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일기
2024년 6월 24일(월) 맑음
오늘은 엄마와 합창공연을 보러 가기로 한 날. 친구가 합창공연에서 반주를 하는데, 엄마와 같이 보면 좋을 거 같다며 표를 선물해 주었다. 장소는 무려 롯데콘서트홀. 정말 고마웠다. 엄마와 나를 동시에 생각하고 챙겨주다니, 볼수록 이름처럼 마음이 맑고 고운 친구라 느껴진다.
원래는 휴가를 내서 여유롭게 같이 저녁을 먹고 공연을 보려고 했는데, 전 직원 회의가 잡혀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는 집에서, 나는 회사에서 각자 공연장에 가기로 했다. '대중교통을 타면 엄마가 피곤할 텐데, 혹시 차가 밀려 내가 늦게 도착하며 엄마 혼자 공연장을 찾지 못하실 텐데'란 걱정에 회의가 끝날 때까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다행히 회의가 예정보다 일찍 끝났고, 나는 4시에 휴가를 내고 집으로 가 엄마와 함께 잠실로 갈 수 있었다.
인천에서 5시 즈음 출발해서 잠실에 도착하니 6시 15분. 저녁을 먹기 위해 롯데월드몰 식당가를 둘러보기로 했다. 평소 접하기 힘든 스페인 음식점에 엄마가 관심을 보이셨는데, 가격을 보고 도리도리 하셨다. 그래도 먹고 가자고 설득했는데, 음식이 나오는데 40분이 걸린다는 걸 보고 다음에 먹기로 했다. 엄마가 새로운 음식을 먹고 싶어 하시는구나란 생각에, 나중에라도 새로운 걸 먹으러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최종으로 선택한 식당은 한식가게였다. 무얼 먹을지 한참을 고민하다, 엄마는 골동반반상, 나는 닭불고기 반상을 주문했다. 잠시 후 갈색 나무의 상같은 접시에 밥과 반찬이 놋그릇에 담겨 나왔는데 담음새가 이뻤다. 정갈하고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 첫인상은 합격이었다.
조금씩 음식을 먹기 시작하는데, 가게 직원이 내려져있던 창의 발을 올리기 시작했다. 창가에 앉긴 했지만 전망을 기대하며 들어온 것도 아니었고, 아파트와 빌딩으로 가득한 잠실 한복판이라 특별히 전망이 기대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웬걸. 발을 다 올리자 예상치 못한 전망이 펼쳐졌다. 바로 옆에 롯데타워가 우뚝 서있고, 조금 멀리에는 녹음 가득한 공원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우와..."
감탄이 나왔다. 서울에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서울 잠실까지 왔으니 괜찮은 음식을 먹고 싶다 생각했는데, 사실 18,000원인 음식값에 비해 맛이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망이 펼쳐진 순간 더 이상 음식맛이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어디를 가나 음식맛은 거기서 거기일 수도 있고,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일 것이다. 그런데 창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 잠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의 맛을 느낀 것이다. 먹는 내내 이 식당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뷰맛집이었다.
음식과 전망을 느끼며 식사를 해가던 중, 공연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와 서둘러 이동해야 했다. 남은 음식을 흡입하듯 먹고, 아직 식사를 다 마치지 못한 엄마를 재촉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시간이 7:19. 7:30 공연을 10여분 앞두고 있었다. 공연장으로 가는 길을 몰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조금 걸어 나가자 공영장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찾을 수 있었다.
콘서트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평소 합창공연에 특별히 관심이 없던 나는, 공연을 들으러 오는 사람이 많다는 게 새삼 신기했다. '하긴, 나는 피아노공연을 좋아해 보러 가니까 이 사람들도 그런 거겠지.'란 생각이 들으며, 역시 세상에는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싶었다.
공연장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 셀카를 찍으며 추억의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1분 후 7:30, 정확히 공연이 시작되었다.
합창공연은 전국의 11개 합창단이 2곡씩 노래를 부르며 이루어졌다. 경연대회가 아니라 말 그대로 페스티벌이라 참여하는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단원들은 노래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취미나 모임에서 합창을 하는 분들이었다. 모두 자기 일을 하면서 노래연습을 하고 이렇게 큰 콘서트홀에서 공연도 하다니. 참 재밌게 사는 분들이 많구나 싶었다. 평소에 입기 힘든 멋진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게 저분들의 삶의 활력소가 될 거 같았다.
친구의 합창팀은 마지막 순서였다. 파란 드레스를 입은 단원들, 지휘자, 그리고 친구가 나와 인사를 하고 합창을 시작했다. 친구의 피아노 소리가 구름처럼 피어올라 공연장을 보드랍게 감싸주었다 친구의 피아노는 역시나 감동적이었다. 엄마 역시 몇 소절을 듣자 그 친구의 피아노 소리 같다며 감탄하셨다.
11개 팀의 공연이 끝나고 모든 참가자들이 나와 연합합창을 하고 공연은 마무리되었다. 몇백 명은 되는 사람이 다양한 색으로 무대를 꽉 채워 노래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이게 공연의 하이라이트구나 싶었다.
공연이 끝나고 엄마와 나는 무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공연장을 나왔다. 공연장 앞에서 초대해 준 친구를 만나 인사하고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했다. 10시 조금 넘어 출발해, 집에 11시 20분 즘 도착했다. 그렇게 엄마와의 합창공연 관람이 마무리됐다.
예전에 엄마와 친구의 피아노 연주를 두 번 같이 들으러 간 적이 있는데, 그것 외에는 공연을 본 건 처음인 거 같았다. 오래 같이 있어도 새로운 경험을 잘하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엄마가 피아노보다 합창을 더 좋아하신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매일 같이 있지만, 모르는 것들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일상을 조금 벗어난 이벤트가 서로 모르는 것을 알게도 해주는 거 같다. 그리고 추억도 만들어주는 거 같다.
이렇게 오늘 엄마와 새로운 경험과 추억 +1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