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에 맞게, 그렇지만 깨끗하게 고쳐야 했다. 단열도 해야했다. '리모델링'하면 보통 아파트나 카페 같은 상업공간을 떠올리기 마련이라 부족한 돈으로 작고 오래된 단독주택을고쳐보겠노라는(새로 짓는 것도 아니고) 업체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나는설계사를 찾아부산까지 다녀와야 했다.
처음 설계사로부터 도면을 받아들던 순간이 여전히 생생하다.원인도 모르고 혼자서 끙끙대다가 의사의 명쾌한 처방을 듣는 기분이 바로 이런 걸까.그동안 상상 속에서만 이리 고치고 저리 고쳐보던 집이 마침내 현실이 되어 내 눈앞에 펼쳐지던 순간이었다.
그때 내 가슴이 뛰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이 우리의 첫 집이어서였을까.첫단독주택이어서였을까.첫 리모델링이어서였을까. 아니면게스트하우스를 열 생각 때문이었던 걸까......
모래내시장의 꽃집
7월 중순에 시작했던 공사는 추석이 다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단독주택 살이가 시작되었다. 아파트에서만 사십년 가까이 살던 내가 단독주택이라니.
처음 잠들던 날의 생경함을 잊을 수가 없다. 온갖 소리에 예민해져서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을 것이다. 벽 너머로 바로 도로가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는 오토바이 소리, 차가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느껴지던 진동, 마당으로 날렵하게 뛰어들어오던 고양이 발소리까지그 모든 것들이 내 신경을 자극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들리지 않던 혹은 내가 결코 알지 못했던 소리가 아주 생생하게 들리는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어떻게 이런 소리들을 모르고 살아왔을까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이것은 때로는 나를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만들었지만, 대개는 내게 행복감과 깊은 안도감을 주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었다.
시골에서나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새소리, 이웃간의 안부인사, 학교 등교하는 아이들 소리,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 이웃집 아침밥 짓는 소리, 이웃 빌라에서 늦은 오후면 종종 들려오던 가야금 소리,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골목에서 뛰노는 소리, 이웃집 근사한 마당에서 한달에 한번쯤 파티하는 소리, 우리집 주변에서 드라마 촬영하는 소리, 택배 아저씨들이 외치는 소리, 그리고 우리집을 향해 오고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트렁크 끄는 소리......
봄이면 모래내시장에서 새로 꽃을 들이곤 했다
단독주택 살이에서 가장 좋은 것이 뭐였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옥상과 마당이라고 하겠다. 마당에 놓은 테이블에서 하늘의 별을 보며 남편과 마시는 맥주 한잔, 비오는 날 마당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거실에 앉아듣는 일, 마당에서 커피를 볶는 일, 모래내시장에서 사온 예쁜 꽃들을 마당에 늘어놓고 가꾸는 일, 옥상에 빨래줄을 매어 햇빛에 빨래를 뽀송뽀송 말리고 이불 먼지를 터는 일, 옥상에서 퇴근하는 남편에게 손을 흔드는 일......
나의 이웃은 가을이면 마당에 열린 감을 따다 주기도 하고, 종종 내 집 앞에 주차를 하기도 하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가끔은 예민하게 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여름이면 집 앞에 돗자리를 펴고 온동네 이웃을 불러모아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