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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깨 Feb 25. 2020

한국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책 『한국이 싫어서』 / 장강명


벌써 1년이 지난 나의 영국 생활. 작년 2학기 때 학교 생활과 바쁜 영화제 일로 한창 달리며 살던 그 때에 영국 생각이 자주 났었다. 그렇다고 꼭 그렇게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닌데, 당시의 나의 한량 생활이 조금 그리워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 때는 매일 일어나서 '오늘은 뭘하며 시간을 보낼까'라고 생각했다면 현재 취업 준비를 하고 있기에 '오늘까지 뭘 끝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게 조금 웃플 때가 있다.




인간의 기억이란 다 그런거겠지만, 영국 체류 시절 내가 했던 걱정과 고민보다는 아무래도 좋은 것들만 떠오르기 마련이다. 나는 애초에 영국에 정착해서 쭉 살 생각이 1도 없었기에 그런 류의 고민은 안 했지만, 오다가다 만난 많은 런던 장기거주 한인들은 정착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아예 살고 싶은데 취업 비자나 장기 체류 비자 획득이 너무 어려워서 불법 체류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개인들마다 모두 사정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해외 거주'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탈조선' 현상에 대해 여러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소설가 김훈은 "낙원은 여기에 있거나 아니면 없다"라고 했다. 지금 현재에 집중하지 않고 멀리 저 편만을 바라보며 사는 이에게는 쓴소리로 들릴 수 있다. 사실 나도 이 말을 꽤 좋아하는 편이다. 물론 김훈은 저 말을 썼을 때 그 대상이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위협받는 상황임을 가정하고 쓰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정말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고장난 사회에서 마냥 지금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좋은 게 좋은거다'라고 살기엔, 한국이라는 사회는 개인을 잔혹하게 갉아먹으며 돌아가는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 문제다. 영국에 가있을 때 친구들이 미세먼지, 학점 압박 등으로 한탄하며 반진담 반농담으로 '넌 한국 오지마라~'라고 했었던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왠지모르게 부끄러워져서 '여기도 별 거 없어~'라며 대꾸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실제로 한국에 있다가 영국에 온다고 자동적으로 행복지수가 올라가고 웃을 일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영국에서 언어적 장벽이나 문화적 장벽을 느끼고 좌절하는 한국인도 많다.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렇지 않나. 자기 행복을 아끼다 못해 어디 깊은 곳에 꽁꽁 싸 놓지. 그리고 자기 행복이 아닌 남의 불행을 원동력 삼아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야. / 원문 중



어쨌든 탈조선의 실체는 뭘까, 도대체 한국은 왜 이 모냥(?)일까, 해외에 대한 동경은 어디서 오는걸까... 이런 고민들을 하다가 이 책, <한국이 싫어서>를 고르게 되었다. 우선 이 책은 너무 재밌다. 워홀러의 삶을 이렇게 소설로 만나게 되니까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겐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책에서 나오는 온라인 '호주나라' 카페 이야기가 참 공감이 되었다. 워홀러랑 유학생이랑 교민들이랑 서로 싸우는 모습, ‘엄혹한 전두환 정권 시절 미친 나라를 떠나 호주로 온 사람’이라고 글 시작해서 만날 한국 욕하는 교민 아저씨, 워홀 온 젊은 사람들이 영어 못한다고 최저임금 안 주는 교민들 ... 이런 이야기가 매일 올라오던 '영국사랑' 사이트가 떠오르면서 참 어딜가도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댄에게 우리 관계는, 걔가 뭐든지 잘 알아서 이끌어 주면 나는 귀여운 미소를 지으면서 도움을 받는 그런 관계였던 거지. 가끔은 소리를 지르고 싶더라고. 야, 사실 내가 너보다 더 똑똑하다고! 나 대학도 나왔어! 나 원래 엄청나게 시니컬한 사람이야! 위트 넘치는 표현도 잘하고 이해력도 좋아!


모국어가 다른 국제 연애에서 한 번쯤은 느껴볼 수 있는 딜레마도 어쩜 이렇게 잘 묘사했는지.. 분명 책을 쓰기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누구한테 들은 썰일 것 같다. 나도 저런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영국인과의 관계 속 내 모습은 한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아는 내 모습의 일부밖에 되지 않는듯한, 어떤 코어가 빠져있는 타이어같은 느낌이었다. 연애적인 면에서도, 흔히 말하는 'Yellow Fever'을 피하기 위해 나와 내 친구들은 항상 누군가를 만날 때 가장 먼저 '동양인 여자에 대한 집착이 있나 없나'를 우선순위로 보기도 했었다. 웃기고 슬픈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인과의 결혼을 통해 비자를 획득하려는 나의 주변 친구들을 보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었다.




서양 사람들은 자식의 애인들에게 최근에 본 영화가 뭔지, 음악은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지, 혹시 재즈는 좋아하는지를 물을 거야. ‘누구를 좋아한다고? 나도 되게 좋아하는데. 공연 가 봤어?’ 그럴 거야.


이것도 무릎을 탁 치며, '맞아!'를 외쳤던 구절이었다. 그 당시 애인의 어머니도 나를 처음 봤을 때 '혹시 <존 윅> 시리즈 좋아하니?'라고 말을 걸었었다. 그들을 '판단'하기 보다는 '이해'하려는 태도의 차이로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다는 말이 참 와닿았다. 현금흐름성 행복을 극강으로 추구하는 삶이 흔히 말하는 YOLO 의 삶일테고, 미래를 위해 80%를 저축하거나 고시를 준비하는 등의 삶은 자산성 행복을 향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거다. 우리는 두 가지 행복 모두 필요하다. 한 가지만 가지고 있는 것은 불안감을 줄 수 있다. 나는 예전부터 두 가지가 공존하게끔 하기 위해 살아왔던 것 같은데, 요즘은 자꾸 현금흐름성 행복만 쫓는 것 같아서 살짝 반성하게 된다. 아무래도 성격이 급한 탓이겠지..... 시간을 오래 들여야하는 취미 생활, 공부 등에 올해는 한 번 도전하고 싶다.






작품 해설에선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다. 진정한 탈출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육장 내에서 가축이라는 포박을 풀어내는 데 달려 있다. 사육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거부하고, 사육장의 주인을 쫓아내야 한다." 사육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것은 텍스트 상에서는 쉽지만 사실 내가 살아온 과거의 삶, 노력들을 내려놓아야한다는 말이기도 하기에 어려운 일일 것이다. 확실한 건, 고민한 적이 없는 자와 고민한 적이 있는 자는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데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이 한국을 탈출하려고 할까, 라는 서두의 질문에 책에서 나온 아래의 말이 어느정도 해답이 될 수도 있겠다. 미래가 두려운 삶은 그 공간이 한국이든 어디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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