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이에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2022.07.05 (화)
조금 은밀한 독서모임 3회가 끝났습니다.
어느덧 완연한 여름을 넘어 장마철에 접어들었는데요.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습하기보단 잔잔하고 푸르른, 어쩐지 미화된 기억 속 저편의 여름이 떠오르는 소설이었습니다. 그 예리하진 않지만 몽글몽글한 기억처럼, 이 소설도 우리에게 꽤나 오래갈 느낌들을 남겼지 싶습니다.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합니다. 명백한 기한이 있고, 분명 효율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규칙이 있습니다. 가령 연필을 사용하는 시간을 정해둔다든지, 문고리로 안과 밖의 구분을 짓는다든지 하는 노하우들이 완성도 높은 현실을 만드는 데 기여합니다. 또 구석구석 신경을 쓰다 보면 꽃을 내려다볼 수 있는 발코니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 설계를 해도, 완공되기 이전까지 건축은 '현실'이 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실현되지 않은 것들은 어떻게 될까요. 아마 아쉬움과 각종 감정으로, 작은 아크릴 케이스 속 모형에 보관될 것입니다. 그 모형은 없어지기는커녕 함께한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됩니다. 어쩌면 성공적으로 구현된 건축은 이미 모형으로 간직할 필요가 없으니, 미실현작의 잔상이 더 오래 남겠습니다. 만약 무라이 설계사무소의 작품이 경합에서 이겼다면, 이야기는 그저 그런 해피엔딩으로 기억됐을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형태는 없지만 마음에는 각인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진혼곡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완벽을 동경하지만 불완전함에 친근함과 매력을 느끼곤 합니다. 우리 모두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누구나 아쉽고 후회되는 모습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다는 응어리, 친구에게 모진 말을 했던 못난 모습, 의미 없는 방황... 가끔은 이런 과거를 외면하려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조차도 불완전한 나의 일부이기에, 그것을 직면하는 것도 나의 몫이 됩니다. 다행히 '~할 걸', '~ 해볼 걸'은 결국 ~를 진짜 하게 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잖아요.
아쉬운 과거를 몇 번 겪다 보면, 장작을 쌓아 불을 지피는 것도 익숙해지고, 고급 오토바이 장비가 어울리는 내가 되어있을지도 모릅니다. 몇 개월 간 매달린 결과가 실패라도, 함께 만들어 간 기억이 불완전이 아닌 소설의 '완성'으로 기억되는 것처럼,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아쉬움도 나를 완성할 하나의 단계이기를 바라 봅니다. 야무지게 나눗셈이 똑 떨어지는 것보다 나머지가 남는 게 곧 인생의 묘미이니까.
무라이 사무소에서 몽당연필들을 유리병에 담았듯이, 우리의 모임에서 나온 자투리 이야기들을 정말이지 모조리 글에 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읽으면서 각자의 연필이 그 안에 있었다- 라고 기억해주면 기쁘겠습니다.
건축과 인생은 현실이라지만, 그것을 만들어가는 수많은 우리 안팎의 과정들은 각자만의 예술이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위 글은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에서 발췌한 구절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