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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Aug 25. 2019

그렇게 나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되었다

느닷없이, 첫 손님이 왔다

"제주도에 게스트하우스를 짓고 직접 내려가 운영할 생각이에요."

"저는 대학로에서 어머니와 함께 준비중입니다."

"이번에 대출을 받아 서촌에 작은 이층집을 마련했습니다."

이십대의 연극배우에서 체대 출신 청년, 제주도에서 준비중인 사십대의 건축가, 서촌의 작은 이층집을 리모델링 중인 전직 회사원, 북촌 한옥에서 준비중인 관광통역안내사, 강화도에서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전직 교장선생님까지 직업도, 나이도, 지역도 다양한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수업 동기들은 모두 저마다의 게스트하우스를 꿈꾸며 새로운 인생의 길로 접어들려 하고 있었다.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이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도심 주택가에서 한국의 가정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숙식 등을 제공하는 사업을 말한다. 게스트하우스나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고 싶다면 누구라도 예외없이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 나는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중소기업청에서 주최한 민박업 강의를 들으며 함께 오픈을 준비하고 있던 예비사장님들과 정보와 경험을 공유했는데 작가와 기자, 편집자를 주로 만나왔던 내게 전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시간은 삶에 활기가 되어주었다. 5주 간의 강의가 끝나고 동기 사장님들이 하나둘씩 사업장을 오픈하자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새로운 게스트하우스의 탄생을 축하하며 포트럭 파티를 했다. 과연 운영자의 성격과 사업운영 철학이 게스트하우스 곳곳에서 그대로 묻어나왔는데, 쓱 둘러보기만 해도 운영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지, 게스트의 편의를 위해 어떤 점을 더 신경쓰고 있는지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연남동에서 보내는 첫번째 겨울엔 눈이 많이 내렸다




추석 즈음 연남동 집으로 이사를 하고 집들이를 몇 번 하고 나자 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오픈하기 위해 서둘러 마포구청으로부터 외국인관광도시민박업 허가를 받았지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나는 여전히 이런저런 준비만 하 차일피일 오픈을 미루고 있었다. 막상 오픈을 눈앞에 두고 있자니 자영업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과연 이렇게 먼 곳까지 게스트가 정말 와줄까, 최소한의 리모델링을 거쳤을 뿐 여전히 작고 오래된 그리고 주인과 함께 지내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게스트하우스를 과연 좋아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을 하기 위해 집을 사고 리모델링까지 마친 마당에 언제까지 망설이고만 있을 순 없었다. 4월 벚꽃 시즌에 한국을 방문하는 게스트 예약을 받으려면 늦어도 2월 중에는 무조건 오픈을 해야 했다. 아고다, 호스텔닷컴, 부킹닷컴, 익스피디아 같은 예약 플랫폼에 우리 게스트하우스의 방을 등록하기 위해 서둘러 담당자와 통화를 하고 각종 서류와 사진을 보내고 가격을 정하고 오픈 프로모션을 준비하고 홍보 문구를 수정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정신없이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페이지도 영문으로 준비해두고 라인, 왓츠앱, 위챗 계정도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플랫폼을 오픈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첫 손님이 왔다.





플랫폼에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하자마자 예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만과 일본에서 우리집을 예약해준 나의 첫 게스트들은 2월 말에 올 예정이었다.



연남동의 겨울 풍경



그날은 밸런타인데이였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늦게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새로 배송된 이불을 세팅하고 있었다. 밤 12시가 거의 다 되었을 즈음 누군가 벨을 눌렀다.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이 밤중에 누군가 벨을 누른다고? 남편이라면 당연히 카드키로 열고 들어올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다가 벨을 누른 사람이 내게 영어로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누군지는 알 수 없어도 내게 도움을 요청하는 외국인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 사람 이상으로 내가 몹시 당황하고 있다는 것 또한 분명했다. 집 안에서 대문으로 향하는 10초도 안 되는 사이에 나는 3가지의 가능성을 떠올렸다. 첫째, 우리집 근처의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외국인이 길을 잃었을 가능성 둘째, 예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집이 게스트하우스인 것을 알고 혹시 오늘밤 숙박이 가능한지 묻고자 하는 관광객일 가능성 셋째, 관광객은 아니지만 길을 잃어 그저 도움을 요청하려는 외국인일 가능성.


황급히 대문을 연 순간, 나는 세 가지의 가능성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렸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눈앞에 여기가 ** 게스트하우스 맞느냐며 호텔 예약 바우처를 보여주는, 키가 190은 되어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아직 간판을 붙이지 않았을 때라 여기가 게스트하우스가 맞는지 몇 번을 왔다갔다하며 주소를 확인했단다. 하지만 오늘 예약한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한데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바우처를 살펴보니 웬걸, 3월 14일에 예약한 사람이 2월 14일에 온 것이었다. 세상에, 우리집에 게스트가 온 것이다!


당황한 내가 안 되는 영어로 바우처의 날짜를 짚어주며 너의 예약은 한 달 뒤야, 오늘은 2월 14일이고, 라고 말했더니 남자는 그제야 자신이 예약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어쩔 줄을 몰라했다. 현실이 그렇다고는 하나 추운 밤 여기까지 무거운 짐을 지고 프랑스에서 막 날아온 나의 첫 게스트를 더 이상 밖에 세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곧이어 눈을 똥그랗게 뜨고 퇴근해 들어온 남편에게 환대를 맡기고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방을 정리했다. 그렇게 윌리엄은 얼렁뚱땅 우리의 첫 게스트가 되었다. 쾌활하고 소주를 좋아하고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아 박물관을 즐겨 찾고, 나에게 한국어를 매일 배우던 윌리엄. 특유의 유쾌한 성격 때문에 우리는 금세 친해질 수 있었고, 덕분에 나의 외국인 공포증(?)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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