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일기
2024년 7월 5일(금) 맑음
교육을 들으러 서울 동대문 쪽에 갔다. 교육장에서 예전에 같이 일했던 분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도 하며, 조용히 오전 교육을 시간을 맞았다.
교육시작 직전, 서울에 왔으니 아무거나 먹을 수 없다는 일념으로 맛집을 폭풍 검색했다. 근처에 평양냉면 전문점, 중앙아시아 음식 거리가 있었다. 중앙아시아 음식이라니. 빌딩숲만 가득한 거 같은 서울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곳이 숨어있었다. 두 곳을 물망에 올린 상태로 오전 교육을 받았다.
드디어 점심시간. 무얼 먹을까 한참 고민하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기로 하고 몽골음식점으로 향했다.
가게는 2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테이블은 10개 정도 있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였다. 한쪽 벽은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 형태로 꾸며있었고 직원은 몽골분인 거 같았다. 낯선 여행지에 온 듯, 현지 느낌이 물씬했다.
몽골식 볶음국수와 만두하나를 주문하고 가게를 돌아보았다. 유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들, 근처에서 일하다 밥 먹으러 온 외국분, 한국 지인들과 점심 먹으러 온 분들이 보였다. 검색 내용처럼 손님들이 몽골인이 많은 거 같았다. 저분들에겐 이곳이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겠구나. 싶었다. 예전 외국여행 갔을 때 한국음식점에 가 김치찌개를 먹을 때가 떠올랐다.
기다리던 음식이 나왔다. 국수엔 기름으로 볶아진 소고기와 넙적 칼국수, 약간의 양배추가 들어있었다.
두근두근. 무슨 맛일까. 인생 첫 몽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맛은 조금 기름진 국수에 아주 흐리게 느껴지는 향신료향. 너무 낯설지 않은 맛이고, 특별히 거부적이진 않았다.
'음, 이게 몽골음식이군.'
만두는 공갈빵처럼 부풀어 있었는데, 소는 야채 없이 다진 고기로만 채워져 있었다. 역시 만두도 몽골음식답게 고기위주였다. 맛은 진한 육향의 고기만두맛.
한참을 먹는데 기름진 느낌 때문인지 계속 먹기가 어려웠다. 곁들임 반찬이 아무것도 제공되지 않아 느끼함은 점점 차올랐다. 단무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으나 없는 걸 어쩌랴. 콜라 하나를 주문해 느끼함을 밀어내고 다시 식사 시작.
그러다 만두만 시켜 먹는 젊은 남자 손남을 봤는데 자연스럽게 케첩을 뿌려 먹는 거였다. 이어폰을 낀 상태에 너무나 익숙한 손놀림. 그렇지, 현지인에겐 역시 집밥 느낌이겠구나. 나도 따라 케첩을 찍어먹어 보았다. 새로운 맛. 이게 진짜 몽골의 맛일지도.
먹을 만큼 먹었지만, 양이 많았던 국수는 결국 조금 남겼다.
역시 난 한국 사람인가 보다. 야채 가득한 비빔밥이 생각났다. 어쩌면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잘 먹었을지도. 난 고기보단 야채가 많이 있어야 밥 먹는 거 같고 편안하다. 평생 고기만 먹기와 야채만 먹기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난 후자인 스타일.
그래도 몽골음식을 맛본건 만족스러웠다. 평생 몰골에 여행을 갈 일이 있을까 말까 한데, 이렇게 몽골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게 인생의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가게를 나와 다시 교육장으로 향했다. 건물에 들어가려는데 한 푸드트럭 앞에 긴 줄이 서있었다. 자세히 보니 크래패 트럭이었다. 동대문에 양 많고 깔끔해서 유명한 크레페가 있다 했는데 그게 여기였나 보다. 새로운 서울구경+1.
들어가며 편의점에서 항아리 모양 바나나우유를 몇 개 사서 아는 분과 옆자리에 앉은 분께 나눠 드렸다. 우유를 먹는데 어릴 때로 돌아가는 거 같고 뭔가 재미있는 놀이를 하는 기분이었다. 맛과 재미를 동시에.
바나나 우우는 역시 항아리 우유지.
