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로스, <에브리맨>
2022.6.7 (화)
조금 은밀한 독서모임 1회가 끝났습니다.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을 첫 도서로, '죽음'을 우리의 첫 주제로 선정한 데는, 평소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주제에 대해 평소에 알지 못하던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 저의 개인적인 바람이 들어있었습니다.
죽은 자는 죽음에 대해 말해줄 수 없기 때문에, 산 사람은 죽음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다가온 현실은 다시 만들 수 없으니, 그냥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고, 체념하고, 때로 두려워할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변화'와도 밀접한 것 같습니다. 변하는 나의 모습, 부모님의 모습, 떠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때로 이질적이고 거부감이 듭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을 잃기도 합니다.
모임에서 저는 이런 이질감을 부정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 이질감과 모순이 결국 삶의 정수라는 생각도 듭니다. 죽음이 있어서 삶이 행복하고, 통제가 있기에 즉흥이 짜릿하고, 또 좌절이 있기에 비로소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나가는 것처럼요. 이질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우리는 발버둥 치고,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죽어가는 게 아니라 살아가려 한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죽음은 책 제목처럼 every man이 겪는 일입니다. 어느 날 공사장을 지나가다 돌을 맞을 수도, 파도풀에서 나오지 못할 수도, 뜬금없이 병을 선고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미지의 존재로, 배 위에서 보는 캄캄한 바다처럼 막연한 두려움을 줍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별로 없죠. 근데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것도 안 해도 어차피 죽음은 옵니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덮쳐올 허망함을 조금이나마 방지하기 위해, 살아서 열심히 경험하고, 사랑하고, 서로를 다독이는 일 아닐까요. 생애 중에 감정과 말을 남김없이 서로에게 나누어, 무덤 앞에서 아쉬울 사람 하나 줄이는 것도요. 그렇게 또 살아가다 보면 마지막 순간에,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에 대한 기대감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캄캄한 바닷속에서 떠올릴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잠깐 소망해보게 됩니다.
이름도 나오지 않는 주인공처럼, 에브리맨이 생과 사를 경험하듯이, 우리 또한 서로의 존재를 모르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연말에 돌이켜보았을 때, 이 모임이 저와 여러분에게 그런 깊지도 얕지도 않은 유대의 순간들을 조금이나마 남겼으면 하는 욕심입니다.
이제 출근해서(!) 삶을 직면해봅시다. ㅎㅎ
*위 글은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에서 발췌한 구절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