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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Y Jun 30. 2024

0627 고양이 삼 형제와 비밀의 화원

2024년 여름일기

점심시간에 밥 먹고 자리에 앉아 쉬고 있는데, 산책하고 들어온 동료 한분이 근처에서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보았다 했다. 덤불뒤에 고양이쉼터 같은 곳이 숨겨져 있는데 거기서 새끼 고양이가 있다고. 난 바로 거기를 보여달라고 했고 동료분이 같이 가 주었다.

 

도보 1분 거리, 음식점으로 들어가는 길 오른편에 무성한 수풀 앞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던 장소였는데, 자세히 보니 그 안에 고양이가 있었다.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닌 무려 세 마리!


고양이들은 자기들끼리 놀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자 우리를 보고니 후다닥 수풀로 숨어들었다. 자기들 딴엔 나름 빠르게 움직인 거 같은데, 작은 몸짓으로 둥실둥실 뛰는 모습이 어설펐다.

혹 아이들을 볼 수 있을까 싶어 수풀 길에 두어 발짝 들어갔는데, 밖에선 보이지 않았던 고양이 세상이 펼쳐졌다.

수풀을 따라 고양이 집이 5~6개가 나란히 있었고, 스테인리스 그릇엔 깨끗한 물이 채워져 있었다. 누군가 계속밥은 누군가 매일 주는지 깨끗이 잘 관리돼있었다.

이곳은 고양이들의 타운하우스. 말 그대로 작은 주택단지였다.

'겨울을 어디서 날까 했는데, 여기 옹기종기 모여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새끼도 낳고 겨울도 나며 보내고 있었구나.' 그간의 궁금증이 조금 해소되었다.

그러다 내가 걸리버처럼 큰 거인인데 그들의 작은 세상에 침범한 거같이 느껴져, 가져간 추르를 세 덩이로 나눠 짜 놓고 조심조심 돌아 나왔다.

밖에서 보니 정말 그 안에 그런 세상이 있으리라곤 상상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으흠. 우리들이 사는 세상 속엔 우리가 잘 모르지만 이런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구나. 오늘 숨겨진 비밀의 고양이 세상을 발견했다.

뒤뚱뒤뚱 고양이들. 나중에 조심히 보러 와야지. 하지만 놀라지 않게 조용히. 이곳은 이제 나의 비밀의 고양이 타운하우스.


회사로 내려가는 길, 내가 좋아하는 작은 정원이 파해쳐져 공사 중인 게 보였다. 어느샌가 주변은 높은 철재담장으로 가려져있고 포클레인이 정원 가운데 들어가 있었다. 예전부터 거기에 주차장을 지으면 좋겠다, 건물을 짓는다는 말이 나오긴 했는데, 이번에 정말 작은 건물이 들어서나보다.


'오랫동안 나의 비밀의 화원이었는데...'

거기엔 진달래, 찔레꽃, 개망초, 애기똥풀, 튤립, 수국이 피고 사과나무, 대추나무, 단풍나무, 매실나무, 도토리나무, 솔나무가 조용히 자라는 곳이었다. 벤치와 평상이 있어 앉아있기도 좋고, 새가 날아와 옆에 앉기도 하는 곳. 겨울에는 고양이 발자국이 사방에 펼쳐지고, 철 따라 대추와 야생 사과와 도토리가 열매 맺는 곳. 배고픈 겨울, 어쩌다 야생너구리들이 먹을 걸 찾아 내려오기도 하는 곳. 사람도 없고 조용히 있기 좋아 점심시간에 종종 오던 곳.


사람들은 왜 이렇게 콘크리트로 뭘 짓지 못해 안달인 걸까. 자연 그대로, 공원 그대로 놔두는 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데... 필요하니까 짓는 거겠지만, 그 작은 공원을 사랑했던 나에겐 아쉬움이 크다.


고양이들의 보금자리, 나의 비밀의 화원.

숨어있던 작은 공간과 사라지는 공간을 마주한  오늘이었다. 정원이 사라지고 건물이 들어서면, 바로 그 옆의 고양이 보금자리도 없어질 수 있는데, 그러지는 않기를.


날 좋은 여름날 또 그렇게 시간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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