는 일이 쉽지는 않았는데, 게 중에는 명성을 등에 업고 오만불손한 태도를 보이는 이도 가끔은 있었다. 특집 같은 걸 할 때면 꽤나 명성 있는 가수들을 섭외해 프로그램을 꾸몄는데, 오프닝이나 클로징에 자신을 세우지 않았다고, 화를 내며 자리를 이탈해버리는 가수도 있었다.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그런 가수의 노래가 어디선가 흘러나올 때면 잘 못하는 욕이지만 큰 소리로 욕을 해 버린다. '웃기시네, 지가 뭐라고!'
물론 극소수였지만 그런 이들은 분명 존재했다. 사람을 사람으로 동등하게 대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위치가 절대자에라도 닿은 듯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려고 드는 사람들 말이다. 알량한 권력이 후안무치하다는 걸 그들이 먼저 깨달았다면, 오직 노래에만 집중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렇게 음악을 권력으로 사용하려는 사람들의 노래는 빨리 산화해버린다. 때론무의미하게사라지기도 한다.
텅 빈 마음으로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대 봤자, 그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로 김광석의 '나의 노래'는 더욱 귀하다. 적어도 김광석의 '나의 노래'는 가수란 모름지기, 듣는 이들의 마음에 노래로 스며드는 사람임을 확실하게 천명하고 있으므로. 가수의 힘은 일시적 '인기'를 권력으로 착각해 휘두르는 데 있지 않다는 걸 가사를 통해 낱낱이 자각하고 있기에 말이다.
마음이 밑바닥으로 수직 하강할 때, 쓰고 싶은 문장이 그저 머릿속에서만 맴돌 때, '나의 노래'를 꺼내 듣고 읽는다. 김광석의 모든 노래가 내겐 치유로 다가오지만, '나의 노래'만큼 친한 친구처럼 오래도록 곁에 누워, 등을 쓰다듬고, 공허한 눈빛을 지그시 바라봐주는 노랜, 흔치 않다.
불과 며칠 전 , 되지도 않은 시의 한 문장을 잡고 낑낑거리다가, 낯설고 젊은 시인의 시집을 보며 절망했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토록 어마어마한 서사의 문장을 조형할 줄 안다고? 시가 무르익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오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어린 시인의 시는 맹렬하게 내 심장을 공격해오는 것이었다. 한 줄, 한 편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직조되지 않아서, 세워놓고 보니 잘 짜인 실크 원단처럼 빛나 보였다. '에라 잇! 시는 무슨.' 내 절망은 수천 길 낭떠러지로, 검은 계곡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포기하고 싶은 찰나, 예의 김광석이 홀로그램처럼 나타난다.
'에이, 그 정도로 실망한다고요? 당신에겐 당신만의 노래, 시가 있으니까 잘 찾아보라고요'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주름진 얼굴의 김광석은 곁으로 다가와 변하지 않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게도 나의 노래가 있었기에, 그 노래가 시가 되어 수많은 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었다고, 그러니 당신도 그렇게 해보라고. 나의 노래는 조그만 것으로 출발하지만 그 씨앗은 결코 작지 않으니 멈추지 말고 부르고 또 부르라고.
아무것도 가진것 없는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않는 어둠속에서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빛
나의노래는 나의힘!
나의노래는 나의삶
자그맣고 메마른 씨앗속에서
내일의 결실을 바라 보듯이
아이의 조그만 읊음속에서
마음에 열매가 맺혔으면
나의노래는 나의힘!
나의노래는 나의삶
거미줄 처럼얽힌 세상속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가지 처럼
흔들리고 넘어져도 이 세상속에는
마지막 한방울의 물이 있는한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나는 마시고 노래하리
수많은 진리와 양심의 그문자
찬란한 그빛에는 멀지 않으리
이웃과 벗들의 웃음속에는
조그만 가락이 울려 나오면
나는 부르리 나의노래를
나는 부르리 편안한 밤을
그러나 그대모두 귀기울일때
노래는 멀리멀리 날아가리
노래는 멀리멀리 날아가리.