항아리 우유를 먹으며 교육을 듣는데, 깊은 인상을 남긴 내용이 있었다. 감정을 긍정적 부정적 감정으로 나누는데, 나쁘고 좋은 감정이 있는 게 아니라고.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슬퍼하는, 그에 맞는 적절한 감정을 나타내는 게 건강한 거라고. 힘들고 우울한 일이 있는데 웃는 게 부적절한 거라고.
그 말에 많은 공감이 갔다. 슬프면 안 되고 우울하면 안 되는 거처럼 긍정을 강요하는 시대가 버겁다 느껴졌는데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그런 건가 싶어 자괴감도 들기도 했다. 슬플만하고 우울할 만한 분들을 보며, 그 안에서 빠져나와 다른 감정으로 가길 바라고 그래야 안심하는 나를 보며, 어느 순간 나도 그런 세상의 시선을 강요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너무 극심하고 과도한 감정 상태에 있어 덜어내져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래도 다시 나를 점검해봐야 하는 시점인 거 같았다.
그리고 나 역시 힘들고 우울함이 올라오는데 애써 그것을 못 본 척하며 밀어내고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이유가 있어 올라오는 그 감정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모른 척하며 지내는 거 같긴 하다. 진짜 평안함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진지하게 그 감정의 이야기를 들어야는데, 아니 실은 알고 있는데 현실이라는 핑계로 그러지 못하는 거 같아, 다시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진짜 나의 모습과 목소리를 다시 찾고 싶다.
드디어 교육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서울 멀리까지 왔는데 그냥 가긴 뭔가 아쉬웠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DDP를 구경하기로 하고 길을 건넜다. DDP는 도심 속 거대한 우주선이 착륙한 것 같은 압도적인 건물모양. 주변 가득한 빌딩과 멀리 보이는 주택 단지와 사뭇 다른 생경한 느낌을 주었다.
DDP에선 환경에 대한 주제로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한 분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하얗고 동글동글한 느낌의 계단을 올라 전시 둘레길로 갔는데, 벽은 돌고래 그림으로 바닥은 작품 사진들로 주욱 꾸며져 있었다.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아직 잘은 모르는 상태로 천천히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장은 마침 오픈식을 마쳤는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작품세계를 알고 즐기는 사람들이 역시나 많구나 싶었다. 사람들에겐 뭔지 모를 여유가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이 작품들을 아는 사람인 양 그 안에 들어가 작품들을 보고 나와 다시 둘레길의 작품을 감상했다. 그제야 조금씩 작품의 의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태어날 후손들이 '꼭 핵에너지여야만 했느냐'는 물음에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란 작품. 아이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찍은 사진. 달하나에 수많은 지구가 있는 작품. 발행부수를 늘리기 위해 의미 없이 찍어지고 버려지는 신문 위에 그린 그림들. 갇혀있던 돌고래를 보여주는 돌고래 그림들.
작가가 세상에 외치는 메시지가 들렸다.
오랫동안 고귀한 정신을 품고 지키며, 끊임없이 작품활동을 하며 세상에 표출하는 일. 그런 것이 점점 위대해 보인다. 이분의 삶도 그리고 그 깊이와 크기도 엄청나게 크겠지? 그러니 그걸 알아보고 이리 많은 사람이 찾고 이 큰 곳에서 전시도 하는 거겠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소중한 것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가 그들을 보며 우리의 현실을 자각하고 반성할 기회를 갖게 되는 거겠지. 예술가들의 또 다른 커다란 역할을 보는 거 같았다. 섬세한 그리고 소중한 정신을 세상에 뿌리고 알리는 역할.
짧게 DDP구경을 하고 전철역으로 향했다. 역시, 재미있는 문화이벤트가 상시 있는 서울. 전철역 입구에서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사업 이름 공모전 이벤트가 열리고 있었다. 이벤트에 참여해 서울라면을 득템 하고, 인천 집으로 향했다.
교육을 들으러 서울에 왔지만, 짧은 여행을 한 거 같은 날이었다. 몽골음식 체험, 신나는 바나나우유 섭취, 크레페 푸드트럭 구경, DDP 전시관람까지.
오늘도 많은 일로 채워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