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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명식 Feb 04. 2024

휴대용 선풍기가 필요하다.

그냥 살아가기

아이들이 아주 어릴 적부터 캠핑을 시작했다.

이제는 아이들 모두 성인이 되었고, 각자 삶이 바쁘다보니 이제 캠핑은 아내와 단 둘이다.


캠핑초보 시절 제일 어려운 게 '장작 불 붙이는 일'이었다. 장비도 초보, 실력도 초보였던 시절, 텐트 셋팅과 식사 전 장작불 붙이는 게 제일 큰 과제였.


붙었나 싶으면 사그라들고, 붙었나 싶으면 금새 사라져버리는 불씨가 참 야속한 시절이었다. 그 뿐인가. 고기라도 구울 요량으로 신경을 놓고 있으면 어느 새 불씨는 잠들어 버린다. 부랴부랴 따로 모아둔 잔가지들과 종이 몇 장을 올려 부채질을 댄다. 


그렇게라도 불이 살아주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그 과정에서 사방으로 번지는 자욱한 연기는 '나는 캠핑초보'라고 외치는 듯 부끄럽다.  지금 생각하면 어찌 그리 어설프고 손이 많이 갔는 지.. 캠핑은 여러모로 번거롭다.


캠핑박스에는 불쏘시개용 신문지가 수 년 째 쓸모없이 놓여 있다. 이제는 큼지막한 토치로 어렵지 않게 불을 붙인다. 초보시절에 비해 두 배는 커진 토치와 더불어 불붙이기 1등공신은 바로 '휴대용 손 선풍기'다. 장작을 쌓고 토치로 어느 정도 불이 붙으면 손선풍기를 이용해 불을 키운다.


숯을 만들어 고기를 굽다가 불이 줄어도 손선풍기 하나면 충분하다. 숯을 위아래로 바꿔준 후 선풍기 바람 한번 쐬어주면 나무충전 없이 고기굽이 딱이다. 고가의 각종 캠핑장비보다 작은 손 선풍기 하나가 캠핑라이프 스트레스 지수를 확 낮춰졌다.


인생도 그렇다.

거창한 것보다 자잘한 행복이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 제주도 어느 카페에서 맛본 아인슈페너의 그 끈적하고 달콤한 추억이 새로운 여행을 준비하게 만드는 것 처럼 말이다.


너무 조이지 말고, 그냥 소소하게 살아보자.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비싼 장비들보다 몇 천원짜리 선풍기가 캠핑의 여유와 즐거움을 만들어주는 것 처럼 작은 행복으로 내 삶을 채워보자. 행복한 삶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내 삶의 손 선풍기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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