김광석/나의 노래
김광석이 너무도 아까운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오히려 대중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 더욱더 그를 그리워했다. 그의 노래가 사방에서 흘러나오더니, 후배 가수들은 앞다퉈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 했고. 방송사들에선 일찍 가버린 가객의 생애를 기리고 추모하는 프로그램들을 양산했다. 그의 진심을 담은 노랫말들에 사람들은 가슴 저린 위로를 받으며, 제발로 그의 추종자가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왠지 난 이런 현상들이 마뜩치가 않았다. 언젠가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물원' 멤버였던 김창기가 인터뷰 중 한 말이 무척 아프게 다가왔다.
"광석이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면서도 꽤 실망을 한 적이 많았어요. 이런 시대에 내가 부르는 노래는 대중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거 같다고 말이에요. 좋아해 주시려면 살아 있을 때, 좀 더 좋아해 주시지"
정확한 문장을 옮길 수 없어서 생각나는 대로 요지만 정리했지만, 김광석이 생전에 자신의 노래 인생에 대한 고민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걸, 그래서 사후에 오히려 재평가받는 것처럼 보여 친구로서 아쉬운 감정을 표현한 것은 아닌가 했다. 내 생각 또한 김창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래 불릴 좋은 노래를 알아보는 혜안이 대중에게는 가끔 엇박자로 열리는 것 같아 속이 상하기도 했고.
'나의 노래' 가사를 한 문장씩 음미하다 보면 소름이 쫙 끼친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김광석이 떠난 후, 이 노랫말을 곱씹어 보니, 마치 세상을 향해, 가슴을 쥐어뜯으며 포효하는 것처럼 해석되는 것이다. 김광석 노래 중 몇 안 되는 밝은 멜로디지만, 의미심장한 노랫말이 녹아드니, 세상 둘도 없이 아프고, 고독한 노래가 돼 버렸다. 특히 '나는 부르리 가난한 마음을'에서는 심장의 근육이 쪼그라드는 느낌마저 든다. 가난할 수밖에 없는 가객의 노래가 김광석 그에게는 힘이고 삶 그 자체였겠으나, 그의 이런 상황과 진심을 읽어낸다는 것이 대중에겐 힘든 일일 수도 있었을 테니, 이 노래를 부르고 다시 부를 때마다 듣는 이들에게 자신의 가난한 마음이 온전히 전해지기를 얼마나 염원했을 것인가. 하여 그냥 끝 간 데 없이 쓸쓸해진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쓰러지려는, 주저앉고 싶어지는 스스로를 보듬고 위로했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노래로 양식을 삼으며 생을 연명하려고 했을 것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고 누구도 호응하지 않는 순간에도 노래로 자신의 존재를 내보여야 하는 천생 가객의 삶을, 그는 진정 사랑했을까?
다시금 듣는 '나의 노래'는 이제 나처럼 노래와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겐 마을을 지키는 장승처럼, 선한 이들을 위한 표식처럼 든든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위로의 의미를 제대로 간파하려니, 어쩐지 먹먹해진다. 생전에 자신이 지은 집에 이렇게 '나의 노래'라는 문패 하나를 달고 그 집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진심이 오롯이 전해지기를 바랐던 김광석이지만, 이 노래, '나의 노래'의 가사는 마치 다가올 일을 미리 예감하고 쓴(비록 자신이 쓴 건 아니고 작자는 한동헌씨지만)비석의 문구, '비문' 같아서 말이다.
그래, 김광석이라면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있는 한 마시고 노래하리라던 다짐을 먼~먼 거기에서도 지키려고 애쓸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본인이 부른 노래가 멀리멀리 날아가 싹을 틔우고 꽃을 탐스럽게 피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사람좋은 웃음을 한껏 짓고 있을지도. 하지만 너무 일찍 써진, 그래서 하늘로부터 빨리 그를 호명하게 만든 '비문' 같은 노래를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음이니, 이를 대체어찌해야 할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