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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 Mar 03. 2020

다행히 작고 오래된 이 민박집을 게스트들은 좋아해주었다

로컬 피플과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아

프랑스에서 느닷없이 날아온 이상한 첫손님을 맞이한 이후 다른 게스트들도 속속 체크인을 했고 어설펐던 우리는 점점 그럴 듯한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되어갔다. 지하철에서 도보로 이십 분, 최소한의 리모델링을 거친 작고 오래된 이 민박집을 고맙게도 게스트들은 좋아해주었다.


하지만 첫 게스트가 오기 직전까지 나는 겁을 내고 있었다. 지난 몇 개월 간 집을 고치고 방을 꾸밀 때는 그저 신나기만 했는데, 막상 오픈일이 다가오자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두려움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멀쩡한 회사 그만두고 대출까지 받아가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오픈하면 사람들이 정말로 예약을 할까? 그러다 아무도 예약을 하지 않으면? 혹시나 직접 와서 보고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십수 번 마음을 뒤흔들었다.


나는 정신을 다잡고 더 꼼꼼하게 준비했다. 방마다 TV와 에어컨, 도어키를 설치했고, 낮에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암막커튼을 달았다. 침대 머리맡에는 그림액자를 걸었고, 테이블 조명도 빼놓지 않았다. 베개도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폭신한 것과 탄탄한 것을 함께 세팅했고 일반타올 외에 큰 바디타올도 넉넉하게 준비했다. 소방서의 지침에 따른 비상대피도와 손전등, 연기감지기는 진작에 설치해두었다. 예약플랫폼에는 우리집이 어떤 구조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도록 사진 외에 평면도까지 함께 올리며 상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그리고 마침내 D-DAY가 왔다. 오픈 시기가 나쁘지 않았던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구글 예약메일 알림이 울렸다. 왜 더 빨리 오픈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예약과 문의 메일이 쏟아졌다. 프랑스, 일본, 대만, 태국, 필리핀, 미국, 독일, 베트남, 싱가포르, 홍콩에서 온 이들이 우리의 2월과 3월을 채워주었다. 모두가 관광객인 것은 아니었는데, 개중에는 대학 입학을 앞두고 2주쯤 미리 와서 적응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4월초에 예약한 타이베이의 게스트들은 한국의 벚꽃 시즌에 맞춰 온 경우가 많았고, 울산이나 진해에서 벚꽃을 따라 서울까지 올라온 홍콩 게스트도 있었다. 타이베이의 게스트들은 10월에 내장산의 단풍을 보러 또 올 거라고 했다. 이 대목에서 꽤 신선한 충격을 받았는데, 나는 그때까지 외국인 관광객이 벚꽃을 즐기기 위해 서울에, 울산에 오고 단풍을 즐기러 내장산에 올 거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의 곳곳을 사계절에 따라 제대로 즐기고 있는 그들의 안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왜 호텔에 가지 않고 게스트하우스에 온 거야?" 

우리는 종종 게스트들에게 묻곤 했다. 왜 세상 편한 호텔을 놔두고 많은 것을 공유해야 하는 불편한 게스트하우스에 온 걸까? 대개는 어깨를 으쓱하며, 그냥, 뭐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어,라는 표정을 했지만 이런 대답도 있었다.

"거긴 비싸기도 하지만, 재미도 없고 너무 지루하잖아."

"게스트하우스에 오면 너희들처럼 로컬 피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아."

이런 모험심 많고 고마운 여행자들 같으니라구. 나라면 선뜻 선택하지 못했을 불편을 그들은 기꺼이 감수했다. 아니, 오히려 재미있는 경험으로 여겨주었다. 세계로부터 날아온 이 모험심 많은 친구들의 열정이 때론 대견했고, 때론 부럽기까지 했다.


"이 집에 머무는 동안 어땠어?"

체크아웃을 하는 게스트에게 물어보면 대개는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뭐가 좋았냐고 물으니 이유 참 다양하다.

"아침밥이 맛있었어!"

"너희 두 사람이 따뜻하게 챙겨줘서 좋았어. 고마워."

"홍콩에서는 이런 단독주택 보기 힘들어. 아파트가 아니라 이런 집에 머물 수 있어 좋았어."

"방이 아늑하고 깨끗해서 좋았어. 특히 침대가 너무 편했어."

"친구들끼리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좋았어."


누군가는 한국식 아침식사가, 누군가는 주인장의 따뜻한 배려가, 누군가는 한국적인 주거공간이, 누군가는 다른 게스트들과의 예기치 못한 즐거운 만남이, 누군가는 자신에게 맞는 공간 구성이(우리집에는 싱글룸, 더블룸, 트윈룸, 트리플룸이 있었다) 마음에 들어 우리집을 선택해주었고, 좋아해주었다. 나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생각보다 우리집에는 호텔에는 없는 장점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왠지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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