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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식문화기록자 Aug 20. 2019

새로운 종손과 종부가 탄생하다 #1

안동 권씨 충재 권벌 종가

새로운 종손과 종부의 탄생을 조상에게 고하는 길한 제사, 길제(吉祭)

젊은 종손 부부가 이끌어 갈 종가의 미래가 밝아


종가 한 세대에 한 번만 볼 수 있는 중요한 행사가 열렸다. 바로 길제(吉祭) 날이다. 길제는 길사(吉祀)라고도 한다. 충재 종가는 종가 연구를 시작하면서 처음 방문한 종가여서 길제의 주인공인 19대 권용철 종손(안동 권씨, 46세), 권재정 종부(예천 권씨, 44세)와 인연이 깊다. 종가 초대를 받아 참석했고 공식 촬영도 허락받았다. 길제는 여러 의미가 있는 날이다. 우선 한 세대를 종손으로 살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삼년상(三年喪)을 끝내고 신위를 사당으로 모시는 날이다. 또 사대봉사 원칙에 따라 5대조 조상 신위를 사당에서 묘소 옆으로 옮겨 묻는 날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자연히 남은 아들과 며느리는 종손, 종부가 돼서 종가의 '봉제사 접빈객' 역할을 다하기 위해 조상들에게 고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렇게 여러 의미가 있는 길제는 상례(喪禮)의 마지막 과정이 된다. 길제는 중국 주자(朱子)가 쓴 <가례>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장생이 옛 예서를 보충해서 <상례비요>에 기록했지만, 자세하지 못해 조선 후기 유학자인 이재가 <사례편람>에 길제 내용을 상례의 마지막 과정으로 상세히 정리하기도 했다.


충재 종가 종손과 종부는 다른 종가에 비해 40대로 비교적 젊다. 그만큼 종가와 전통문화를 지키는데 적극적이다.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면서 종가에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는 지역명사 여행 사업에 최초로 '충재 종손, 젊은 종손 부부 이야기'에 선정되기도 했다. 종가 관련 유적지와 종가문화 콘텐츠를 결합시켜 종가 체험, 서당교육, 규방공예 등 많은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늘 길제를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한 것도 변화의 한 부분이다.


충재 종가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오늘날 부총리에 해당하는 의정부 우찬성을 지낸 충재(冲齋) 권벌(權橃, 1478~1548) 선생을 중시조로 한다. 충재 선생은 기묘사화로 파직당하고 어머니 파평 윤씨 묘소가 있는 봉화 유곡리 달실마을(닭실마을)로 귀향해서 터를 마련했다. 달실마을은 안동 권씨 집성촌으로써 삼남지방의 4대 길지 가운데 하나로 마을을 둘러싼 형국이 '금닭이 알을 품은 듯'해서 금계포란(金鷄抱卵) 지형으로도 유명하다. 달실마을에는 충재박물관, 청암정, 석천정사, 삼계서원, 추원재 등 역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와 문화재가 많이 있어 하루에도 수 십, 수 백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다. 길제 행사를 외부에 공개하긴 했지만 엄숙하고 경건한 제례 의식에 앞서 역사 유적을 훼손하고 분위기를 깨는 일부 사람들이 왕왕 있어 덕분에(?) 조그만 안내를 붙여놨다.

                                  


봉화로 오는 길에는 새벽안개가 자욱했는데 깊은 산속 봉화에 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고 청명한 가을 하늘이 길제를 반기고 있었다. 붉게 물든 단풍 사이로 청암정(靑巖亭)이 자리한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봤다. 눈에 담은 형형색색의 단풍과 청암정의 조화로운 모습을 사진으로 모두 담지 못 해 아쉬울 따름이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붉게 물든 단풍이 어우러진 청암정을 배경으로 충재 종가 길제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청암정은 충재 선생이 달실마을에 머물 때 큰아들 권동보와 함께 세운 정자다.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를 다듬지 않고 주춧돌과 기둥의 높낮이를 조절해서 정자를 지었다. 연못을 두르고 건널 수 있게 장대석 다리를 놓았다. 물 위에 뜬 거북이 등에 정자가 놓인 형상으로, 빼어난 아름다움과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정자 한쪽에 있는 방은 구들 대신 마루가 깔려있다. 처음 정자를 지었을 때는 온돌이 깔려있었다고 한다. 연못도 없었다. 하루는 온돌에 불을 지피자 바위에서 기이한 소리가 났다. 지나가던 스님이 바위가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으니, 방에다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이 등에다 불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귀띔했다. 반신반의로 온돌을 들어내고 바위 주변을 파 연못을 만들었더니 신기하게도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인기리에 방영된 TV 드라마 '동이', '바람의 화원', '정도전'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청암정





충재 선생은 1548년 71세에 세상을 떠난 후 43년째 되는 1591년에 국가에 큰 공헌을 한 공신이나 충신에게 임금이 내리는 국불천위(國不遷位)로 추대됐다. 이로써 후손들은 가문의 높은 영광과 권위의 상징으로써 충재 선생의 불천위 제사를 대대로 모시고 있다. 사당 앞에 6개 상이 차려졌다. 불천위 조상인 충재 선생과 부인 신위(원위)를 가장 왼쪽에 두고, 다음으로 5대조, 4대조(고조고비위), 3대조(증조고비위), 2대조(조고비위), 마지막으로 삼년상을 마친 부모 신위(고비위)까지 순서대로 놓았다. 평소 제사 지낼 때 한 개 차리는 제사상 음식보다 많기 때문에 종가에 보관해 오던 모든 제기가 오랜만에 문밖으로 나왔다.


11시에 시작되는 길제를 준비하기 위해 권재정 종부는 음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종부는 평소 멘토 역할을 해주는 송재규 할머니와 상의해서 음식을 차리고 있었다. 6개 상을 차리기 때문에 모든 음식을 6개씩 준비했다. 불천위 조상 상에는 특별히 음식 양을 조금 더 담았다.

                                                    

제사상에 오를 적(炙)도 준비됐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길제에 참석한 20대 차종손. 아직은 어수룩하지만 다음 세대를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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